5) 조계종의 성립과 정신

    한국불교의 정통을 이어받은 조계종은 근원을 가지산문을 창건한 도의(道義) 국사(國師)에 두고 있다. 조계종의 헌법이라고 할 수 있는 종헌은 이렇게 시작된다.

“공유(恭惟)컨대 아(我) 종조(宗祖) 도의 국사께서 조계(曹溪)의 정통법인(正統法印)을 사승(嗣承)하사 가지(迦智) 영역(靈域)에서 종당(宗幢)을 게양하심으로부터 구산문(九山門)이 열개(列開)하고 오교파(五敎派)가 병립(竝立)하여 선풍교학(禪風敎學)이 근역(槿域)에 미만(彌漫)하였더니…”
                                                                                                                      <조계종 종헌 前文>

    종헌의 이러한 언급은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조계종의 근원과 뿌리가 무엇인지를 밝혀주고 있다. 즉 조계종은 달마 대사의 선법을 이어받은 6조 혜능 스님(曹溪)의 법통을 이어 받은 도의 국사가 그 첫 조상이라는 것이다. 조계라는 이름은 6조 혜능 스님이 주석하시던 중국 소주(韶州) 조계산의 이름을 따서 혜능스님을 지칭하던 이름이다. 따라서 종헌의 서술은 도의 스님이 달마 대사의 선법을 이어 받은 6조 혜능스님의 조계 선맥을 이은 선종이라는 것을 표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종헌의 처음 장들에는 이와 같이 명시되어 있다.

제1조  본종은 대한불교 조계종이라 칭한다. 본종은 신라 도의(道義) 국사가 창수(創樹)한
          가지산문(迦智山門)에서 기원하여 고려 보조(普照)국사의 중천(重闡)을 거쳐 태고 
          보우(太古普愚)국사의 제종포섭으로서 조계종(曹溪宗)이라 공칭하여 이후 그 종풍이
          면면부절한 것이다.

제2조  본종은 교주이신 석가세존(釋迦世尊)의 자각각타(自覺覺他)의 각행원만(覺行圓滿)한
          근본교리를 봉체하며 직지인심(直旨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 전법도생(傳法度生)함
          을 종지(宗旨)로 한다.

제3조  본종의 소의경전(所依經典)은 금강경(金剛經)과 전등법어(傳燈法語)로 한다. 기타 
          경전의 연구와 염불 지주 등은 제한치 않는다.                                  <조계종 종헌>

