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종교의 역할과 중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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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를 밝히면 복은 저절로 생겨
선지식과의 인연이 ‘행복의 열쇠’
최근 밝혀진 우주 창조의 과학적 가설에 의하면, 우주가 처음 탄생한 것은 137억 년 전의 일이라고 한다. 지구가 생긴 것은 50억 년
전의 일이고, 인류가 형성된 것은 300~400만 년 전이었다. 현생 인류의 조상은 15만 년 전에 아프리카에서 출현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종교라고 부르는 문화현상은 과연 얼마 전부터 비롯되었을까? 처음에는 주술적이고, 제사장적이며, 태양숭배 같은 유사종교의 형태를 띠었을
것이다. 그러나 문서화된 경전을 갖추고, 교리가 이치에 합당하며, 또 그 내용이 사실로 증명될 수 있어야 종교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기본
조건들을 충족하는 정식 종교가 출현한 것은 역사적으로 볼 때,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현재 세계적으로 인정받으면서 많은 신자를 확보하고 있는 종교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은 힌두교인데, 그것이 종교적으로 확립된 것은 기껏해야
4000~5000년 전의 일이다. 불교는 2600년, 기독교는 2000년, 이슬람교는 1400년 전에 탄생했다. 따라서 종교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고, 기나긴 생명 발전의 역사에서 볼 때 매우 일천한 최근의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의 역사에 종교가 등장한 이후, 삶의 질은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종교가 없었을 때, 인간은 근본 지혜에 눈뜰 수 있는 근거와
기회를 가질 수 없었다. 하지만 종교가 세상에 출현하여 인간정신이 깨어나면서, 이 세상의 변화가 급속도로 일어난 것이다. 종교를 통하여 비로소
인류는 지혜의 눈을 뜨고, 이 세상의 실상(實相)을 통찰할 수 있게 됐다. 이렇게 되기까지 생명은 까마득히 먼 길을 걸어왔다. 이런 점에서 인류
정신세계의 발전에 기여한 종교의 역할과 필요성에 대해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어리석음을 지혜로움으로 전환시키는 방법을 찾아서 전하셨다. 우리의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아주 근원적인, 마음의 밑바탕에 깔린
그 어두움을 뽑아서 변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제시함으로써, 인간이 거듭나는 계기를 여신 것이다. 그 힘은 부처님께서 어떤 맹목적인 믿음
체계에 함몰되지 않고, 거기서 더 나아가 생사를 벗어나기 위한 뼈저리고도 지혜로운 수행을 통해 몸소 깨달음을 맛보았기 때문이다. 석존은 스스로
‘깨달은 자(覺者, Buddha)’가 되어, ‘깨달음의 가르침(佛敎)’을 세상에 전했다. 그러므로 불교는 창시자인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팔만대장경을 통해 이 세상의 실상을 낱낱이 밝히고, 또 인생의 길인 중도(中道)를 정확하게 제시해 놓은 고등종교인 것이다.
석존께서 보리수 아래에서 대각(大覺)을 성취했을 때, 당신 혼자만 깨닫고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마음에는 이미 불성(佛性)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통찰했다. 단지 중생은 스스로 미혹하여 이 사실을 깨우치지 못했을 뿐이었다.
자비로운 부처님께서는 지혜를 열어 가르쳐주시고, 누구나 깨달을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다. 그 덕분에 인류는 지혜로운 눈을 떠서 내면의
어리석음과 어둠을 타파하고, 번뇌 망상 속에서도 구속받지 않고 자유와 평등을 누리는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됐다.
인간은 깨달음의 눈을 떠야 삶의 질을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으며, 승속을 불문하고 누구나 깨달을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부처님의 진정한
원력이며 가르침이다. 하지만 불교를 믿고 배운다고 해서, 단번에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깨달음은 직접 온몸으로 부닥치는 수행을 해야
가능하다. 깨달음의 종교인 불교는 본질적으로 기복신앙이 아니라, 수행종교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미 깨달음을 체험한 선지식(善知識)을 만나,
차원 높은 가치에 눈뜰 수 있는 인연을 여는 것이 삶의 질을 변화시키는 첩경이다. 누구나 자기 인생을 승화시키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으며,
지혜를 먼저 밝히면 복은 저절로 따라오게 되어있다. 그러므로 선지식과의 인연을 맺는 것이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열쇠인 것이다.
수불스님 | 금정총림 범어사 주지 [불교신문 2016년 3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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