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 이해영역일까？_불교는 지금 탁마 열풍
종단 승가교육의 수장 현응스님
간화선 수행 대표하는 수불스님
깨달음 관련 정의두고 갑론을박
현재종단 수행풍토에 대한 반성
시대에 맞춘 불교현대화는
동의
깨달음은 이해의 영역일까 아니면 사유의 영역을 초월한 마음일까. 조계종 승가교육의 수장인 교육원장 현응스님과 간화선 수행을 대표하는
금정총림 범어사 주지 수불스님의 ‘깨달음 논쟁’이 뜨거워지면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시작은 현응스님이다. 스님은 지난 2015년 9월 저서 <깨달음과 역사> 발간 25주년을 기념한 학술세미나 ‘깨달음과 역사, 그
이후’에서 깨달음을 연기와 공을 이해하는 것이라는 견해를 밝히고 관련 글을 제방 스님들에게 보냈다. 이어 수불스님이 지난 연말 ‘조계종지의
현대적 구현-현응스님의 발제문을 읽고’라는 자료집을 만들어 배포하면서 논의는 더 활발해졌다.
게다가 지난 15일 정의평화불교연대 주최 세미나에서 현응스님이 자리가 마련되면 수불스님과 함께 이야기 나누면 좋겠다는 의사를 표하고 이튿날
수불스님이 범어사 성도재일 법회에서 깨달음 논쟁에 대해 언급하며 종단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마련되는 자리라면 언제든 환영한다고 답하면서 두 스님의
대담자리가 열릴 수도 있다는 기대감이 모아지고 있다.
두 스님의 견해는 현 조계종단의 수행풍토에 대한 반성이나 시대에 맞춰 한국불교가 현대화해야 한다는 고민에서 비롯됐으나 주장하는 바는 각기
다르다. 일단 현응스님은 “수십 년을 투자해도 현실적으로는 깨달았다고 하는 사람을 보기 힘든” 현실과 “깨달음을 신비한 경지로 묘사해 이를 얻기
위한 방법도 불분명하고, 깨달음의 성취 또한 어느 수준의 어떤 것을 말하는지 제대로 알 수 없다”는 점을 통해 오늘날 선수행 풍토에 대한 문제를
지적했다.
<마하박가(大品律藏)>의 서술을 근거로 스님은 “깨달음은 지혜와 이해의 영역이며, 선정수행을 통해 이루는 몸과 마음의 높은
경지를 뜻함이 아니다”는 주장을 폈다. 녹야원서 부처님 첫 설법을 들은 다섯 제자들이 부처님의 적극적인 설명과 토론을 통해 단시간에 깨달음을
얻었고, 이어 우안거 때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55명의 제자들이 아라한이 된 것이 이를 반증한다.
“깨달음을 잘 이해하는 현대적인 수행방법으로 설법과 질의응답, 토론, 경전과 어록 열람, 다양한 독서”를 통해 가능하다는 현응스님은
“독서와 사유야말로 이 현대사회의 사띠이자 간화선 수행”이라고 말했다.
스님은 “‘깨달음’은 연기를 잘 이해하는 것이고, ‘역사’는 방향과 내용을 선택해 구체적으로 행위하는 것”임을 역설하며 “아라한이 그가
살고 있는 역사에 현실적으로 참여하고자 하는 마음을 내어서 실제로 각종 바라밀행을 하는 것”이 바로 보살의 길임을 밝혔다.
그러나 수불스님은 현응스님이 깨달음과 간화선에 대해 오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불스님은 “깨닫지 못했으니까 깨달음의 내용이 추상적이며
구체적이지 않게 보이는 것이 당연하다”며 “본인이 깨닫지 못해 마음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고 해서 마음을 깨달아 증명하고 전등해준 선조 스님들을
부정”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 “깨달음에 관해 ‘이해’라는 용어는 설령 ‘깨달음 이후’라 해도 선종의 종지나 수행법과 맞지 않으며
이유가 무엇이든 깨달음에 방해가 될 뿐”이라고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교진여를 비롯한 다섯 비구가 대화와 설득을 통해 깨달았다는 현응스님의 입장도 반박했다. “<마하박가>에는 진리를 가르쳐도 일반
사람들이 잘 이해하지 못함을 내다본 부처님께서 차라리 진리를 설하지 않고 그냥 있기로 마음을 정했다고 나온다”며 “다섯 수행자가 진리를 깨닫는데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은 이유는 부처님 위신력과 특별한 상근기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수불스님은 도리어 “교진여는 부처님을 만나기 전부터
오랫동안 수행을 한 노(老) 수행자”로 “이해의 과정이 없지는 않았겠지만 부처님의 설득으로 깨달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수불스님은 “한국불교 중흥은 간화선을 현대에 맞게 훌륭히 살려내는 데 있다”며 “간화선법을 활용하지 못하는 우리들 자신과 현실상황을
반성해야지, 괜히 간화선법 자체를 문제 삼아 바꾸자는 것은 삿된 주장”이라고 말했다.
견해의 차이는 있지만 두 스님 모두 이런 논쟁을 반기는 분위기다. 현응스님은 “법을 논하는 자리는 언제든 환영한다”며 깨달음 논쟁은 물론
한국불교가 나갈 방향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라면 마다 않고 참석해 의견을 전하겠다고 밝혔다. 수불스님 역시 “공부하는 종단의 모습을 보여주는
바람직한 현상으로, 종단 차원의 공식적인 논쟁이면 참여하겠다”며 “불교를 믿는 신도들의 신심이 꺾이지 않도록 종단 기능을 바로 잡아서 올바로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부산=박부영 기자 | 어현경 기자
[불교신문 2016년 1월 20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