    이러한 기술에서 알 수 있듯이 조계종은 구산 선문 가운데 가지산문의 법맥을 이은 종단이며 그 종조는 도의 국사임을 알 수 있다.
    이 땅에 선법(禪法)을 처음 전한 도의 국사의 속성은 왕씨이고 법호는 명적(明寂), 시호는 원적(元寂)이다. 큰 인물이 태어날 때에는 범상한 일이 있듯이 스님은 어머니의 태중에서 39개월만에 태어났다고 한다. 스님은 선덕왕 5년인 784년 당나라로 건너가 오대산에서 문수보살의 감응을 얻었고, 그 뒤 보단사(寶壇寺)에서 비구계를 받고 육조 혜능 스님이 주석하던 조계산(曹溪山)으로 가 혜능 스님을 모신 조사당을 참배하니 조사당의 문이 저절로 열렸다고 한다.
    다시 강서 개원사(開元寺)로 가서 6조 혜능 대사의 증법손인 서당지장(西堂智藏) 선사에게 수학하여 의혹을 풀고 그 법맥을 이어 달마 선법(禪法)을 전수하였다. 서당 지장 스님의 스승인 마조 도일(馬祖道一)스님은 6조 혜능 스님의 제자인 남악 회양(南嶽懷讓) 스님의 제자이기 때문에 지장 선사는 6조 혜능 스님의 증법손이 되는 것이다. 즉, 도의 스님이 서당 지장 선사의 법을 이었다는 것은 6조 혜능 스님의 정통 선법을 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서장 지장 스님은 도의 스님은 물론 실상산문의 개산조인 홍척스님과 동리산문의 개산조인 혜철 스님에게도 법을 전하여 우리나라 3대 산문의 개산조에게 선법을 전한 셈이 된다.
    도의 스님은 다시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一日不作 一日不食)’는 말씀과 청규(淸規)로 유명한 백장 회해(百丈懷海)선사를 찾아 법요(法要)를 강의 받았는데 이때 회해선사는 “강서의 선맥이 모두 동국에 속하게 되었구나”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것은 참선의 선맥을 동국 즉, 우리나라 출신의 스님인 도의 스님이 전수 받았다는 것으로 도의 스님의 법력이 매우 수승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도의 스님은 37년 동안 당에 머물다 헌덕왕 13년인 821년 귀국하여 선법을 전수하였는데 당시 사람들이 교학만을 숭상하고 선법을 믿지 않으며 허무맹랑한 소리라고 비방하므로 시기상조라는 것을 알고 설악산 진전사(陣田寺)에 들어가 40년간 수도하며 제자 염거 스님에게 법을 전하고 입적하였다.
    한편 염거 스님은 보조 체징 스님에게 법을 전하고, 체징스님이 859년에 장흥 가지산에 보림사를 짓고 가지산문을 개창하여 선풍을 크게 떨치게 되니 바로 현재 우리 조계종의 근원이 되는 가지산문이 성립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가지산문의 개창은 흥덕왕 3년인 828년에 홍척스님이 개창한 실상산문보다 그 개산 시기가 늦다. 이것은 도의 스님이 처음 이 땅에 남종선을 전하였으나 선법을 펼치는 것이 시기상조라 하여 진전사에 은거한 반면 도의 스님보다 5년 늦게 귀국한 홍척 스님은 신라 왕실의 지원을 얻게 되어 실상산문을 개산하게 된 것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이 땅에 선법을 먼저 전한 사람은 바로 도의 스님이며 도의 스님이 귀국한 신라 헌덕왕 13년(821)부터 구산선문 가운데 가장 나중에 성립한 수미산문의 개산에 이르는 고려 태조 15년(932)까지의 112년간을 나말려초의 구산 선문 성립기라고 부른다. 따라서 오늘의 조계종이 있는 것은 바로 도의 국사가 선맥을 전해주었기 때문이다.
    ‘보조국사 지눌’(1158~1210)은 고려 시대 불교를 쇄신한 인물로 조계종의 중흥조이다. 1165년 8세에 출가한 보조국사는 1185년 하가산(경북 예천 소재) 보문사에서 대장경을 읽다가 이통현 장자의 <화엄론>을 보고, 느낀 바가 있었다. 그 뒤 팔공산 거조사로 옮겨 정혜사(定慧寺)를 조직하고, ‘권수정혜결사문’을 발표했다.
    지눌의 정혜결사(定慧結社)는 고려 중기의 불교계를 쇄신시킨 선수행 중심의 새로운 불교운동이다. 개국 초부터 성행하던 선은 천태종의 개창으로 상당한 부진을 보이고 있었다. 거기에 정치세력과 결탁된 교단 일각의 타락상과 함께 선ㆍ교의 대립이라는 사상 문제까지 발생하자 지눌은 이러한 현상을 타개하고자 순수한 선 수행운동인 정혜결사 운동을 전개한 것이다. 1197년 순천 송광산 길상사로 옮기기로 하고 그 곳으로 가던 중 지리산 상무주암에서 3년 동안 참선했다. 그러던 어느 날 <대혜어록>을 보고 크게 깨닫는다. 1200년 길상사(송광사)로 옮겨 가르침을 설하니, 사방에서 모여드는 이가 수없이 많았다고 한다. 이와 같이 지눌 스님은 고려조의 선법을 중흥시킨 분이기에 조계종의 중흥조로 추앙받은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중흥조인 원증국사 태고 보우스님(1301~1382)은 신라 이래 고려를 거친 5교 9산의 전통을 하나로 통합하여 한국 불교의 오늘이 있도록 하고, 달마로부터 임제로 이어진 정통 선맥을 계승한 분이기도 하다.
