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를 조금씩 바꾸고 있다”

선교겸수 전통 되살린 ‘벽송선회’ 현장

미래 대안문명으로서 禪역할 고민 ‘첫 발’
‘한국禪이 나아갈 방향’ 구체적으로 제시
방부 들인 스님 대부분 선원수좌…의미 커

불교신문과 함께 500년 만에 선교겸수의 전통을 되살린 함양 벽송사 벽송선원의 ‘선회(禪會)’가 지난 18일 ‘문없는 문’을 닫았다. 지난 8일부터 11일간 진행된 벽송선원 산철결제에는 100여 명의 수행납자가 참여해 문전성시를 이뤘다. 비구 30명, 비구니 30명 등 60명 정도만 방부 들일 계획이었지만 거의 2배에 가까운 스님들이 몰렸다.

벽송지엄스님의 선풍을 이어 받은 선회는 현대 들어 처음으로 열렸다. 때문에 이번 선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바로 기준이자 지침이 됐다. 선회는 아침과 저녁 4시간씩의 선 실참이 진행됐다. 오후에는 교학 강의가 이어졌다. 선주(禪主) 월암스님이 ‘선종사상사와 간화선’을 지난 9일부터 5일간 강의했고, 지난 14일에는 황벽스님의 〈전심법요〉를 통해 조사선 사상을 밝혔다. 15일에는 동국대 교수 법산스님과 안국선원장 수불스님을 초청해 ‘한국선종사와 벽송사’와 ‘간화선과 현대포교’를 주제로 특강을 열었다. 다음날에는 이미 분임토의를 계속해온 납자들이 ‘선사상과 간화방법론’을 놓고 논강을 펼쳤다.

‘선’을 통해 진리를 구현하고 선 수행과 교학을 함께 하는 선회는 진리참구의 영역을 바깥으로까지 돌려, 17일에는 산행정진을 진행했다. 도솔암과 상무주암, 영원사로 이어지는 길을 7시간에 걸쳐 행선(行禪)했다.

11일 동안 진행된 선회는 부처님의 마음(禪)과 부처님의 말씀(敎)을 접합하는 첫 시도였지만 미래 한국 선불교의 새로운 이정표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벽송선원의 행보는 벽송지엄스님의 선교겸수의 조선 선맥(禪脈)의 전통을 잇는다는 우선적인 의미가 있다. 여기에 조계종이 〈간화선〉을 발간하는 등 간화선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불교가 나아갈 방향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것이 선회다.

21세기 정신문명의 대안으로서 간화선은 어디로 가야하는지 논의가 활발한 가운데 벽송선원의 선회는 미래 대안문명으로 역할을 논의하고 고민하는 장으로써 첫 발을 내딛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이번 선회에서 방부를 들인 스님들은 대부분 선원 수좌들이었다는 것이 현대사회에서 선회의 의미를 높이는 근원이다.

선원 수좌들은 이번 선회에 대해 환희심까지 느끼고 있다. 매 철마다 계속 하자는 성화 아닌 성화는 선회가 끝나기 전부터 드러난 목소리다. 선회에 동참한 덕진스님은 “스님들을 위한 재교육 프로그램이 없는 현실에 답답할 때 많았는데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며 “선방에 있는 스님들이 문자에 대한 불안감을 없애도록 지속적으로 활성화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단적인 예로 지난 15일 진행된 수불스님의 특강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사찰에서 간화선을 시작하면 오래 못 버티는 경우가 많아 어떻게 이끌어 갈지 고민하는 차에 수행을 통해 포교하는 방법을 수불스님이 제시해 큰 길이 열렸다는 반응이다. 이제 겨우 시작이지만 선회는 벌써부터 한국불교를 조금씩 바꾸고 있었다.

30대 초반에서 60세가 넘는 세수에, 법랍 1년 신참부터 30년이 넘는 구참스님까지 다양한 납자들이 어울릴 수 있는 이유다. 게다가 다른 종단의 스님들도 10여 명이 넘게 청강을 듣게 만드는 힘이 바로 벽송선원 선회다.

현대불교사에서 처음 열린 선회의 이같은 성과를 불교계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발전시킬지가 과제로 남아 있다.

벽송선원은 이번 성과를 바탕으로 선회를 정례화할 계획이다. 정례화에는 다양한 내용을 포함시킨다는 확대의 의미도 더한다. 실참을 더 강화하고 선원장급 이상의 선 종장을 초청해 사회 각계각층의 정보와 이론을 수용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구상이다. 선주 월암스님은 “출가해 수행하는 이유는 요익중생(饒益衆生)을 실천하기 위함이며 선회도 이를 실현하려는 발걸음”이라며 “선회가 다른 선원에서도 이어지고 더욱 발전해 이념과 실천이 함께 수행되는 선 풍토가 진작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선교를 겸수한 대종장을 108명이나 배출해 ‘백팔조사 행화도량(百八祖師 行化道場)’이라는 별칭이 붙은 벽송사. 미래 또 다른 108 대종장 배출을 꿈꾸고 있다.  

