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종, 우리나라 불교ㆍ미술ㆍ문학에 큰 영향


28일 부산 안국선원서 ‘선불교와 한국문화의 정체성’ 학술대회 불상 등 조형미술 靈氣를 형상화 봉불살불(逢佛殺佛).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 선종(禪宗)을 대변하는 데 이보다 더 간단명료한 말은 없다. 부처를 신격화하고 그 권위에 예속되는 불교는 이미 불교가 아니다. ‘부처를 죽임’은 그런 신격화와 예속을 깨부수라는 뜻. 그렇게 불교 본래 모습으로 돌아갈 것을 외치며 시작된 선종이 우리나라에 들어 온 것은 대략 8세기 무렵, 통일신라 때다. 28일 부산 안국선원에서 동아시아불교문화학회 주최로 ‘선 불교와 한국문화의 정체성’ 학술대회가 열린다. 부산에선 처음 보는 주제의 행사인 만큼 의미가 있어 몇 부분을 간추려 미리 살펴본다. △선, 잊어버린 영성 찾는 과정 강우방 이화여대 교수는 선종이 한국 미술에 끼친 영향을 영기(靈氣)라는 한 말로 집약한다. 선종이 강조하는 바 견성성불(見性成佛)에 대해 “견성의 대상은 불성(佛性)이라기보다는 영성(靈性)”이라는 이색 주장까지 펼친다. 노ㆍ장의 흔적이 보이는데, 강 교수에 따르면 실제로 선종 이후 한반도의 조형미술은 영기를 형상화하려 했고 불상도 예외가 아니었다. 동화사 비로암의 여래형 비로자나불이 좋은 예. 이 불상의 대좌 가운데 중대석에는 영기의 싹을 강조한 구름 모양의 영기무늬가 역동적으로 표현되어 있는 가운데 연꽃 다발이 화생(化生)하고 있으며 동시에 여덟 마리의 사자가 화생하고 있다. 이같은 영기 무늬의 대좌는 비로자나불에서만 보인다. 비로자나불은 선종의 유입과 함께 출현한 주존불. “모두가 비로자나라는 선종적 통찰은, 모두가 영기의 화신이라는 도가적 통찰과 통한다”는 것이 강 교수의 설명이다. 이같은 영기화생(靈氣化生)의 도상은 이후 선사탑에서는 더욱 진전돼 기단부에 사자 대신 아예 용이 등장하고, 조선시대에는 건축에까지 영기화생을 상징하는 공포가 성립됐으며, 마침내 현란하고 폭발적인 장엄의 괘불이 탄생하면서 절정에 이른다. 선(禪)이란 본성을 찾는 수행, 곧 인류가 오래 동안 잊어버린 영성을 회복하는 직접적인 노력의 과정이라는 것이 강 교수의 결론인 셈이다. 권위ㆍ관습 부정 자연스레 발현 △선시인(禪詩人) 이규보 고려 말의 이규보는 선시의 사상성과 문학성을 가장 높이 끌어올린 선시인? 이름 높은 유학자가 선시인이라니, 의아스럽겠지만 강석근 동국대 교수는 “틀림없다”고 단정한다. ‘화려한 집 따뜻한 방에서 밤마다 잔치하니/ 부자들과 귀인들 사이라 술맛이 나지 않네/ 어찌 흰 눈 내리는 깊고 깊은 산사에서/ 한가히 모닥불 피워 막걸리 데우는 멋에 비기랴.’ ‘겨울밤 산사의 조촐한 주연(冬夜山寺小酌)’이라는 한시를 풀어 쓴 것이다. 낭만적이고 파격적인 이규보의 기질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이 시에는 귄위나 관습을 부정하는 선사상이 문면에 강하게 나타나 있다는 것이 강 교수의 주장이다. 금주의 장소에서 마시는 술자리가 오히려 멋있다는 파격은 선적(禪的)인 역설의 감동이며, 나아가 살불살조(殺佛殺祖)하는 선학(禪學)의 정신이 자연스럽게 발현됐다는 것이다. 선시는 고려가요의 상상력과 표현력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강 교수는 ‘가시리’의 ‘잡사와 두어리마난/ 선하면 아니 올셰라/ 셜온님 보내옵노니/ 가시난 닷 도셔 오쇼셔’라는 구절을 예로 든다. 떠나는 님을 보내는 것이 곧 돌아오게 하는 방법이라는 점을 노래한 것으로, ‘비우는 것이 곧 채우는 것’이라는 선가의 논리는 물론 ‘완전히 버림으로서 도를 얻을 수 있다’는 조주선사의 ‘방하착(放下着)’의 정신과 관계가 깊다는 이유에서다. 다례, 그 자체가 하나의 수행 △‘차나 한 잔 마시게’의 선미(禪味) 다선일미(茶禪一味)라! 오늘날 한국의 차 문화는 순전히 선종의 힘이다. 선종의 승려들은 처음에 잠을 멀리 해 주는 각성 작용 때문에 차를 마셨지만 나중에는 그 자체가 하나의 수행처럼 여겨졌다. 중국 조주 선사는 아예 ‘끽다거(喫茶去)’의 공안을 펼쳤다. 조주 스님이 새로 온 두 납자에게 물었다. “여기 와 본 적이 있는가?” 한 스님이 대답했다. “없습니다.” “차나 한 잔 마시게.” 또 한 사람에게 물었다. “여기에 와 본 적이 있는가?” “예" “차나 한 잔 마시게.” 그러자 원주(院主)가 물었다. “두 사람에게 똑 같이 그리 하신 까닭이 무엇입니까?” “자네도 차나 한 잔 마시게.” 김봉건 동의대 철학과 강사는 신라말 구산선문은 개창 이후 선학과 다례를 함께 펼쳤으며, 그 같은 다례는 고려ㆍ조선조를 내려오면서도 조주선사 등 중국 선종의 선맥(禪脈)과 확연히 닿아 있다고 본다. 그러면 오늘의 형편은? “오늘날 많은 사찰에서 선다회가 조직돼 있지만 자칫 내력 없는 다례를 범람시키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조주 선사 ‘끽다거’의 선미(禪味)를 늘 되새겨야 한다”는 김 강사의 말은 뭔가 마뜩찮은 부분이 있기 때문으로 들린다. 도심에서도 시도할 만한 가치 △간화선, 그 아름다운 향기 선불교는 수행의 특성상 일반 대중이 접근하기는 좀체 쉽지 않다. 하지만 안국선원장 수불 스님은 선수행에 대해 “사부대중이 함께 도심 속에서 시도해 볼 가치가 있다”고 강조한다. 선불교는 바른 가르침을 만나면 오히려 쉽게 공부의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바른 가르침은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수불 스님이 제시하는 답은 간화선(看話禪)이다. ‘눈 밝은 선지식’을 의지하고 공부해서 원력으로 거듭날 수 있는 수행이 간화선이라는 이유에서다. “우리는 눈이 본다고 말을 합니다만, 사실은 눈이 보는 것이 아닙니다. 눈이 본다고 하면 눈 뜨고 죽은 송장의 눈으로도 볼 수 있어야 될 것입니다. 마음이 본다구요? 사실은 그 말도 허상입니다. 이 일단의 일을 깨달은 이가 남으로 하여금 이 일을 알게 하기 위해 짐짓 마음이라는 명사를 붙인 것일 뿐입니다. 하지만 이 일단의 일은 궁극적으로 간화선 수행을 바르게 체험한 사람만이 알 수 있으며, 그 향기는 이와 같은 공부한 사람만 맡을 수 있습니다.” 임광명 기자 kmyim@busanilbo.com <부산일보> 2007-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