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누구를 만나서 어떤 공부를 할 것인가

22. 종각선인(宗覺禪人)에게 주는 글

선지식과 인연 구하기 쉽지 않지만

지금은 ‘돈오’ 공부에 더 없이 좋아

본문: 천생백겁(天生百劫)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공부가 끊어진 적이 있었더냐. 끊어진 적이 없었다면 무슨 나고 죽고 가고 옴을 의심하랴. 인연에 속한 일은 본분사에 있어선 아무 관계가 없음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해설: 마음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보고 듣고 생각하고 아는 등 온갖 작용을 하고 있지만, 모양이 없어서 그것을 대상으로 파악할 수는 없다. 모양 없는 마음은 모든 것의 근원이어서 무한한 시간과 공간, 삼라만상의 온갖 차별상과 기기묘묘한 생각도 모두 한마음 속의 생멸일 뿐이다. 의식이 도달할 수가 없고, 생각으로도 찾을 수가 없으며, 더군다나 언어로 그려낼 수도 없는 이 마음은 처음부터 나거나 사라진 적이 없어서 무생법인(無生法忍)이라 한다. 이 근본실상이 분명하다면 인연 따라 생멸하는 온갖 분별상에 연연하지 않고, 하되 한 바가 없는 무애자재함을 얻게 될 것이다.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해가 뜨나 어둠이 오나, 허공은 물들지 않고 늘 여여부동(如如不動)한 것과 같은 이치다.

본문: 오조(五祖) 노스님께서는 항상 말씀하시기를, “나는 여기 50년을 있으면서 선상 맡에 왔던 무수한 납자들을 보았다. 그들은 다만 부처를 찾으며 불법을 말할 뿐이었으니, 결국 본분납자를 만나 보지는 못하였다” 하였는데 참으로 그렇다.

해설: 이 편지를 쓴 원오극근의 스승 되는 오조 법연스님은 임제종 양기파로서 백운수단(白雲守端)의 법을 이었다. 오조법연스님은 7세기 초 당나라 때에 오조홍인대사가 법을 펴던 ‘기주 황매산(東山)’에 주석하였기에, 사람들은 그를 ‘오조’라고 불렀다. 문하에는 동산삼불(東山三佛)이라 하여 북송의 휘종으로부터 불과(佛果)라는 호를 받은 원오극근, ‘불감(佛鑑)’이라는 호를 받은 태평혜근, 불안(佛眼)이라는 호를 받은 용문청원이 있다. 송대(宋代) 오조법연으로부터 그 손상좌인 대혜종고에 이르기까지 3대에 걸친 시대는 당대(唐代) 조사선 시대에 이어 과히 ‘제2차 선의 황금시대’라고 불릴 만큼 빼어난 용상대덕이 출현했던 시기이다. 그런데도 50년간이나 본분납자를 만나보지 못했다는 오조법연스님의 단언은 참으로 날카롭고 고준한 안목을 보여주는 무서운 말이다.

그러고 보면 나는 공부 운이 좋은 사람인 것 같다. 절에 들어와서 행자시절에 어떤 스님이 앞에 지나가는데, 보자마자 ‘아, 저분이다!’ 하는 믿음이 생겼던 것이다. 누가 그 분에 대해 말해준 적도 없었는데, 내 스스로 ‘저 스님 의지해서 공부해야지’ 하는 생각이 일어났다. 나중에 그 스님 밑에서 공부를 하게 되었는데, 오로지 근본에 대해 의심하도록 유도하였다. 그때 의심이 차올라 고생을 많이 했지만, 결국 큰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본문: 요즈음 시대를 살펴보면 불법을 설명하는 사람조차도 만나기 어렵다. 그러니 더구나 본분(本分)을 구하는 사람이야 말할 것이 있겠는가.

해설: ‘종문 제1서’라 불리는 <벽암록>의 저자인 원오극근 선사가 당대의 인연 있는 이들에게 보낸 편지글을 모은 이 <원오심요>에만 해도, 간화선을 창시한 대혜종고스님은 물론이고 호구소융 등 기라성 같은 선사들과 사대부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런데도 원오극근스님은 본분을 구하는 이는 물론이요, 불법을 설명하는 이조차 만나기 어렵다고 토로하는데, 이런 언급은 그만큼 이 돈오법문의 소중함을 강조한 말이라고 하겠다.

그렇지만 지금 시대는 이 공부하기에 더없이 좋은 환경이라고 할만하다. 동서남북 상관없이 온 세계의 정보가 공개되어 있어서, 누구든지 마음만 내면 쉽게 얻어 익힐 수 있는 기회가 열려있기 때문이다. 본인이 믿음을 내고 집중하기만 하면, 손바닥 안에서 모든 정보를 즉시 접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다만 누구를 만나서 어떤 공부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선지식과의 인연을 구하는 일 만큼은 그때나 지금이나 참 쉽지 않은 일이다.


수불스님 | 금정총림 범어사 주지
[불교신문 2015년 12월 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