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종교는 신비가 아니라 진실이다

선불교는 형식 넘어 궁극적인 진리 지향

불교는 무조건 믿으라 하지 않아

진정한 자유와 평화 행복 실현은

스스로 체험을 통해 실증케 해야

지난 해 미국 조지아대학생들이 범어사를 방문했을 때, 그들과 격의 없이 주고받은 대화의 일부이다.

스님: 어떤 질문이라도 좋으니, 마음껏 물어보세요.

학생: 스님께서는 언제 출가하겠다는 생각을 하셨습니까?

스님: 40년 전입니다.

학생: 왜 그런 결심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스님: 저는 21살에 마치 이미 정해진 것처럼 들어왔습니다. 그냥 여기에 꼭 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고 할까요. 저는 스스로 좋아서 들어왔기 때문에, 한번도 후회한 적이 없습니다.

학생: 불교의 가장 아름다운 점은 무엇입니까?

스님: 무어라고 딱 집어서 답변하기 어렵네요. 절집 안에는 ‘청정’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같은 말이라도, 세간에서 사용할 때와 절에서 사용할 때는 그 의미가 달라집니다. 일반적인 청정이 상대적 깨끗함이라면, 종교적인 청정은 절대적인 것입니다. 상대적인 청정은 물들 수 있는 것인 반면에, 절대적 청정은 물이 들지 않는 깨끗함입니다. 그래서 불법(佛法)을 ‘진흙탕에 핀 연꽃’이라고 비유하는 것입니다. 상대적인 청정과 절대적인 청정, 이 두 가지 입장을 다 소화하는 힘이 불교의 아름다운 매력이라고 하겠지요. 그러면 이제 제가 여러분에게 질문을 하나 던져보겠습니다. 무엇이 사물을 본다고 생각하십니까?

학생: 눈이 봅니다.

스님: 사실은 눈이 보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가 눈을 통해서 보고 있는 것입니다. 눈은 볼 수 있는 기능은 가졌지만, 보는 작용을 스스로 할 수 있는 힘은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눈으로 하여금 보게 하는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하게 됩니다. 그걸 어떻게 해야 알 수 있을까요? 그 해답은 종교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종교는 수단이지 목적이 아닙니다. 우리는 종교를 위해서 종교생활을 하면 안 됩니다. 종교를 통해서 종교가 말하려고 하는 핵심이 무엇인지를 파악할 수 있어야 됩니다. 무조건 믿으라고만 가르치는 종교도 있겠지만, 불교는 무조건 믿으라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웃음) 또 질문하십시오.

학생: 요즘 젊은 스님은 예전과 달라서, 핸드폰도 있고 SNS로 사회와 소통하기도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스님: 종교가 나와서 어리석음을 지혜로움으로 전환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 이후, 인류는 엄청난 발전을 이룩하였습니다.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는 방법 가운데, 종교를 능가할 수 있는 것이 있겠습니까? 종교를 통해서 진리에 접근하고, 진리와 합일할 수 있는 가르침을 전해받을 수 있게 된 것은 굉장한 축복입니다. 길게 볼 때, 과학과 종교는 서로 모순되지 않게 상호 교류하며 인류에게 행복을 가져다줄 것입니다.

학생: 스님께서는 불교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들이 불교에 대해서 알아야 되는 가장 중요한 점이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스님: 진리에 눈뜨는 것입니다. 불교의 특징은 어리석음을 지혜로움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방법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지요. 자유, 평화, 행복 등이 진정으로 실현되기 위해서는 스스로 온몸이 열리는 체험을 통해서 실증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깨달음의 체득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것입니다. 서구인들은 지금 합리적으로 빨리 깨어나고 있습니다. 인지(人知)가 깨어날수록 인류문명은 변화를 피할 수 없을 것인데, 그 변화의 방향은 객관적으로 타당한 진리를 향해 나아갈 것입니다.

선불교는 모든 형식을 뛰어넘어 궁극적인 진리를 지향합니다. 종교는 신비가 아니라 진실입니다. 그 진실은 이미 다 공개되어 있어서, 종교에서는 더 이상 비밀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눈뜨게 할 수 있는 힘이 선불교에 있습니다.

여러분, 이곳 부산 범어사를 방문해주신 것을 환영합니다.


수불스님 | 금정총림 범어사 주지
[불교신문 2016년 4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