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의 고요와 정진의 조화

오솔길.
산중에 자리한 대학은 단풍으로 물든 가을날 더욱 시리다. 부산 동의대학교도 마찬가지이다. 학교에 오르면 오를수록 코끝 가득 채워지는 시린 향이 그러하다. 학생회장 선거를 위한 학생들의 열띤 목소리가 먼 메아리처럼 와 닿는 기숙사 가는 길. 이곳으로부터 이어지는 안국사(주지 수불스님) 진입로는 캠퍼스의 낭만과 산사의 운치를 동시에 체험할 수 있는 명소라고 감히 제안한다. 오른쪽으로는 안창마을, 왼쪽으로는 동의대학교 사이에서 태평산을 등지고 자리한 안국사. 안국사는 ‘고요’와 ‘정진’이라는 두 단어를 떠올리게 한다.

고요.
발 딛는 소리에 신경이 갈 정도로 차분한 경내 분위기와 대저택의 정원을 연상시키는 절 마당. 늦은 오후 안국사를 찾아 대웅전 삼존 부처님께 인사를 올린다.
도량을 둘러보니 방사마다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다. 저녁 공양을 준비하는 손길, 정진의 편안함을 위해 전기시설을 손질하는 거사님, 종무소, 법인사무실, 인터넷실의 바쁘게 돌아가는 손길도 보인다. 대부분의 사찰에서는 법당의 촛불을 끄고 문을 잠그는 시간임에도 안국사는 저녁 불자들을 위해 쉬지 않고 법륜을 굴리고 있다.
1970년대 말 범어사 내원암 회주 능가스님의 상좌 지명스님이 건립한 안국사는 고찰의 풍모를 닮은 현대의 사찰이다.
대웅전, 약사전, 미타전, 마당 좌우에 위치한 공양간과 요사채, 일주문에 해당하는 백운정사, 선방인 법실, 태평원, 정실, 혜실, 수실 등 둥근 원을 연상시키는 가람배치는 ‘안국사’이름처럼 편안함이 스며 있다. 계단처럼 이어지는 낮은 기와 담장은 시골집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열정.
지명스님의 상좌로 범어사 강원을 졸업하고 능가스님을 7년간 시봉한 안국사 주지 수불스님은 1989년 금정포교당에서 재가 불자들에게 화두선 지도를 시작했다.
1993년부터는 안국사고 이전하고 재단법인 대한불교조계종 안국선원을 설립, 본격적인 활구선 포교를 시작했다.
매일 300여명, 안거기간이면 1천여 명의 불자들이 찾는 도량 안국사는 새벽, 사시, 저녁 하루 세 차례 대중정진을 한다. 결제기간이면 도량 전체가 선방이 된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낯선, 그러나 안국사 불자들에게는 당연한 풍경이다.
안국사의 수행력은 이미 전국, 아니 전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다. 서울, 창원, 미국에 분원성격의 안국선원이 개설돼 있으며 내년 봄께 금정구 남산동에도 안국선문화원이 여법한 개원을 알릴 계획이다. 고요함이 내재된 불자들의 수행 원력은 한국불교의 세계화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하다.
안국사 불자들의 선의 생활화는 물론 교리공부, 다도, 서예, 꽃꽂이, 선시창작 등 수행과 연결된 다양한 문화활동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안국선원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보이는 불자들의 실력은 아마추어를 넘어선다.
2005년에 선보일 안국사의 달력을 보니 퍽 인상적이다.
주지 수불스님의 수계식 기념사진을 비롯해 한 사람이 출가를 위해 거쳐야 하는 과정을 엮은 ‘주제’가 담긴 12장의 신년 카렌다가 그것이다. “철저하게 공부하라. 그리고 정진하라.”는 준엄한 가르침이 고스란히 발견된다.

하산.
어느새 해가 기울었다. 제법 두툼해진 달이 태평산 뒤로 떴다. 동안거 결제가 며칠 남지 않았지만 안국사는 음력 10월 초하루부터 안거에 들어갔다고 한다. 몇 시간 뒤면 저녁정진이 시작된다. 공양간에는 벌써 따뜻한 공기가 후끈하고 인터넷 편집실의 불은 꺼질 줄 모른다. 어둑해진 오솔길을 따라 달밤에 빛나는 단풍이 더욱 곱다. 안국산 선방에 앉아 화두 정진하는 재가불자들의 활력 덕분에 나 또한 고요한 걸음으로 하산을 서두른다.

법보신문 주영미 기자
맑은소리 맑은나라 2004년 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