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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 불상 1구도 사찰에 있을 가능성 높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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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어사 원효암 불상 조사 연구결과 발표
지난 9월2일 범어사 원효암에 모셔져 있던 목조관음보살좌상 복장 유물이 발견돼 세간의 주목을 끌었다. 불상 속에서는 보존상태가 완벽한 유물
30건이 쏟아져 나와 문화재 전문가들이 환호했다.
이러한 이야기들이 9월 복장유물 발견 당시 알려지면서 부산은 물론 전국적으로 많은 관심을 끌었다. 전문가들이 지난 3개월간 조사한 끝에 밝혀낸 더 많은 사연들이 학술세미나를 통해 공개됐다. 지난 9일 동아대 부민캠퍼스에서 ‘범어사 원효암 목조관음보살 좌상과 복장유물’ 학술세미나가 열렸다. 이날 세미나에는 범어사주지 수불스님과 국장스님 및 스님 20여명과, 동아대 권오창총장, 신도 500여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연구결과는 모두 세 가지 분야에서 이뤄졌다. 불상의 형식과 복장물 중에서도 발원문의 내용 과 불상 조성 책임자인 성조스님에 관해 집중적으로 연구한 이희정(문화재청 문화재감정관실) 감정위원의 ‘범어사 원효암 목조관음보살좌상연구’ ,서지학적 관점에서 복장 속 전적(典籍)을 연구한 윤상기(동의대 문헌정보학과) 교수의 ‘복장전적’, 그리고 과학적 기법을 동원하여 불상의 재질, 훼손 등을 살펴보고 보존처리 방안을 연구한 이수예(사찰문화재보존연구소)이사장의 ‘과학조사와 보존처리 방안’이다. 세 사람의 발표에 앞서 원효암 불상 복장 유물 처리와 연구를 총괄한 정은우(동아대석당박물관) 관장이 이 불상의 총체적인 내용과 특징을 발제문 형식으로 발표했다.
정은우관장이 발원문 분석을 통해서 정리한 이 불상의 가치와 의미는 다음과 같다.
이희정감정위원은 주로 조각승 성조에 관해 발표했다. 그는 1646년부터 1670년대 까지 주로 경상도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대표적인 조각승인 승일의 제자다. 승일은 구례 천은사 수도암 목조여래좌상과 보살상, 강진 정수사 목조여래좌상, 서울봉은사 목조아미타와 약사여래좌상, 함양 영원사 목조관음보살좌상, 김천 고방사 목조여래좌상 등 9건의 작품이 알려져 있다. 이러한 승일의 계보는 목조불상과 석조 불상 계보로 나뉘는데 성조는 그중 목조불상을 이은 목조조각상이다. 원효암보살상은 신체 옷주름의 표현 등이 스승의 양식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고 이위원은 주장했다.
복장전적에 관해 발표한 윤상기교수는 원효암불상 복장 유물 속에 경전 10종 13건이 나왔다며 “묘법연화경 7종, 선문염송 1종, 육경합부 1종, 지장보살본원경 1종”이라고 밝혔다. 가장 많이 나온 <법화경> 류는 세종 4년(1422년)에 대자산 대자암에서 간행한 대자암 판부터 가장 후대인 1609년 귀신사판 까지 들어있는데 모두 같은 판에서 나중에 인쇄한 후인본(後印本)이며 책은 없이 변상도(變相圖)만 따로 떼어 봉안한 판도 많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수예이사장이 과학적 장치를 통해 밝힌 바에 따르면 가슴 부위에 있던 후렴통은 세월이 지나면서 아래로 쳐졌으며 재질은 피나무로 밝혀졌다. 이는 소나무 은행나무가 압도적으로 많은 일반적인 목불상과 비교할 때 드문 사례라는 것이 이이사장의 주장이다. 개금은 한 번 밖에 하지 않았으며 목재에 배접을 하지 않고 표면에 바로 개금한 점이 특이하다고 덧붙였다. 불상 표면에 분열은 있지만 개금 색은 바래지 않았는데 현재 누런 모습을 띠고 있다. 이에대해 기조발제했던 정은우관장은 “밝은 황금색을 띠는 요즘 불상과 비교하면 차이가 많이 나는데 원래 우리 불상 개금이 원효암 불상과 같은 모습을 띤 것이 아닐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발표에 앞서 범어사 주지 수불스님은 축사에서 원효암 불상이 일본을 거쳐 한국에 까지 오게 된 연유를 언급하며 이 날 학술대회의 중요성을 상기시켰다. 권오창 총장은 이번 학술대회를 계기로 부산 지역 문화재 연구가 활발해지기를 바란다고 인사했다.
박부영 기자 | chisan@ibulgyo.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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