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禪이란 무명은 물론 반야지혜까지
‘본래 없다’는 사실 철견하는 것
법에 대한 견해 가지지 않아야
그 응용에 장애가 없어지기 때문
본문: 밖으로는 세간의 속박과 집착을 버리고 안으로는 성인이니 범부니 하는 미혹한 생각을 버리고, 곧바로 홀로 아득하며 높고 초준한 곳에
도달한다. 실낱만큼도 의지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분명히 알아차리고 온 몸으로 짊어져, 부처님이 와도 현혹되어 동요하지 않는데 하물며 조사나
종장의 말과 기봉이야 말해서 무엇하랴.
해설: 바깥으로는 명리(名利)심을 버리고, 안으로는 법에 대한 지견까지도 내려놓아야 안팎이 밝게 뚫리게 될 것이다. 이 공부에 뜻을 둔
사람이 발심을 하면, 우선 바깥 경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끄달리지 않게 된다. 그렇지만 지긋지긋한 세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절박한 심정에서,
자기도 모르게 공(空)이나 선정삼매 같은 출세간적인 가치에 집착하고 머문다는 사실을 자각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어쩌면 마음공부의 분상에서는 아상(我相)보다도 법상(法相)이 더 장애가 될 수 있다. 선(禪)은 무명업장은 물론 반야지혜까지도 본래 없다는
사실을 철견하는 것이다. 법에 대한 견해를 가지지 않아야, 그 응용에 장애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세간이라는 거친 망념은 물론, 출세간이라는
미세망념에서조차 벗어나야 하는데, 이처럼 중도 불이법에 완전히 계합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백척간두에서 진일보하고, 절벽에 매달린 손을
놓으라는 간곡한 당부도 진리에 대한 집착을 경계한 말이다. 그래서 임제선사는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라고까지
경책한 것이다. 그러므로 법에 대한 알음알이나 경계에 속지 않으려면, 한 길로 생사를 훌쩍 벗어나 초준한 곳에 먼저 도달해본 명안종사의
지남(指南)이 꼭 필요하다. 공부 중에 어떤 경계나 변화를 맞이하더라도, 반드시 선지식의 점검을 받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본문: 한 칼에 끊어 다시는 돌아보지 말고 그 밖의 잡다한 것들에는 무심해야 ‘조금이라도 뛰어난 무리(上流)’와 상응할 수가 있다. 듣지도
못하였느냐. 영가(永嘉)스님은 조계에 들어서자마자 사자후를 했다.
해설: 육조 스님의 법제자 영가현각(665~713)선사는 어려서 출가하여 삼장(三藏)을 두루 탐구하고 천태지관(天台止觀) 법문에
정통하였는데, <유마경>을 보다가 마음을 밝혔다. 어느 날 무주현책의 소개로 깨달음을 증명받기 위해 육조혜능선사를 찾아가서, 주위를
세 번 돌고는 석장을 짚고 우뚝 섰다. 육조 스님이 말했다.
“무릇 사문이라면 삼천의 위의(威儀)와 팔만의 세행을 갖추어야 한다. 대덕은 어디서 왔기에 이렇게 아만을 부리는가?”
“생사의 일이 크며, 무상이 신속합니다.”
“어째서 무생(無生)을 체득하여 빠름이 없음을 요달하지 않는가?”
“체득한즉 ‘남(生)’이 없고, 요달한 즉 본래 빠름이 없습니다.”
육조가 말했다. “옳다, 옳다.”
현각은 비로소 예를 갖추고 절하고서 곧 하직을 드리니 육조가 말했다. “너무 빠르지 않느냐?”
현각이 말했다. “본래 움직임이 없거니 어찌 빠름이 있겠습니까?”
“누가 움직임이 없음을 아는가?”
“스님께서 스스로 분별을 내십니다.”
“그대가 참으로 무생의 뜻을 잘 알았구나.”
“무생에 어찌 뜻이 있겠습니까?”
“뜻이 없는데, 누가 분별하느냐?”
“분별하긴 하지만 뜻은 없습니다.”
“훌륭하다. 하룻밤 묵고 가거라.”
이로부터 사람들은 영가현각선사를 일숙각(一宿覺)이라 불렀다. 현각선사는 고향인 절강성 온주로 돌아가서 법을 폈지만, 세상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입적했다.
선의 진수를 꿰뚫고 절대무위의 한가한 도인의 경지를 노래한 불후의 명저 <증도가(證道歌)>와 <영가집>을 세상에
남겨서 육조 스님의 은혜를 크게 갚았다.
수불스님 | 금정총림 범어사 주지 [불교신문 2015년 11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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