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설은 것은 익게 하고 익은 것은 설게 하라

“한 마디 한 마디가 여법하여

양변 여의면 이사에 무애자재

세간법과 불법 한 덩어리 이뤄”

본문: 혜충국사(慧忠國師)가 본정선사(本淨禪師)에게 물었다. “그대는 일체의 미묘한 법문을 볼 때 어떠한가?” “한 생각도 좋아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바로 이것이 너의 집안일로, 참구하는 자가 여기에 도달해야 말끔해져서 다른 사람에게 속지 않는 자이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하겠다. “참으로 본분소식에 맞는 것이다.”

해설: 남양혜충 국사와 사공본정 선사의 문답은 <전등록> 제5권에 기록되어 있다. 혜충국사는 어려서부터 육조혜능 문하에서 수행했고 법을 이었다. 국사는 남악회양, 청원행사, 하택신회, 영가현각과 더불어 육조 문하의 5대 종장으로 일컬어진다. 본정선사 역시 육조혜능의 문하에서 수행했고 법을 이은 후에 안휘성 태호현의 사공산에서 종풍을 드날렸다. 본정선사가 “한 생각도 좋아하는 마음이 없습니다”라고 한 것이나 후일 원오극근스님이 “참으로 본분소식에 맞는 것”이라고 한 것도 알고 보면 상처 난 곳에 소금 뿌리는 격으로 허물일 뿐이다.

■ 17. 간장로(諫長老)에게 드리는 글

본문: 조주스님은 말하기를 “내가 남방에 있던 30년 동안에 죽과 밥을 먹는 두 때는 제외하겠으니, 이때는 마음을 잡되게 쓴 때”라고 하였다.

해설: 원오극근스님이 촉(蜀) 땅의 무위산(無爲山)에 머물고 있던 간장로에게 보낸 편지다. 조주종심(趙州從?, 778~897)스님은 산동성 출신으로 어린 시절에 출가하여 남전보원(南泉普願, 748~834) 문하에서 도를 이루고 그 법을 이었다. 여러 곳을 유력하다가 나이 80이 되어서야 조주성 동쪽 관음원에 머물면서 40년 동안 담백한 선풍을 드날렸다. 아침에 죽을 먹고 점심에 밥을 먹은 두 때에는 불도 피우고 밥도 짓고 반찬도 하니까,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조주스님은 나머지 시간에 무엇을 했을까?

사람들은 조주스님이 늘 선정에 들어있었다고 착각하기 쉽지만, ‘본래 선정’을 투철히 밝힌 도인에게는 일상사가 그대로 선정이어서 따로 들어야 할 선정이란 없는 것이다. 또 수행자가 ‘늘 화두삼매 중에서 공부해야 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화두삼매에 들자마자 공부를 해 마쳐 버려야지, 삼매가 따로 있는 것처럼 오해해서는 안 된다. 경계 따라 나타나는 삼매는 백천 삼매가 있다고 했는데, 그 많은 삼매가 모두 본래 삼매를 여의지 않는 것이다. 즉 불성을 지니지 않은 생명이 없으므로, 본래 삼매 중에 있지 않은 중생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애써 선정삼매를 닦는 것은 이법(二法)으로서, 불이법(不二法)인 불법에 어긋난다. 그래서 모양에 떨어진 유위법(有爲法)은 참된 공부가 아니라고 한 것이다.

본문: 옛 스님들은 이 일을 위해서 등한히 하지 않고 정중하게 했으며, 그렇기 때문에 열심히 닦고 간파해서 매우 분명한 데 이르렀다. 한 기틀, 한 경계, 한 마디 한 마디가 전혀 헛된 데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므로 세간법과 불법이 한 덩어리를 이루었던 것이다.

해설: 비록 근본자리를 한 번 밝혔다 하더라도, 과거의 묵은 습기를 다스리는 데에 등한히 해서는 안 된다. 살얼음 밟듯이, 가랑비에 옷 젖듯이 삼가면서 설은 것은 익게 하고 익은 것은 설게 하여 오래 궁구해나가면 마침내 구경(究竟)의 자리가 분명해지게 된다. 그 과정에서 한 기틀, 한 경계, 한 마디 한 마디가 여법하여 양변에 떨어지지 않게 되면, 결국에는 이(理)와 사(事)에 무애자재하게 되어서 세간법과 불법이 한 덩어리를 이루는 것이다.

수불스님 | 금정총림 범어사 주지
[불교신문 2015년 8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