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생속에 깃든 화두선

「인터뷰」안국선원장 수불 스님

- 종교는 목적아닌 진리의 방편 -
수불스님은 범어사 강원을 졸업하고 7년 여동안 능가 스님을 시봉했다.
1989년 부산 태평산 안국사에서 재가자들에게 화두(간화)선을 지도하기 시작했다.
서울엔 96년 서초동에 선원을 열었다가 화두선 참여자들이 급격히 늘자 2000년 11월 가회동 선원을 지어 옮겼다.

그가 시중에 나오면서 산중의 화두선도 시중으로 나온 셈이다.

그는 “공부 후 수십 번 스스로를 흔들어 보았다” 고 말해, 자신의 수행에 대해 검증했음을 내비쳤다.
그러나 처음 화두선을 지도할 때는 몇 년 동안 지도 방법을 몰라 좌절한 적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화두선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고, 자신의 지도 방법에 문제가 있다고 여겨 100일 동안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그래서 옛 선사들의 화두에 의존하지 않고, 바로 이 자리에서 의심을 이끄는 활구 참선으로 수행자들을 이끌면서 화두선 바람을 이끌어냈다.

그는 “산중에서도 쉽지 않은 화두선을 시중에서도 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스님들은 믿기 어려울 것” 이라며,
“그러나 역사가 얘기해 줄 것” 이라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그는 “옛 선지식들이 화두선을 비밀처럼 간직해 소수의 사람들만 할 수 있는 어렵고, 비밀스러운 것으로 인식돼 있지만, 이제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을 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 이라고 말했다.

그는 “종교는 진리로 가기 위한 방편이지 목적이 아니” 라면서 “화두는 진리를 직접 체험하기 위한 것” 이라고 말했다.

도심에 내려온 화두

- 의심의 불길 억겁의 눈물, 중생속에 깃든 '화두선' -
지난 7일 서울 종로구 가회동 안국선원.
4층 대법당에서 정초법회를 마친 700여명이 빼곡이 앉아 있다.
참선 정진 중이다. 이들은 하나 같이 화두선을 하고 있다.
현재 전국 50여개 사찰의 선방에선 2천여 명의 승려들이 동안거(100일의 겨울집중수행)를 나고 있다.

화두선은 우리 나라 불교 조계종의 대표적 수행이다.
그러나 수행 과정이 만만치 않아 눈 밝은 선지식(선사)의 지도를 받지 않고선 성과를 얻기 어려운 공부다.
이 때문에 화두는 염불, 경전 공부에 비해 일반인들에게 다가서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따라서 범어사, 통도사, 해운정사, 해인사 원당암, 용화선원 등 일부 큰 사찰들이 재가자 선방을 두고 있을 뿐, 시중에선 선원이라고 이름 붙은 곳이라도 화두선을 하고 있는 곳은 거의 없다.

기복불교에서 벗어나는 불자들의 의식이 변화하면서 최근 10여년 만에 사찰에서 운영하는 불교대학이 100여 곳이나 생겨났지만, 화두선은 아직까지도 일반인에겐 접근이 쉽지 않은 영역이다. 또 최근엔 남방불교의 관법 수행인 위파사나가 급격히 퍼지고 있다. 일부에선 천년 동안 내려온 ‘화두선의 시대는 끝났다’ 는 ‘화두선 무용론’ 이 제기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안국선원의 화두선 열기는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안국선원은 전국에 세 곳이 있는데, 서울 700여명, 부산 600여명, 창원 150여명 등 모두 1500여명이 선방 수좌 승려들과 다름 없이 동안거 중이다. 이들은 겨우내 새벽, 낮, 밤 시간 등 자신의 수행 시간을 정해 놓고 정진하고 있다.
그토록 어렵다는 화두를 이들이 어떻게 들 수 있을까.

