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목불 태워 사리 얻으려 했겠는가

22. 종각선인(宗覺禪人)에게 주는 글

선지식 만나자마자 마음 활짝 열려

곧바로 자기 살림살이 투철해지니

역순경계 초월 오감에 자재했던 것

본문: 단하스님은 마조스님이 선불장(選佛場) 보여주는 것을 듣자마자 그 자리에서 결판을 냈으니, 이들은 선지식 앞에 이르자마자 흐름을 거슬러 투합했던 것이다.

해설: 단하천연(丹霞天然, 739~824)스님은 일찍이 유학과 묵자를 배워 9경에 통달했다. 고향 친구인 방거사와 함께 과거에 응시하기 위해 장안으로 가던 중에, 행각하는 선승을 만나 “관리로 뽑히는 것이 부처로 뽑히는 것만 하겠습니까?” 하는 말을 듣고 발심했다. 처음에는 마조도일 선사를 찾아갔는데, 마조선사는 남악의 석두희천 선사에게 보냈다. 석두선사 밑에서 방앗간 일을 3년 동안 하고 있었는데, 하루는 석두선사가 대중에게 말했다.

“내일은 불전 앞의 풀을 깎자.” 이튿날 대중들은 낫을 들고 나왔으나 단하만은 대야에다 물을 떠서 머리를 감고 석두스님 앞에 꿇어앉았다. 석두스님이 웃으면서 머리를 깎아주고 계를 설하려고 하자, 단하는 귀를 막고 일어나 나가버렸다.

단하는 마조선사를 뵈러 강서로 갔는데, 도착하자 바로 법당으로 들어가서 성상(聖像)의 목을 타고 앉았다. 대중이 깜짝 놀라서 마조스님에게 알리자, 스님이 와서 그 모습을 보고는 “나의 제자로다. 천연스럽기 그지없구나!” 하였다. 단하는 “법명을 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하고 절을 하니, 그때부터 천연이라 불리게 되었다. 그 뒤 천태산, 경산(徑山) 향산(香山) 등지를 행각했다. 낙양 혜림사에서는 추운 날씨를 만나 목불(木佛)을 태워 추위를 막는데, 주지가 돌아와서 꾸짖으니 단하선사가 말했다.

“다비를 해서 사리를 얻으려던 참이었소.”

“나무토막에서 무슨 사리가 나오겠소?”

“그렇다면 어찌 나를 꾸짖으시오.”

주지는 이 말에 혼이 나간 듯 굳어버렸다.

단하선사는 혜충국사를 만나 뵙고는, “성인과의 거리가 점점 멀어져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게을러지니, 30년 뒤에는 이런 사람을 만나기 어려우리라”는 말을 들었다. 남양 단하산에 주석하자 300여 명의 학인이 운집해 큰 회상이 열렸다. 이런 분들은 처음부터 큰 의심을 일으켰다가, 선지식을 만나자마자 불법의 현지를 바로 알아차렸던 것이다. 마음을 활짝 연 뒤에, 곧바로 자기 살림살이가 투철해진 분들이었다. 그래서 다시 뒤돌아보지 않고 향상일로에 나아가서, 역순경계를 초월해 운수(雲水)에 노닐며 가고 옴에 자재하였던 것이다.

본문: 또 양좌주(亮座主)는 한마디 말끝에 42본(四十二本) 경론이 얼음 녹듯 했다.

해설: 촉나라 출신의 양좌주는 경론을 강의하는 좌주(강주)로서 마조선사를 찾아뵈었다. 마조선사가 물었다. “듣자하니 좌주는 경론을 많이 강의한다는데 사실인가?” “감히 그렇다 하기가 외람됩니다.” “무엇을 가지고 강의하였소?” “마음을 가지고 강의하였습니다.” “마음은 재주있는 광대와 같고 뜻은 광대를 부리는 자와 같거늘, 어떻게 경전을 강설하겠는가?” 양좌주가 소리를 지르면서 말했다. “마음이 강의를 못한다면 허공이 강의를 했다는 말입니까?” “허공은 강의할 수 있지.”

양좌주가 수긍하지 못하고 문득 나가서 계단을 내려가는데, 마조선사가 불렀다. “무엇인가?”

양좌주가 활연대오하고서 절을 하자, 마조선사가 말했다. “이 둔한 좌주여, 절은 해서 무엇하랴.”

양좌주가 절로 돌아가서 대중에게 말했다. “내가 경론의 강의로는 아무도 미칠 이가 없다고 여겼는데, 오늘 마조대사의 질문 하나를 받고는 평생의 공부가 얼음처럼 녹아버렸다.”

그리고 학인들을 다 흩어버리고 서산(西山)에 들어가서 나오지 않았다.


수불스님 | 금정총림 범어사 주지
[불교신문 2015년 11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