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감동 화장터 거쳐간 인연…극락왕생 발원”

백양산 7부 능선 위치한 선암사

화장장 불 꺼진지 30여년만에

한줌 재가 된 영가, 천도재 봉행


개별 참배 가능 점심공양 제공

유족 위로, 지역 이미지도 개선

부산 사람들에게 한 때 ‘당감동’은 기피 언어였다. 가급적 그 단어를 피해가려 했다. ‘당감동’ 뒤에 ‘화장터’가 붙기 때문이다. 서울 홍제동에도 화장터가 있었지만 기피 동네는 아니었는데 부산은 당감동에 대해 지금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10여년 전 선암사에서 납골당을 건립하려다 실패한 것도 주민들이 옛 당감동 화장터가 연상된다는 이유에서 반대했기 때문이다. 당감동이라는 지명은 액운을 물리치고 마을의 번영과 평화를 비는 당(堂)이 있던 곳으로 감로수와 같은 약수가 샘솟아 당감동이라는 지명이 생겼다. 감로수가 샘솟는 이곳에 화장장과 묘지가 들어선 것은 1959년이다. 아미동에 있던 화장장과 묘지가 도시 팽창으로 시외곽인 당감동으로 옮겼다. 화장터에 불이 꺼진 것은 1987년, 지금은 그 자리에 부산상고가 옮겨왔다. 부산상고는 인문계로 전환하고 개성고로 이름을 바꾸었다. 화장장 주변은 현재 대단위 아파트가 밀집해 30여년 전의 모습은 흔적도 없다.

화장터에서 위로 올려다보면 선암사가 보였다. 지금은 아파트에 가려 보이지 않지만 백양산 7부 능선 즈음에 자리한 선암사는 사랑했던 사람을 영원히 떠나보내는 유족이나 활활 타오르는 불길에 육신을 내맡기고 한 줌 재로 돌아간 영가에게나 유일한 귀의처였다. 당감동 화장터에서 재로 변한 육신은 전부 선암사 인근 산에 흩뿌려져 허공으로 사라졌다. 2세대 이상 부산에 터를 잡은 사람 치고 당시 당감동을 거쳐가지 않은 인연이 없을 정도다.

당감동 화장터에 불이 꺼진지 30여년 만에 이곳을 거쳐 간 영가들을 위한 천도재를 지낸다. 선암사는 오는 31일 오전 ‘부산시민과 함께하는 제1회 백양산 어울림터 한마당’을 개최한다. 선암사 주차장에 재단을 설치하고 영혼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천도재를 지낸다. 조계종 원로의원 정관스님이 영가법문을 하며 금정총림 범어사 주지 수불스님을 비롯한 주요 사찰 주지 스님들이 참석한다. 부산시장과 지역 국회의원 경찰청장 구청장 등 관계 인사들도 참석한다. 선암사 주변 산과 계곡에 재를 뿌리며 이별을 고했던 인연을 지닌 사람은 누구나 절하고 기도할 수 있다.

선암사에서는 이들을 위해 따뜻한 밥과 국을 공양한다. 수 천명이 올 것을 대비해 절 아래 주차장을 마련하고 셔틀버스를 대절했다. 밥을 짓고 국을 데울 자원봉사자 수 백명도 확보했다. 천도재는 극락왕생 발원문, 격려사 축사 추모법어로 이뤄지는 법요식에 이어 불교전통의식 위령재가 90분간 진행된다.

주지 원범스님이 당감동 화장장 영가들을 위해 천도재를 기획한 것은 젊을 적 인연 때문이다. 스님은 “40여년 전 선암사에 갓 출가했을 때 17살 사미가 죽어 절에서 다비를 못하고 당감동 화장장에서 육신을 벗는 장면을 목격했다. 그 때의 답답했던 기억이 가슴 한 켠을 짓누르고 있었는데 2004년에 선암사 주지로 발령받았다. 선암사와 무슨 인연이길래 이렇게 이어지나 생각하다 천도재를 치러야겠다 마음먹었다.” 그 후 여러 가지 사정으로 미루다 이번에 첫 천도재를 개최하게 된 것이다. 화장장 불이 꺼진지 30년이 됐지만 단 한번도 사찰차원이든 시 차원이든 천도재나 위령재를 지낸 적이 없다. 이번이 처음인 것이다. 원범스님은 “부산 사람이면 누구나 이곳 백양산과 선암사 주변에 조상들의 육신이 흩어져있을 것이다. 이 행사는 그래서 불교법회가 아니고 부산시민들의 마음을 달래고 하나되는 자리”라고 말했다.

부산=박부영 기자 | chisan@ibulgyo.com
[불교신문 2015년 10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