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조단식·투신예고에 원칙 무너진 동국대

학교법인 동국대 임원들이 12월3일 일산병원에서 제297차 이사회를 열어 최근 발생한 학내 문제에 책임을 지고 전원 사퇴하기로 결의했다. 이사회는 또 “현재 교내에서 단식과 농성 중인 학생·직원·동문 등은 즉시 단식과 농성을 중단하고 본연의 자리로 돌아갈 것을 바란다”고 촉구했다. 그러나 이사회는 “이를 거부할 경우 임원 전원 사퇴 결정을 무효로 한다”고 조건을 달았다. 다만 이사회는 “이사 전원 사퇴로 인해 학교 운영 등에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사학법과 정관에 따라 점차적으로 새 임원을 선임해 이사회를 구성하고 사퇴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전원사퇴를 선언하면서 혼란했던 학교가 수습 단계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번 일로 학교운영의 원칙이 심각히 훼손됐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법과 원칙에 따라 운영돼야 할 교육기관이 단식과 동조단식, 투신 예고 등 협박에 가까운 여론몰이에 사실상 굴복하는 모양새를 보였다는 점은 향후 유사한 일들이 재발될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는 지적이다.

12월3일 이사들 전원 사퇴
“농성자 철회 않을 땐 무효”
임원 사퇴로 학교 수습국면
협박성 여론몰이에 굴복
원칙없는 사퇴로 불씨여전

이번 일은 동국대 이사장 일면 스님이 자신과 관련한 의혹에 대해 늑장대응하면서 자초했다는 시각이 많다. 일면 스님은 올 초 동국대 총장 선출과 이사회 내홍 과정에서 흥국사 주지시절 자신의 절에 있던 탱화를 절도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의혹이 제기될 당시 진상규명과 당사자의 적극적인 해명이 필요한 사안이었지만 일면 스님이 이를 사실상 방치하면서 논란을 키웠다. 뒤늦게 일부 언론을 상대로 법적대응에 나서고, “탱화를 잃어버린 것은 맞지만 훔친 것은 아니다”고 반박했지만 이미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된 비판여론을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런 가운데 김건중 동국대 부총학생회장은 10월15일 일면 스님의 이사장 및 이사 사퇴를 요구하며 무기한 단식을 시작했다. 그러나 탱화 의혹에 대한 진실규명이 아닌 일방적인 퇴진 요구로 사실상 대화의 여지를 좁혔다. 여기에 동료교수 폭행으로 피소된 한만수 교수회장과 동국대 교직원이 동조단식에 나서면서 ‘단식여론’에 불을 지폈다.

논란이 커지자 조계종 화쟁위원장 도법 스님이 중재에 나섰다. 학생과 교수, 학교 및 법인 등 이해당사자들이 참여한 원탁회의를 구성해 의혹 진실규명과 사태해결 방법을 모색하려는 노력이었다.

그러나 화쟁위의 중재노력에도 불구하고 일부 불교단체장들이 다시 동조단식을 나서고 아직 이사로 등재되지 않은 범어사 주지 수불 스님이 이사직 사퇴를 선언하면서 사태를 더욱 꼬이게 했다. 게다가 이사 임기를 불과 며칠 앞둔 상도선원장 미산 스님과 중앙종회의원 법인 스님, 미황사 주지 금강 스님이 동조단식에 가세하면서 학내 혼란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이들이 동조단식에 대해 ‘오히려 학생을 막다른 곳으로 몰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동국대 불교대학 A동문은 “정말 학생을 걱정한 단식이라면 ‘네가 단식을 그치면 우리가 단식을 하다가 죽더라도 문제를 해결 하겠다’고 설득하는 것이 어른으로서 올바른 일”이라며 “동조단식을 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학생이 단식을 그만둘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화쟁위가 마련한 원탁회의도 1박2일에 걸친 마라톤회의를 진행했지만 뚜렷한 해결점을 찾지 못했다. 학교 측은 진실규명을 통해 탱화절도가 사실이라면 일면 스님이 이사장은 물론 이사직까지 사퇴하겠다는 안을 제시했지만, 교수회와 학생회 측은 조건 없는 이사장직 사퇴만을 고집해 좀처럼 입장차를 좁히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12월3일 아침 김 부회장이 건강악화로 병원에 긴급 후송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결국 이날 이사회에서 이사와 감사는 “생명부터 살리자”며 전원사퇴를 선언했다. 동국대가 단식과 동조단식, 투신 등 협박에 가까운 사퇴요구에 밀려 임원전원 사퇴를 결정하면서 향후에도 적지 않은 후유증이 예상된다. 특히 학교도 사회도 원칙이 한 번 무너지면 전체가 혼돈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동국대 혼란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는 말들이 학교 안팎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최호승 기자 | time@beopbo.com 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법보신문 2015년 12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