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마음이 장벽 같다면 가히 도에 들어갈 것이다

22. 종각선인(宗覺禪人)에게 주는 글

‘간(懇)’ 이 한 글자 이마에 새기고

공부한다면 이루지 못할 일 없어

본문: 시절이 말세여서 성인과의 간격이 더욱 멀어져 나라 안에는 부처의 종족들을 살펴보고 살펴보아도 다 없어졌다. 하나나 반개의 지조 있는 이를 얻기는 해도 감히 옛 큰스님들과 같기를 기대하지는 못한다.

해설: 원오극근스님은 제자인 종각선인에게 시절이 말세라고 엄격하게 말하고 있고, 사람들은 종종 우리들의 지금 시대도 말세라고 말하곤 한다. 그러나 사실상 법은 늘 함께 하고 있기 때문에 따로 말세라고 할 근거는 없다. 지금도 많은 수좌 스님들은 목숨을 걸어놓고 정진하고 있고, 나아가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재가 수행자들도 많이 늘어난 형편이다. 또한 최근에는 세계적으로 불교에 관심을 가지고 수행하고 있는 지성인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기 때문에, 현대는 오히려 불교의 부흥기라고 해야 더 맞는 말일 것이다.

‘하나나 반개의 지조 있는 이’에 관한 고사는 중국 전진왕(前秦王) 부견(符堅, 337~399)이 한 말이다. 그는 “짐은 10만 대군을 일으켜 양양을 치고, 한 개 반개를 얻었다. 도안이 한 개고, 습착지가 반개다”고 했다. 당대의 고승인 도안은 몸이 온전하여 ‘한 개’라 했고, 습착지는 다리가 불구여서 ‘반 개’라 한 것이다. 이로부터 불법의 귀함을 표현할 때 흔히 ‘한 개 반개’라는 말을 쓰게 됐다. 그 ‘한 개’인 도안은 왕사가 되어 불교를 크게 일으켰는데, 그의 추천으로 전진왕은 서역 구차국에 있던 구마라집(344~413)을 모셔오기 위해 다시 군대를 일으켰다. 우여곡절 끝에 장안에 들어온 구마라집은 많은 경전을 한역하여 중국 대승불교의 토대를 다졌다. 결국 ‘한 개 반개’의 작은 인연이 커져서 동아시아에서 대승불교를 일으켰다고 할 수 있다.

본문: 그러나 수행해 나아갈 바를 알아 머리부터 발끝까지 바르게 한다면 벌써 이는 불 속에서 연꽃이 피어난 격이니, 부디 모든 인연을 떨쳐버려야 된다.

해설: 이 공부는 간절한 발심이 가장 중요한다. 고인들은 간절 ‘간(懇)’자, 이 한 글자가 ‘가장 친절한 가르침(最親切句)’이어서 이마에 새기고 공부한다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고 경책했다. 간절하기만 하다면 집중을 방해하는 모든 사사로운 인연들은 저절로 멀어지고, 몸과 마음을 다잡아 오직 근본에 대한 의문에 몰두하게 될 것이다. 이것을 달마스님은 “밖으로는 모든 인연을 쉬고, 안으로는 헐떡임이 없으며, 마음이 장벽과 같다면, 가히 도에 들어갈 것이다(外息諸緣 內心無喘 心如墻壁 可以入道)”라고 하셨다. ‘불 속에서 연꽃이 피는 도리’란 곧 임제가풍인 금강권 율극봉(金剛圈 栗棘蓬)을 타파하여 본래면목을 밝히는 것을 말한다.

본문: 그러면 고래로 크게 깨달았던 이들의 가슴 속을 알아버리니, 어디를 가든지 쉬어서 은밀한 행을 실천하리라. 그리하여 모든 천신이 꽃을 받들 길이 없으며, 마군 외도가 찾아도 자취를 볼 수 없게 되리니 이는 진정한 출가인이다.

해설: 설사 도를 깨쳤다 하더라도 내색하지 말고, 10년이든 20년이든 평생이든 입을 다물고 드러내지 말며 자기 할 일만 행하는 것이 부끄러움을 알고 실천하는 겸손한 모습이다. 중국에서는 온갖 새들이 꽃을 물어 바치던 우두법융(594~657)스님이 4조 도신대사에게 크게 한 방 얻어맞고 법을 전수받았으며, 또한 호랑이와 뱀이 좌우에서 따르던 엄양존자는 조주선사에게 크게 한 방 얻어맞고 깨달음을 얻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천공(天供) 받아 드시던 의상스님이 원효스님한테 한 방 얻어맞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의상스님이 어디에 계시든지 천신이 천공을 올렸다고 하는데, 하루는 천공 올 시간에 원효스님이 오니까 천신이 들어오지 못했다고 한다. 원효스님 떠나가고 난 뒤에 천신이 늦게 공양을 가지고 들어오니까, 왜 늦었느냐고 의상스님이 물었다. 천인은 “들어가려고 하는데, 번쩍이는 옷을 입은 신장들이 문 앞을 막고 서서 도저히 들어갈 틈이 안 보였습니다. 늦어서 미안합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무심도인은 앞뒤가 끊어지고 마음을 비우고 있어서, 마구니가 해코지를 하려 해도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천인이 공양을 올리려고 해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수불스님 | 금정총림 범어사 주지
[불교신문 2015년 12월 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