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음서 벗어 나려면 형상 올바로 자각을”

국제선센터 간화선 법회 선원장 수불 스님

망념 일으킨 원인 찾아내
허망 떨친 ‘실상’ 자각할 때
어둠과 밝음 동시에 비출 수 있어
‘깨달음’은 경계 허무는 작업

마음밖에 다른 부처 없어
〈완릉록(宛陵錄)〉 제10장 ‘마음밖에 다른 부처가 없다’를 한 구절씩 함께 보겠습니다.

“지금 바로 망념이 일어날 때 부처는 어느 곳에 있습니까?

“네가 지금 망념이 일어난 것을 깨달았을 때, 그 깨달음이 바로 부처님이다. 그런 가운데 망념이 없다면, 부처 또한 없느니라. 무엇 때문에 그러한가? 네가 마음을 일으켜 부처의 견해를 지어서 문득 이룰만한 부처가 있다고 하며, 중생의 견해를 지어서 제도할 중생이 있다고 하는데, 마음을 일으키고 생각을 움직이는 것이 모조리 너의 견해가 작용하는 곳이기 때문이니라. 만약 일체의 견해가 없다면 부처는 어느 곳에 있겠느냐? 마치 문수가 부처라는 견해를 일으키자마자 바로 두 철위산 지옥에 떨어진 경우와 같은 것이다”

부처가 어느 곳에 계신다고 해도 허망한 소리이며, 어느 곳에 계시지 않는다 해도 어리석은 말입니다. ‘있다, 없다’는 개념으로 접근하면 모든 것을 그르치게 됩니다. 망념이 일어난 그 자리에 무엇이 망념을 일으켰는지 깨닫게 되고, 그런 가운데 망념이 없다면 부처 또한 없는 것입니다. 망념이 일어날 때는 그것을 바로 돌이켜 보면 알 수 있는 것이고, 망념이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면 부처라고 이야기해야 할 것도 없다 생각해야 합니다. 구해야 될 부처도 없고 제도해야 할 중생도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아야만 비로소 왜 이렇게 이야기하는지 알 수 있게 됩니다.

생각은 자기도 모르게 일어나게 마련입니다. 자신도 모르게 일어난 생각에 끌려 다니지 않아야 합니다. 본래 부처라는 것은 끌려 다니는 입장도 아닐뿐더러 늘 그 자리에서 일으키고

사라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형상이 있는 것이나 없는 것이나 다 허망한 줄 알면 허망하지 않는 실상이 무엇인지에 대한 올바른 자각이 있어야 합니다.

“이제 바로 깨달았을 때 부처는 어느 곳에 있습니까?”

“물음은 어느 곳으로부터 왔으며, 깨달음은 무엇으로부터 일어났느냐? 일상의 어묵동정(語默動靜, 말하고 침묵하고 움직이거나 가만히 있는 일상의 모든 순간순간을 일컫는 말) 간에 모든 소리와 빛깔이 모두 불사(佛事) 아님이 없거늘 어느 곳에서 부처를 찾겠느냐? 머리 위에 머리를 얹지 말며, 부리 위에 부리를 더하지 말라”

조금 전에는 망념이 일어났을 때 부처가 어디 있느냐 물었는데 이번에는 깨달았을 때 부처는 어느 곳에 있느냐고 묻습니다. 깨달은 자가 부처가 어디 있느냐 묻는 것이 조금 이상한 입장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철두철미하게 깨닫지 못한 것일 지도 모르는 일이고 〈금강경〉에서 짐짓 알고 있으면서도 모르는 사람을 위해 경책을 주기 위한 목적의 질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부처를 떠나서 행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불사에 대한 올바른 가치와 의미를 제대로 가져야 합니다. ‘불사로구나’ 하는 순간 허망해질 수 있습니다. 불사가 아닌 것이 본래 없다고 하지만 일부러 불사로구나 하는 생각을 일으킬 필요는 없습니다.