다음날 오전 9시. 3층 작은 선방에 60여 명이 빼곡이 앉아 있다. 아직은 좌선 자세마저 서툰 초보들이다. 이들은 일단 수불 스님이 준 화두를 타파해야만 위층 700여 명의 불자들과 같이 법회나 동안거에 참여할 수 있다.
바짝 긴장한 채 선원장 수불 스님의 일거수일투족을 바라본다. 수불 스님이 갑자기 오른손을 들어 검지손가락을 굽혔다가 편다. 모든 이들의 눈동자가 수불 스님의 검지손가락 끝에 집중한다.
“이것을 누가 움직이는가”
선가의 근본 화두인 ‘본성품’ 을 물은 것이다.
그러나 수불 스님은 옛날 책자에 자주 등장해 이미 사람들의 뇌리에 박혀 더 이상 의심을 불러오지 못한 채 ‘죽은 문자(사구)' 가 돼버린 ‘이 뭣고’ 대신, 지금 이 자리에서 손가락을 통해 ‘살아 있는 화두(활구)' 를 던졌다.
“내 손이 움직인다” 거나 “내 마음이 움직인다” 는 듯이 바라보는 눈동자를 향해 일갈이 터진다.
“손이 움직이는 것이라면, 죽은 송장도 손이 있는데, 그 손은 왜 움직이지 않는가.”
순간 초심자들의 숨이 멎은 듯하다. 수불 스님이 던진 낚시 바늘이 목을 관통한 듯하다. 앞이 캄캄해진다. 앞도 뒤도 옆도 모두 벽으로 막힌 듯 답답해진다.
“손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마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움직이지 않는 것도 아니다. 이 손으로 하여금 움직이게 하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
수불 스님이 나사를 조이듯 더욱 조인다. 드디어 의심이 발동한다. 화두가 생명력을 잃고 사멸하고 있는 것은 의심을 불러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련한 낚시꾼처럼 줄을 당기는 스님의 솜씨에 이 곳 초심자들은 목에 걸린 낚싯줄을 뱉지도 못하고 삼키지도 못한다.
어미소를 찾는 송아지처럼 초심자들이 본성을 찾아 나선다.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고, 보려고 해도 볼 수 없는 물건을 찾아 애타는 초심자들의 의심이 불길처럼 치솟는다.

이렇게 화두 일념으로 24시간을 보낸 50대 여자는 “가슴이 답답하다” 고 호소했고, 같은 또래의 다른 여자는 “온 몸이 떨린다” 고 했다.
40대 여자는 “황금빛이 나를 감싸안는다” 고 했고,
20대 여자는 “그토록 답답한 가슴이 뻥 뚫린 듯 평안해져 버렸고, 머리가 시원하기 이를 데 없다” 고 했다.
수불 스님은 “그 순간에도 화두를 놓치지 않고 챙겼는지” 를 물었다.
어떤 경계(체험)가 오더라도 그것에 현혹되지 말고, 본성을 몰라 답답한 그 마음만을 밀고 나가라고 채근했다.
화두를 놓칠 때마다 “이 뭣고” 라며 다시 자신에게 묻는다는 한 60대 거사에게는 채찍이 가해진다.
“'이 뭣고' 라고 질문을 되뇌이는 건 화두선이 아니다. 이미 질문은 내가 던졌다. 여러분은 답만 찾으면 된다.
질문만을 반복하고 있을 셈인가. 질문은 잊고 오직 답만을 찾아가라. 지금 답을 몰라 답답한 것이 아닌가.
그 답답한 의심이 의단이다. 오직 그 답답한 마음만을 밀고 나가라.”

오랫 동안 자신을 붙들고 있던 집착과 괴로움도 화두 의심에만 몰입한 사이 어느새 사라지고 없다.
화두에 잠긴 초심자들의 눈에선 수억 겁 동안의 ‘무명’과 업이 녹는 듯이 하염 없이 눈물이 솟아지기도 한다.
지금 안국선원에선 의심의 불기둥 속에서 번뇌와 업에 더 이상 물들지 않는 자성(자기 본성)의 빛이 떠오르고 있다.

<한겨레신문>2003-0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