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인류에게 영원한 행복을 제공할 힘이 있는가

세계지성의 도전과 한국불교의 응전

최고수행법엔 ‘선지식 안내’가 필수

웰빙·힐링 유행 지나면 ‘참나’ 찾는

간화선 대중화 시절인연이 열릴 것

선불교는 종교를 위한 종교라기보다는 종교를 수단으로 하는 가르침이다. 누구든지 관심이 있고 인연이 있는 불자라면 두말할 것도 없겠지만, 불자가 아니더라도 바른 가르침을 만나면 쉽게 공부의 힘을 얻고 바른 길을 갈 수 있는 것이 선불교의 특징이다. 정견(正見)에 대한 가르침에도 의지해야 되겠지만 어느 순간 가르침까지도 모두 버리고 직접 온몸으로 체험할 수 있는 인연에 나아가 공부할 수 있도록 할 때, 선불교의 대중화도 가능할 것이다.

수행체험을 통해 모습이 있고 없고에 관계없이 정진할 수 있는 공부인연을 짓도록 할 때, 한국인뿐만 아니라 세계의 지성인들까지도 거듭 깨어나게 될 것이다. 이렇게 선불교의 수행을 통한 정신세계의 안정적 지속력이 우리 모두에게 미래의 큰 희망을 가져다줄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 일은 선지식의 직접적인 가르침을 통해 스스로 체험해 보지 않고서는 매우 어렵다. 이 일단의 일은 혼자서 공부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반드시 눈 밝은 스승을 찾아서 공부하라고 했다. 그리고 눈 밝은 선지식을 의지하고 공부해서, 안목을 열고 원력으로 거듭날 수 있는 수행인 간화선이야말로 지금의 현실에 알맞게 선불교를 대중화할 수 있는 수행방법이다.

참선수행에서 가장 급선무는 명안종사를 만나서, 실참(實參)에 들어가 불법의 진수를 직접 체험하는 것이다. 눈 밝은 스승의 올바른 지도 아래, 짧은 시간 내에 불법(佛法)에 대한 정안(正眼)을 열 수 있는 가르침이 간화선이다. 명안종사의 안내를 받아야 모든 인연들이 반듯이 서서 올바른 수행이 진행된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간화선에서는 화두를 받는다고 해서 전부는 아니다. 선지식의 지도없이 화두만 받아 혼자 공부해서는, 화두를 지속적으로 들기 어렵다. 설사 들린다 하더라도 공부를 지어나가기가 어렵다. 또한 공부를 지어나가더라도, 길을 모르니 경계를 만났을 때 이겨내기가 매우 어렵다. 그래서 처음부터 끝까지 눈 밝은 분의 안내가 꼭 필요하다.

과거에는 간화선 수행이 소수의 전문 수좌 스님들 위주로 진행되었지만, 다행히도 이제는 재가신도들이라도 간절한 신심만 낸다면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얼마든지 열려 있다. 출가와 재가를 가리지 않고 누구라도 인연 닿는 사람들을 눈뜨게 해주신 부처님을 본받아서, 우리시대 최선의 수행법인 간화선의 대중화가 진정으로 실현되어야 하겠다. 이제는 당위론을 넘어서 현실화의 실질적인 시절인연이 열릴 때이다.

이와 같은 일련의 가르침은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다. 특히 한국 선종은 그 유구한 전통을 이어나갈 책임이 있다. 지금부터라도 불조(佛祖)께서 말씀하신 대의명분을 바로 살피고 세워서, 시간을 헛되이 보내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 지구촌의 인류에게 더 큰 희망과 미래의 대안이 될 수 있는 부처님과 조사들의 가르침인 선불교를 더욱 널리 펴고 가르쳐서, 모두가 지혜로 거듭날 수 있도록 다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다. 믿음을 낸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의 본래부처를 자각케 하고 불법의 안목으로 거듭나게 하는 것이야말로, 불조의 혜명을 잇는 최고의 불사(佛事)라는 점을 새삼 강조하고 싶다.

세계적으로 웰빙과 힐링의 유행이 지나가면, 반드시 ‘참나(眞我)’를 밝혀 영원한 행복을 구가하는 간화선 대중화의 시절인연이 열릴 것이다. 미리미리 잘 준비하여 실기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불조의 은혜에 보답하는 불제자의 도리에 합당한 일일 것이다.

긴 밤이 지나고 새벽이 밝아오고 있다. 한국불교의 흥망이 결정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세계 지성계는 한국불교에게 과연 인류에게 영원한 행복을 제공할 힘이 있느냐고 물어오고 있다. 이 도전에 어떻게 응전하느냐에 따라, 한국불교의 흥망이 갈릴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 냉철히 돌아봐야 한다. 과연 우리에게 자타(自他)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밝힐 힘이 있는지를. 그렇지 않다면 한국불교는 세계 지성계의 변방으로 추락하고, 초라한 껍데기만 남게 될 것이다.


수불스님 | 금정총림 범어사 주지
[불교신문 2016년 4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