“머리 위에 머리를 얹지 말며, 부리 위에 부리를 더하지 말라”는 말은 허망한 소리를 하며 부처님 말씀을 훼손시키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침묵을 해도 어리석다 하고 말을 해도 어리석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어리석음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모르면 찾아야 합니다. 찾고 구해서라도 해결해야 합니다. 하지만 찾고 구하지 말라 해놓고 어째서 다시 찾고 구하라는 것인지 의문이 들것입니다. 또한 일체 모두가 그대로 드러난 모습이라 하면서 다시 찾으라고 하느냐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믿으면 믿는 것에 떨어져 허망한 소리 하는 것을 유의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무유정법’, 애초 정해진 것 없어

"그저 다른 견해만 내지 않으면 산은 산, 물은 물이오, 승(僧)은 승, 속(俗)은 속일 뿐이니라”

‘산' ‘물’ 등 단어 자체에는 의미가 없습니다. 이처럼 따로 승과 속을 나눌 것이 무엇이겠냐고 묻는 것입니다. 하지만 있는 그대로 형상을 하고 있는 모습에 따라 ‘승려’는 승려고, ‘마을에 사는 사람’은 그저 마을에 사는 사람으로 분별합니다. 깨달음의 입장은 거울에 그대로 펼쳐져 있는 모습 그대로입니다. 아무리 거울로 산하대지를 비춰본다 하여도 거울에는 흔적이 없는 법입니다.

일반적인 거울은 물상을 비춰서 나타냅니다. 거울에 때가 묻으면 사물이 흐릿하게 보이고, 맑게 깨끗하게 닦인 거울은 사물도 깨끗하게 보입니다. 그런데 진리 당처의 거울이라 하는 것은 ‘대원경(大圓鏡, 세상의 모든 것을 비춰 보는 지혜를 거울에 비유하여 이름)’이라 말합니다. 그 자체가 거울입니다. 그 자체의 거울 속에서는 천차만별의 것이 다 일어나고 사라진다 하여도 그뿐입니다. 거울에 때가 묻었나, 안 묻었나 하는 것도 그 자리에서는 의미가 없습니다. 그것은 있는 그대로 비치는 힘을 가지기 때문에 무엇이 비치는지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입니다. 어둠을 비추고, 밝음도 비추고, 어둠과 밝음을 동시에 비출 수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산하대지와 일월성신이 모두 너의 마음을 벗어나지 않으며, 삼천대천세계가 모두 너의 본래 면목인 것이다.”

우주의 내가 둘이 아니라는 입장을 표현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비롯된 모습이 시공을 초월해 천차만별이라 한 것입니다. 태초의 모습을 경전에서는 어떤 것도 자리한 적이 없다, 시간·공간도 없을 때 그 자리에 홀연히 바람이 불었다, 움직임이 생겼다 등 교학적으로 표현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인식하는 시간과 공간의 개념으로 백 년, 천 년, 만 년이 지나도 그 움직임을 포착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무유정법(無有定法)’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애초 정해진 법이 없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고정된 입장을 가지고 ‘이것이 질서다’ 하는 것은 잘못된 말입니다. 무질서의 질서도 알아야 하고 질서가 있는 것 같지만 무질서한 것도 함께 소화를 해야 합니다. 그것을 규명할 수 있는 눈과 귀를 가져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고정 관념화된 입장에서 늘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세월이 가도 변하는 것이 있고 변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거짓말도 진리입니다. 진리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만들 수가 없습니다. 진짜만 진리가 아닙니다. 형상을 가진 입장에서는 모순입니다. 옳은 것을 옳다고 하고 그른 것을 그르다고 해야 진리라 할 수 있습니다. 다 옳다고 한다면 우리가 무엇을 믿고 믿음을 소화를 시키겠습니까.

