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오 위한 공부는 짧고 빨라야
〈62〉16. 현상인(顯上人)에게 주는 글
|
|
선지식과 공부할 때 멱살잡이도 불사
알음알이 없애면 열반도 내려놓게 돼
본문: 달마스님이 서쪽에서 올 적에 어찌 이 법을 가지고 왔으랴! 달마스님은 오직 각각의 본인에게 본래 있는 성품을 곧바로 지적해서 그들로 하여금
분명하고 철저하게 드러내도록 하여, 수없이 많은 잘못된 깨달음이나 잘못된 지식, 망상과 계교에 물들지 않도록 했다.
해설: 법에는 동서남북과 상하는
물론 양변도 없다. 법은 오는 것도, 가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달마스님이 새삼스럽게 법을 전해준 것이 아니다. 오직 ‘마음을 가리켜
성품을 보게 했지만(直指人心 見性成佛)’, 그 자리에서 계합하지 못하면 허망하게 될 뿐이다.
알면 즉시 알아야하고 모르면 알려고 애써야 한다. 곧바로 통하거나 꽉 막혀야지, 여기서 악지악견(惡知惡見)을 내거나 몰람결에 사량 분별을
하면 안 된다. 분명하게 이 자리가 드러났다면 저절로 모든 알음알이가 떨어지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아무래도 헤아리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학인들을 위하여 명안종사들은 ‘조사관(祖師關)’을 시설하고, 온몸으로 직접 뚫도록 지도헸다.
조사관이란, 알면 알고 모르면 모를 뿐이다. 예를 들어 “송장 끌고 다니는 놈이 뭣꼬?” 하는 의심을 일으켰다면, 절대로 이것을 둘로
나누는 것 같은 의심을 해서는 안 된다. 한 번 나누면 영원히 반복해서 나눌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렇게 계교하는 순간 그 의심은 사구(死句)가
되고 만다. 사구를 들면 10년, 20년 의심해도 결판이 나지 않는다.
명안종사의 말끝에 정신적인 벽이 눈앞을 가로막아야 활구(活句)라고 할 수가 있다. 이렇듯 처음부터 활구가 들려야 모든 사량 분별이
사라진다. 처음부터 화두에 꽉 막혀서 활구가 되느냐, 아니면 화두를 반복해서 되뇌이는 사구를 드느냐 하는데서 공부가 결판나기 때문에,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고 그토록 강조하는 것이다.
본문: 참구(參究)를 하려면
모름지기 실답게 참구해야 하며 진정한 스승을 만나야 한다. 풀 구덩이 속으로 끌려들어가지 말고 당장에 깨달아야 한다. 그리하여 땀 냄새 밴
장삼을 벗어버리고 가슴 속을 텅 비워 한 털끝만큼이라도 범부니 성인이니 하는 망령된 생각이 없어야 하며, 밖으로 치달려서 구하려 하지도 말아야
한다.
해설: 참으로 실다운 공부는
혼자서는 도저히 이루기 어려워서 백이면 백, 천이면 천, 다 실패할 수밖에 없다. 사구는 말할 것도 없고 본인이 애써 활구를 들었다 하더라도,
명안종사를 의지하지 않으면 천 명, 만 명이 공부를 한다고 하더라도 단 한 명도 관문을 통과하지 못할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했다.
제 아무리 처음부터 공부를 잘하더라도, 수없이 닥쳐오는 역순경계를 이겨낼 수 있을 정도로 수승한 근기를 지니고 세상에 태어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지식의 길 안내를 받아야만 한다.
참선 공부하는 수행자가 화두를 들고 10년, 20년씩 앉아서 의심하지만, 고봉화상은 <선요(禪要)>에서 참 의심은 3일, 5일,
7일 만에 해 마쳐야 한다고 말했다. 돈오 이후에 하는 공부는 세세생생 해도 모자람이 없겠지만, 돈오하기 위한 공부는 짧고 빠른 시간 내에
해결해야 한다.
명안종사라면 참선공부하는 법을 잘 알고 있다. 이와 같은 분을 의지해서 공부한다면 바로 쉽게 해결할 수 있기에, 스승의 중요성은 아무리
반복해도 지나침이 없는 것이다. 진정한 공부인이라면 선지식과 문답할 때 멱살잡이라도 마다하지 말아야할 것이다.
이와 같은 자세를 가진 공부인이라도 곧바로 낚아채서 길을 열어주는 것이 선지식 본연의 모습인 것이다. 이 공부는 하면 끝까지 하고, 아니면
처음부터 하지 말아야 한다. 공부를 해 마치면 그 결과가 실다워지고 마음이 툭 터져서 뭐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끝 간 데 없이 가볍고 시원할
것이다.
온갖 자질구레한 알음알이를 말끔히 없애면, 생사는 물론 열반까지도 내려놓게 되므로 따로 도를 구하고 말고 할 것 없이 툭 터져서
안심입명(安心立命) 하게 될 것이다.
수불스님 | 금정총림 범어사 주지
[불교신문 2015년 7월 3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