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부처나 조사를 만나면 죽여라” 한 뜻은?

17. 간장로(諫長老)에게 드리는 글

학인들로 하여금 옛 언구나 방편에

지나치게 의존해 속박되는 것 경계

본문: 그 친절하고도 가까운 곳을 알 수 있다면 납승의 본면목(巴鼻)을 보게 되리니, 이른바 사람을 죽이는 칼, 사람을 살리는 칼이라는 것입니다. 다만 바라노니, 오래도록 스스로 살펴보아서 격식을 벗어난 곳에 이르면, 마침내 자연히 귀결점을 알 것입니다.

해설: 때에 당해 안목이 열려야, 살인도 활인검을 자재하게 쓸 수 있는 법이다. 금강왕보검을 가지고 일체의 지견을 싹 쓸어버리고 격식을 벗어나 구경(究竟)의 자리를 밟아야, 비로소 살활 자재한 방편을 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때서야 상(相)을 가지고 수행하는 것과 상을 여의고 수행하는 것, 나아가 상과 상 아닌 것까지 다 여의고 수행하는 것을 다 소화할 수가 있다. 그 자리에는 수증(修證)을 가자하지 않기 때문에, 거기에다 수행을 말하면 도리어 허물이 된다. 부처님더러 “수행하고 계십니까?” 하고 묻는다면 우습게 되는 것과 같다. 이 일은 또 다른 차원의 눈높이에서 벌어지는 일이므로, 우리는 더 겸손하게 자세를 낮추어서 정진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 18. 원선객(元禪客)에게 주는 글

본문: 조주스님은 말하기를 “불(佛)이라는 한 글자를 나는 듣기 좋아하지 않는다” 하였다. 말해 보라, 무엇 때문에 그랬는지를. 아마도 부처님은 일체지(一切智)를 갖춘 사람이었기 때문에 듣기를 좋아하지 않았을런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이러한 도리는 아니라는 점이다. 이미 그것이 아니라면 무엇 때문에 듣기를 좋아하지 않았을까? 눈 밝은 사람의 경우라면 듣자마자 귀결점을 알리라. 그렇다면 귀결점이 어디에 있느냐? 한번 꺼내 보아라.

해설: 원오극근 선사가 사천성 성도의 광효사(廣孝寺)에 주석하고 있던 원선객(元禪客)에게 써주었던 편지다. 원오스님은 이 글에서 한편으로 원선객을 시험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촉발시키고 있다. 조주종심(778~897) 스님이 ‘부처’라는 소리를 듣기 좋아하지 않았던 이유가 무엇일까? 임제의현(?~867) 스님은 “안으로나 밖으로나 만나는 것은 바로 죽여 버려라.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고 말했다. 그 까닭은 많은 학인들이 옛사람들의 쓸데없는 언구와 방편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만일 부처를 구하면 즉시 부처라는 마구니에 속박된다”고 경책하였던 것이다. 운문문언(864~949) 선사에게 학인이 “무엇이 부처입니까?” 하고 묻자, 운문스님은 “마른 똥막대기(乾屎?)”라고 했다.

본문: 노조(魯祖)스님은 납자들이 찾아오는 것을 보면 문득 벽을 마주하고 앉았다. 이는 사람을 위한 것이냐, 아니면 사람을 위하지 않은 것이냐? 그 ‘요점(節文)’은 어디에 있겠느냐? 만약 그와 기연을 투합하고 싶다면 어디로 나아가야 하겠느냐?

해설: 마조도일의 법제자로 안휘성 지주(池州) 노조산에 살았던 보운선사는 평상시에 스님이 찾아오는 것을 보면 얼른 벽을 향해 돌아앉았다. 이 일은 ‘노조면벽’이란 공안이 되어 <선문염송> 제188칙으로 전해온다. 노조스님의 사형인 남전보원이 이 말을 전해 듣고 말하되, “나는 평상시에 승려들에게 말하기를 ‘부처님이 나오시기 전에 알았다 해도, 하나는커녕 반도 얻지 못하리라’ 했거늘 그의 이런 짓이 ‘당나귀 해(驢年)’에나 맞으리라” 하였다. 선문염송 제211칙에 노조스님이 깨달은 기연이 기록되어 있다. 노조스님이 “어떤 것이 마니주입니까?” 하고 남전보원 선사에게 물으니, 남전 선사는 노조스님을 불렀다. 노조가 대꾸하니 선사가 말하되, “가거라. 그대는 나의 말을 알지 못한다” 하니, 노조가 말끝에 깨달았다.

수불스님 | 금정총림 범어사 주지
[불교신문 2015년 8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