    1301년 음력 9월 21일 태어난 스님은 13세에 회암사 광지스님을 은사로 득도, 가지산에서 수도했다. 1319년 ‘만법귀일 일귀하처(萬法歸一 一歸何處)’ 화두 참구에 전념, 1333년 성서 감로사에서 의문을 풀었다. 1329년 화엄선에 합격했으며, 1337년 전단원에 있으면서 ‘무(無)’자를 참구, 이듬해 크게 깨닫는다. 1346년 원나라 연경 대관사에 머물다, 호주 하무산 천호암에 가 임제 의현(臨濟義玄)의 18세 법손인 석옥청공 선사를 만나 인가를 받고 법을 전해 받는다. 1356년 왕사가 된 스님은 원융부를 설치, 구산선문의 통일을 위해 노력했다. 이로써 우리나라 임제종의 시조이자, 대한불교조계종 중흥조가 된 태고 보우스님은 현대 한국불교의 뿌리가 되고 근원이 되기 때문에 조계종에서는 중흥조로 모시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조계종은 신라 말에 성립되어 고려시대는 물론 조선시대에 와서도 비록 그 종명이 조정에 의해 박탈당하긴 하였으나 우리 불교의 주류를 형성하며 큰 위치를 차지하여 왔다. 그러기 때문에 조계종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국불교의 핵심이 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조계종의 종지인 직지인심, 견성성불, 전법도생의 세 기치는 선종으로서의 선지(禪旨)와 지향을 잘 나타내 주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달마대사가 선법을 주창하면서 내세운 ‘불립문자 직지인심 견성성불’의 선지를 계승함과 동시에 널리 법을 전하여 중생을 제도한다는 이 지향은 조계종이 나아갈 바를 잘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조계종은 조선 시대를 거치면서 그 종명을 상실하고 다시 일제시대를 겪으면서 ‘조선불교 선교양종’ 이라는 모호한 이름으로 불려왔다. 그러나 항일 운동의 결과 그 종명을 되찾게 된다. 1929년부터 일기 시작한 총본산 건설운동의 일환으로 태고사가 1938년 10월 준공되고, 1939년 5월경 전체 주지회의를 거쳐 1940년 7월경 태고사(조계사 전신)라는 사찰 이름이 결정된다.
    이 때 한국불교의 종명(宗名)문제 또한 거론됐다. 당시 한국불교는 일제의 사찰령에 의해 일본인이 지은 ‘조선불교 선교양종’이라는 애매한 종명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에 대한 교계의 불만이 적지 않았고, 마침 총본산도 건설됐으니 한국불교의 전통에 맞게 종명을 개정하자는 의견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1940년 11월 28일 31본산주지회의에서 ‘조선불교조계종’이라는 종명이 확정, 같은 해 12월 9일 조명 개정에 대한 내용을 포함한 새로운 태고사 사법을 조선총독부에 제출한다. 1941년 4월 23일 총독부령 제125호에 의거, 사찰령 시행세칙 일부가 개정되고 여기에 기초해 ‘조선불교조계종’과 ‘태고사 사법(寺法)’이 성립되며, 6월 5일 총본산 태고사 주지선거를 거쳐 조선불교 조계종이 출범한다.
    그리고 8ㆍ15 광복 이후 교단의 청정과 승풍을 진작하려는 종도들의 원력에 의하여 불기 2498년(1954) 정화운동이 일어나 자정(自淨)과 혁신으로 마침내 종단의 화합이 이룩되어 불기 2506년(1962) 3월 22일 종헌을 제정하고 통합종단이 출범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종단의 청정성과 삼보 호지의 기본 틀이 다져지고, 수행납자의 가풍이 진작되었으며, 포교와 가람불사에 힘을 기울여 한국 불교는 유래없는 교세 확장을 이루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와 같이 우리 역사를 관통하며 한국 불교의 핵심을 이루어온 유일한 종단인 조계종은 오늘날 많은 과제를 안고 있다. 아직도 민족이 분열되어 대립하고 있으며, 급격한 산업화, 도시화, 서양화로 정신적인 혼돈, 물질지향적 가치관의 횡행, 민족문화 경시 풍조 등이 만연하고 있다. 특히 산업문명의 부산물인 환경오염은 심각하여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지구적 차원에서 새로운 문명에 대한 갈망이 높아 가고 있다. 이러한 어려운 시대에 조계종은 민족통일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야 하며, 인간의 욕망을 절제하고 자연환경을 살리는 새롭고 건강한 문명 창조의 사상적 밑거름이 되어야 한다. 또한 물질과 경쟁 위주의 사회에서 지치거나 상처입은 많은 대중을 동체대비(同體大悲)사상으로 포용하고 모두가 더불어 자유롭고 편안하게 살 수 있는 불국토를 이루어야 한다. 이 모든 과제가 우리 불자의 지혜와 노력에 달려 있다. 우리 불자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공부하고 믿으며 실행해 나간다면 언젠가 찬란한 불국토가 우리 앞에 열리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