함양=김하영 기자

벽송선원은 …

행정.포교 소임자 위한
새로운 산철 결제 준비

벽송선원은 선회 이외에도 새로운 산철결제를 준비하고 있다. 종무행정에 종사하거나 포교에 힘쓰는 스님들을 위한 선원을 개원하는 것이다. 높아만 보이는 선방의 문턱을 낮춘다는 구상이다. 현실적으로 또는 의식적으로 3개월 간 선원에 방부를 들이기 어려운 스님들에게 짧은 기간이나마 참선에 자연스럽게 입문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제공할 계획이다.

이는 간화선을 제대로 전승하고 있는 한국불교가 선으로 포교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선주 월암스님의 생각이 반영된 것이다. 이를 통해 참가 대중들은 소임을 잠시 놓고 재충전할 수 있으며 간화선을 활용한 포교 프로그램을 생산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벽송선원은 이르면 올해 가을부터 늦어도 내년 봄부터 이를 추진할 계획이다.

[특강요약]

“선교겸수 벽송사 전통 이어가야”

동국대 교수 법산스님 ‘한국 선종사와 벽송사’

한국 선종은 육조혜능스님에서 시작돼 신라 구산선문을 거쳐 고려시대 선교합일을 추구했던 대각국사 의천스님, 보조국사 지눌스님 등을 배출했고, 진각국사 혜심스님이 한국 간화선의 뿌리를 내렸다. 이후 태고보우스님과 나옹혜근스님 그리고 조선조 청허유정스님으로 면면히 내려져 왔다.

벽송사를 창건한 벽송지엄(1464~ 1534)스님은 한국 선불교의 양대산맥으로 일컬어지는 청허유정스님과 부휴선수스님을 배출했다. 한국 선불교 최고의 종가로 불리는 벽송사를 세운 벽송스님의 선풍은 몇 가지 면에서 주목된다. 벽송스님은 연희교사를 찾아가 교학의 수련을 쌓은 점이다. 원돈교의(圓頓敎義)를 배웠다는 기록도 있고 능엄심의(능嚴深義)를 물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스님은 불교에 입문해 먼저 교학을 연마하는 과정을 밟은 것이다.

또 스님은 교의에 집착하지 않고 선정수련을 해 선지를 체득했다. 후학을 인도할 때 교의와 선지(禪旨)를 다 응용해 선양했으니 스님의 선풍은 교의와 선지를 일상생활 속에서 그대로 실천했다. 평소에 의복과 식사를 매우 검소하게 하고 조용한 시간을 많이 보냈으며 〈법화경〉을 강설하다가 입적으로서 적멸상을 보인 것은 벽송선풍의 중요한 면이라 하겠다.

벽송스님을 이은 부용영관(1485~ 1571)스님은 일상생활 속 상황에 따라 해박하고 자상하며 격이 높은 가르침을 베풀었다. 이는 부용선풍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면모다. 스님은 부용당이란 당호가 시사하는 바와 같이 정토에 대한 발원도 선풍 속에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선교겸수의 벽송사의 전통을 이어가야 한다. 불교를 이론적으로 이해하고 이후 반드시 깨달음을 얻는 수행으로 가야 한다.

“수행 안 하면 포교도 안 된다”

안국선원장 수불스님 ‘간화선과 현대포교’

1989년 가을부터 지금까지 신도대상으로 간화선 수행을 하고 있다. 초기 1년6개월 동안 하루 8시간 신도와 함께 했으나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수행은 안 된다는 생각에 한계를 느끼고 존폐의 기로에 섰던 적이 있었다. 3개월 동안 칩거하며 문제점을 가만히 조망했다. 그러고 보니 나에게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됐다. 내 자신이 잘못 알고 있는 것을 바로 알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후 현재 우리 선원에서 안거를 드는 신자수는 서울과 부산을 합쳐 1700여 명이 된다. 탈락자도 10%가 안 된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 큰스님을 모시고 10년간 봉양한 후 포교당을 내면서 기존 선방 수행방법을 신도들과 함께 하고 싶다는 원력을 냈다. 처음에는 큰스님들에게 화두를 받아와 참구하는 방식을 썼지만 철을 지내기를 어려워하고 힘들어했다. 그래서 내가 화두를 제시하기 시작했다. 화두에는 문제가 없었다. 화두를 참구하고 간택하는 것에 결정적인 문제가 있었다. 신도들에게 눈 뜨고 공부하라. 앉아서 졸지 마라. 누워서 자라. 자는 것은 상관 없으나 깨우는 기운이 있으면 일어나라고 제시했다. 잡념이 흐르거든 그대로 두고 화두에 집중하라 가르쳤다.

이때부터 치열하고 과격한 화두참구가 시작됐다. 간화선은 처음부터 끝까지, 길을 닦아 가며 하나하나 행동을 함께 하며 최선을 다해야 힘이 나온다. 화두라는 문제를 외워 답을 찾는 오류가 있으면 안 된다. 그냥 답만 찾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수행없이 안목은 바뀌지 않는다. 신행생활로는 불가능한 것이다. 수행만 갖고 포교가 될 수 있겠냐는 의심이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수행이 없으면 포교가 되지 않는다. 수행을 해야 원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불교신문2263호/ 9월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