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이 무엇인가(是甚?)?” 낙처를 알아차릴 수 있을까

■ 18. 원선객(元禪客)에게 주는 글

일대사인연 촉발하는 근본물음으로

제자에게 고구정녕한 자비 베풀다

본문: 백장대지(百丈大智)스님은 상당설법을 끝낼 때마다 다시 대중을 불렀다. 대중들이 머리를 돌리면 백장스님은 말하였다. “무엇이냐?” 이에 대해서 약산(藥山)스님은 스스로 “백장스님이 법당에서 내려올 때의 일을 말해 보라. 그것으로 어떻게 사람을 지도하였는가?” 하였으니, 어떻게 알아차려야겠느냐?

해설: 백장회해(749~814)스님은 마조도일 선사의 법을 잇고 강서성 대웅산에서 대지성수선사(大智聖壽禪寺)를 개창하고 선풍을 널리 드날렸다. 제자로는 위앙종의 종조인 위산영우와 임제종의 연원인 황벽휘운 등을 배출하였다. 임제종에서는 ‘사가어록(四家語錄)’이라고 해서 <마조록> <백장광록> <황벽록(전심법요와 완릉록)> <임제록>을 종문의 보고(寶庫)로 여기고 있다.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一日不作一日不食)”는 금언(金言)을 통해 선승의 수행에 생산노동을 도입한 스님은 선원의 조직과 교단제도를 집대성한 ‘백장청규’를 제정하여 선원 수행생활의 기틀을 확립했다. 마조도일 선사는 법을 물으러 온 학인이 문답을 마치고 돌아서 나갈 때, 다시 불러 세워서 “이 무엇인가?(是甚?)” 하고 묻곤 했는데, 이것이 기연(機緣)이 되어 깨친 제자들이 나왔다. 시자로 있으면서 스승의 법 쓰는 법을 면밀히 탐구한 백장스님 역시 뒷날 대중에게 상당설법을 마치고 나서 대중을 다시 불러 “무엇인가?” 하고 물어주었다. 이 말의 낙처(落處)를 알아차릴 수 있는가? 일대사인연을 만나도록 촉발하는 이런 근본물음이야말로, 스승이 제자에게 베푸는 고구정녕한 자비라는 것을 원오스님은 극명히 보여주고 있다.

■ 19. 고선인(?禪人)에게 주는 글

이 편지는 원오극근(1063~1125)스님이 당시 항주 경산사에 머물던 제자 대혜종고(1089~ 1163)스님에게 써준 글이다. 임제종 제16대 법손으로 간화선을 창시한 대혜스님은 16세(1105년)에 출가하여 경론을 배웠다. 19세(1108년)에 조동종의 동산미(洞山微) 선사, 대양원(大陽元) 수좌, 견(堅) 수좌 등에게서 조동의 종지를 배워 곧 터득하였으나, 이론을 주고받는 그들의 태도를 보고 실망하여 떠났다.

20세(1109년)에 임제종 황룡파 담당문준(1061~1115) 선사를 찾아 늑담으로 가서 가르침을 받았다. 담당스님은 돌아가시기 전에 대혜스님을 평하기를, “고상좌(?上座), 너는 나의 선을 일시에 이해하여 설법을 시키면 설법을 하고, 염고(拈古) 송고(頌古) 소참(小參) 보설(普說)을 시켜도 모두 해낸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일이 하나 있으니, 알겠느냐?” 하였다. 대혜는 이에 막혀서 자신의 공부로는 아직 생사에 맞서지 못함을 확인하였다. 담당문준은 입적하면서 장래를 묻는 대혜에게 임제종 양기파 원오극근 선사를 찾아가도록 당부하였다. 대혜는 담당스님의 유촉을 받은 지 9년 만인 35세(1124년)에 동경(開封)의 천녕사(天寧寺)로 원오극근 선사를 찾아가서 가르침을 받고 2년 만에 대오(大悟)하게 된다.

본문: 고납자(?衲子)는 근기와 성품이 매섭고 영리하다. 교해상(敎海上)에서 책 상자를 걸머지고 종장들을 두루 방문하였다.

해설: 대혜스님은 담당문준 선사의 입적 후에 제방을 편력하면서 늘 경론(經論)을 짊어지고 다녔다. 원오극근 선사를 찾아갈 때도 <청량화엄소초>를 가지고 갔다. 이후 39세(1128년)에 호구(虎丘)에서 <화엄경>을 보다가 보살이 제7지에 올라 무생법인(無生法忍)을 깨달은 곳에 이르러 문득 장애가 사라지면서 과거에 담당문준 선사가 일러주었던 방편이 드러나는 체험을 하는 등 대혜스님은 선사이면서도 <화엄경>을 늘 가까이 하였다.

수불스님 | 금정총림 범어사 주지
[불교신문 2015년 8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