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땟국이 죽 빠지는 기분입니다”

	△ 지난해 2월 동안거 해제를 앞두고 서울 안국선원에서정진중인 재가자들

■ 간화선 수행 시민선방
   안국선원에 가다

동안거 해제를 앞두고 있는 시민선방 안국선원을 1년 만에 다시 찾았다. 간화선 수행의 대중화는 가능한가라는 분분한 논의 때문이다.

조계종단의 올해 가장 큰 역점사업 가운데 하나는 ‘간화선 수행체계 정리’ 문제다.
남방불교 수행법인 위파사나가 급속히 확산되고, 아봐타 마음수련 요가명상 등 각종 수행법들이 대중에게 깊이 파고들지만, 간화선은 출가승조차 부담스럽고 힘들어하는 게 현실이다. 때문에 간화선 수행만 고집하지 말고 다른 수행법을 받아들여 근기에 맞게 수행할 수 있도록 하자는 논의가 수좌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그런 가운데 간화선 수행만으로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안국선원은 조계종단 안에서도 연구대상이다. 부산 안국사에서 출발해 부산안국선원, 서울안국선원, 경남 창원안국선원 등으로, 해외에는 뉴질랜드 웰링턴과 미국 휴스턴에 지부를 두고 있다. 부산에 처음 선원을 개소하고 10여년 만이다. 이번 동안거엔 서울 770여명, 부산 600명, 창원 120명 정도의 신도가 참여했다.

“간화선의 맥이 끊겼다고요 글쎄요. 저희들에겐 깨우침에 이르는 가장 쉬운 길 같은데요.” 신도회 부회장 석천 거사가 조심스럽게 말한다. “조사록에 보면 공부(참선정진)하는 것은 세수하다가 코를 만지는 것보다 더 쉽다고 했습니다.”
석천거사의 덧붙이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선원장이자 주지인 수불 스님의 호령이 떨어졌다. “그만 하세요. 남들이 어렵다고 하는 것을 쉽다고 말하면 다툼이 생깁니다. 쉬운지 어려운지는 경험해 보면 될 일입니다.”

조계종단에는 간화선이 깨침에 이르는 가장 정확한 길이지만, 그것을 쉬운 수행법이라고 보는 사람은 드물다. 평생 화두 하나를 들고 제방 선원을 전전했어도 깨치지 못한 수좌가 허다하다. 그런데 이곳 수행자들은 어떠하길래 쉽다고 하는 걸까.

“물론 처음엔 어렵지요. 그러나 3일에서 7일이면 대개 화두를 깨칩니다. 저요 물물이 화두이니 더 이상 화두를 찾지 않아요. 옛날처럼 조바심내지도 않고, 그저 담담하게 지냅니다.”(평등각 보살)

“얼만큼 정진하다 보니 나의 잘못들이 환하게 보였어요. 남의 잘못만을 보던 내가 나의 것도 보게 된 거죠. 그렇다보니 다른 사람을 미워하고 비난할 수 없었습니다. 자연스럽게 화합이 되더라고요. 집안에서도 좋아합니다. 나의 생각이 긍정적으로 변하니까 집안이 편안해졌어요. 식구들이 선방에 나가라고 등을 떠밀어요.”(고불장 보살)

“어느 날 정진 도중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 우리가 모두 한 가족이구나. 나는 나, 너는 너라는 생각이 사라진 거죠. 이때부턴 스님의 법문이건 화두건 모두 달라졌지요.”(대선행 보살)

“화두를 받고 정진에 들어가자 큰 의심덩어리가 나를 휘감았습니다. 머리에 불이 붙은 듯했습니다. 고통스런 시간을 이겨내자 통쾌한 느낌과 함께 환희심이 차 올랐습니다. 그후 사람들에 대해 이해심과 아량을 갖게 됐습니다. 모두가 다를 게 없는데 다른 사람에게 나쁜 마음을 가질 수 있겠어요.”(대법장 보살)

“땟국이 죽 빠지는 기분이었죠. 내 마음의 꼴을 보게 되니, 자연히 긍정적인 삶을 살게 되더군요.”(대각안 보살)

과연 깨침의 증거로 어떤 변화가 있었는가를 거듭 묻는 기자에게 한 보살은 이렇게 말했다. “물어보지만 말고 한번 맛을 보세요. 그래야 알 수 있어요. 말로는 몰라요.” 조계종 포교원 연구실에선 안국선원을 벤치마킹하고 있다.

곽병찬 기자 chankb@hani.co.kr
<한겨레신문>2004-0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