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조단식’ 확산에 동국대 더 깊은 수렁으로

김건중 부회장 50여일째 단식
이사장 일면 스님이 원인 제공
교수회 등 일부 동조단식 참여
“단식 계기로 이사장 압박 몰두”
‘김건중에게 귀의’ 현수막 등장
“동조단식이 학생 극단 내몰아”
원칙 외면할수록 학내혼란 확산

김건중(25) 동국대 부총학생회장이 ‘일면 스님 퇴진’을 요구하며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이를 지지하거나 부회장의 단식을 만류하겠다는 동조단식이 잇따르고 있다. 이에 따라 초기에 탱화의혹을 밝히지 못한 일면 스님에 대한 책임론이 커지고 있으며, 일각에서는 동조단식이 오히려 당사자를 극단으로 치닫게 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김 부회장은 10월15일 일면 스님의 흥국사 탱화절도 의혹제기와 함께 이사장 사퇴를 요구하며 무기한 단식에 돌입했다. 김 부회장은 탱화 의혹에 대한 진상규명이 아닌 일방적인 퇴진을 요구하면서 사실상 대화로 해결할 수 있는 여지를 크게 좁혔다. 재단 관계자는 “의혹을 해명하라고 하면 이에 대해 노력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지만, 의혹이 불거졌으니 일방적으로 그만두라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이번 사태는 올 초 동국대 총장 선출과 이사회 내홍과정에서 불거진 일면 스님의 ‘탱화 의혹’으로 촉발됐고, 당사자의 늑장대응으로 증폭됐다. 의혹이 제기될 당시 진상규명과 당사자의 적극적인 해명이 필요한 사안이었지만 일면 스님은 이를 사실상 방치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뒤늦게 일부 언론을 상대로 법적대응에 나서고, “탱화를 잃어버린 것은 맞지만 훔친 것은 아니다”고 항변했지만 이미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된 비판여론을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 때문에 일면 스님이 이사장 사퇴 등 어떤 형식으로든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여기에다 “학생의 인권과 권리”를 거론하며 ‘단식 초기단계부터 본관 앞의 천막을 방치하면 안 된다’는 재단의 요구를 줄곧 외면하면서 사태확산을 초래한 총장과 집행부의 책임론까지 불거지고 있다.

김건중 부회장의 단식 및 주장에 본격적으로 여론의 불을 지핀 것은 동료교수 폭행 및 논문표절 의혹을 받은 한만수 교수회장이었다. 한 교수는 11월10일 “탱화절도 논란은 아직 의혹일 뿐이니 억울하다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불교계 명예를 훼손했으니 책임지라. 김건중 군도 이제 단식을 거두어주기 바란다” 등 입장을 표명한 뒤 동조단식에 들어갔다. 이어 동국대 한 교직원이 11월17일 ‘학생도, 교수도, 직원도 모두 굶기고 일면 스님 꼭 연임하셔야 하겠습니까’라며 모든 책임을 현 이사장에게 전가하는 대자보를 천막에 붙인 뒤 동조단식에 들어갔다.

논란이 확산되자 조계종 화쟁위원장 도법 스님이 사태해결을 위한 중재에 나섰다. 특히 도법 스님은 기자회견을 열어 동국대 이사회에 이사장 선출을 유보해 줄 것을 요청한 뒤 학생과 교직원, 학교 및 법인관계자가 참여한 원탁회의를 제안했다. 이해당사자들이 모여 일면 스님의 의혹에 대한 진상규명과 사태해결을 위한 해법을 모색하자는 취지였다. 이 같은 제안에 학교와 교수회, 학생회 측이 참여하기로 하면서 학내 문제가 극단적 파행은 막을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그러나 화쟁위의 중재노력에도 불구하고 11월26일 일부 불교단체장들이 다시 동조단식에 나서고, 아직 이사로 등재되지 않은 범어사 주지 수불 스님의 갑작스런 이사직 사퇴 선언은 사태를 꼬이게 만들었다. 여기에 11월30일 이사 임기를 불과 며칠 남긴 상도선원장 미산 스님이 이사직 사퇴와 동조단식을 선언하고, 중앙승가대 출신의 조계종 중앙종회의원 법인 스님과 미황사 주지 금강 스님이 느닷없이 단식에 가세하면서 이번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동조단식을 하는 이들은 김 부회장의 주장이 정말 옳은 것인지, 원칙에 부합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은 채 오직 ‘생명을 살려야한다’는 데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히 교수회는 “아무리 정의를 위한 일이라 하더라도…” 운운하며 학생의 단식을 정의로운 것으로 간주하고, 스님들은 김 부회장의 단식을 정당화하거나 동국대 임원진에 대한 비난에 몰두하고 있는 분위기다.

심지어 동국대 문과대학 건물에 김 부회장을 ‘청년보살’이라고 지칭하고, “김건중 학생에게 귀의합니다”라는 현수막을 내거는 등 김 부회장을 영웅시하는 기현상도 생겨나고 있다.

이처럼 학내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불교학 전공 A교수는 “한 학생이 어른들의 정치 싸움에 휘말려 어리석은 선택을 하고 있다”며 “이번 사태는 단식하는 학생과 이를 기회로 무언가를 요구하는 사람들로 나뉘는 것 같다”고 밝혔다.

동국대 불교대학 B동문은 “정말 학생을 걱정한 단식이라면 ‘네가 단식을 그치면 우리가 단식을 하다가 죽더라도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설득하는 것이 어른으로서 올바른 일”이라며 “단식하는 학생을 영웅으로 만들고, 그 옆에서 동조단식을 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학생이 단식을 그만둘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동국대 C교수는 “학생이 단식을 하고 떼를 쓰면, 그것을 이사장의 책임으로 전가하고 이사장이 그만둬야 하는 것이냐”며 “앞으로 누군가가 총장 퇴진을 요구하며 단식을 하면 총장이 그만둬야 하고, 조계종 해체를 주장하면 생명을 먼저 살리기 위해 조계종을 해체해야 하는 것이냐”고 되물었다. 그는 이어 “학생의 생명을 위하는 척하면서 오히려 학생을 막판으로 내모는 등 정치적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히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토로했다.

신규탁(연세대 철학과 교수) 한국선학회장은 “학교도 사회도 한번 원칙이 무너지면 학교 전체가 혼돈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며 “일면 스님을 둘러싼 의혹에 대해 명확한 진상을 파악한 뒤 이에 대해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이 교육기관의 대처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이처럼 이사장 일면 스님의 탱화의혹에 대한 진상규명은 뒤로 한 채 무조건적인 퇴진을 주장하며 단식과 동조단식이 이어지면서 이번 사태를 해결하려는 원칙이 훼손되고 있으며, 동국대가 또 다시 혼돈과 파국으로 내몰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특별취재팀=이재형 권오영 최호승 기자
[법보신문 2015년 12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