“그런데 어느 곳에 허다한 일들이 있겠느냐? 마음밖에 법이 없으니 눈 가득히 푸른 산이니라. 허공 세계가 밝고 깨끗하여 한 터럭만큼도 너에게 견해를 짓게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모든 소리와 빛깔들이 그대로 부처님 지혜의 눈이니라. 법은 홀로 일어나지 않고 ‘경계’를 의지해야만 비로소 생긴 것이니, 경계 때문에 그 많은 지혜가 있는 것이다”

여러분은 어느 선사께서 허공에 색을 칠해 보라고 한다면 어떻게 하실 것입니까? 보통의 사람들은 “어떻게 허공에 색을 칠합니까? 불가능합니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이 경우 색을 칠해 보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칠해진 색이 무엇인지도 알 수 없습니다. 허공에 색을 칠한다는 말은 색을 칠할 수 있다는 입장에 먼저 서야 그 방법과 색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이라 하는 것은 혼자 일어나지 않습니다. 일체 만법이 그렇습니다. 법이라 하는 것은 형상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모두 포함합니다. 특히 형상이 없는 법은 근본 진리의 입장만 자리하고 있을 때 자기도 모르는 움직임이 생겨나면서 모양을 만드는 겁니다. 모양을 만들기 전의 움직임도 법이고, 어떠한 움직임도 없을 때는 ‘불’이라 합니다.

삼라만상 모든 것은 법이 아닌 것이 없고 경계를 의지해서 생기는 겁니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다’는 말은 이것이 있어야 저것이 있다는 말이 되기도 합니다. 만약 내가 죽었다면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입장인데 무엇을 볼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진정한 내가 사라졌는가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합니다. 육신의 죽음을 가지고 내가 사라졌다 할 것이 아니고 정신이 사라졌다 해도 내가 사라졌다 볼 수 없습니다. 다만 진정한 내가 끊어졌을 때, 즉 ‘참나’를 찾았을 때 나와 더불어 사는 것이든 아니든 모두 허망한 경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또 “경계 때문에 그 많은 지혜가 있다”는 말은 바꿔 말하면 경계가 없으면 지혜도 없다는 말입니다. 병이 있기에 약이 필요한 것처럼 일체 경계가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 일체 경계를 허물 수 있는 지혜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수행의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깨닫는 것은 지혜를 얻는 일이고 경계를 허무는 작업입니다. 우리는 근원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을 알았고 수행을 통해 직접 체험했을 때 이 모든 것이 그림자라는 것을 알게 되고 내려놓고 말 것이 따로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경계 없으면 지혜도 없다

“종일 말하나 일찍이 무슨 말을 하였으며, 종일 들으나 일찍이 무엇을 들었느냐? 그러므로 석가세존께서 49년 설법하셨어도 일찍이 한 글자도 결코 말씀하시지 않은 것이니라.”

하루 종일 듣고 말하였는데 한 번도 말한 적도 들은 적도 없다는 말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중생구제를 수도 없이 했지만 한 중생도 구제한 적 없다고 하셨습니다. 모두 아시다시피 부처님은 49년간 셀 수 없이 많은 법문을 하셨습니다. 〈화엄경〉에 보면 용수보살이 용궁에 들어가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대장경 대·중·소 중에서 가장 작은 ‘소’를 가지고 나왔다고 합니다. 용수보살이 들어간 용궁은 어디였을까요? 용궁이 바다 제일 깊은 곳에 있다고 하니 1만2천 미터 제일 깊은 바다 속에 있는 것일까요? 바다는 우리 마음보다 깊지 못합니다. 한계가 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마음은 무한정입니다. 얼마나 깊고 넓은지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대장경을 바다 속에서 가지고 왔다는 것은 마음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그 어둡고 깊은 곳,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것이 바로 〈화엄경〉이라 볼 수 있습니다.

누군가 그랬습니다.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해 깨달았을 적에 승속을 막론하고 깨달은 자, 깨닫지 못한 자, 마구니까지도 모두 예배공양 하고 물러났다고 합니다. 그것은 부처님 빛이 너무 밝기 때문에 어둠을 좋아하는 마구니까지 숨어 있을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환한 부처님 말씀을 따라 여러분의 앞날도 밝아지길 바랍니다.

이계섭 수습기자 | webmaster@hyunbul.com
[현대불교 2015년 10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