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도인이 학인 가르치는 법은?

〈58〉14. 담주(潭州) 지도각(智度覺) 장로에게 드리는 글

미리 간파하고 묻는 즉시 망상 자르되

틀 박힌 선문답으로 법 전해서는 안돼

본문: 어찌 사람을 가두며 사람을 덮고 옮기며 치닫게 하는 것만을 귀하게 여긴 것이겠습니까. 무엇보다 참된 자리에 당하여 기댐이 없는 무위무사(無爲無事)의 큰 해탈로서 각각의 본분사를 밝게 보였던 것입니다.

해설: 눈 밝은 선지식이 학인을 제접할 때, 다만 집착하고 있는 것을 파악하여 쳐주었을 뿐이다. 색에 집착하고 있으면 그 색을 빼앗고, 공에 집착하고 있으면 그 공을 빼앗았다. 선지식이라면 항상 당처에서 벗어나지 않음으로써 함이 없어도 되지 않는 일이 없고 또한 구함이 없어서 일 없이 한가로울 뿐이며, 안팎이 밝게 뚫려 있어서 분별망상에 떨어지지 않고 원융 자재하여서, 비록 몸은 하루 종일 바삐 움직이더라도 언제나 큰 해탈의 자리에 우뚝 서서 여여할 것이다. 학인이 물어오면 늘 눈앞에 분명히 드러나 있는 본분사를 그대로 드러내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본문: 때문에 옛사람은 티끌 바람에 풀끝이 움직이면 그에 앞서 알아차리고, 털끝이 나오기만 하면 그 자리에서 잘라버렸습니다.

해설: 마음자리를 밝혀 언제나 무심한 도인은 인연이 벌어지면 전광석화처럼 기미를 알아차려서 즉시 처리한다. 예컨대 학인이 법을 물으러 오면, 문을 열고 들어오기도 전에 간파해 마칠 수 있어야 하고, 입을 열자마자 취모검으로 학인의 망상을 싹둑 잘라버릴 수 있어야 한다. 이때 언하(言下)에 계합할 것 같으면 줄탁동시의 인연으로 무명의 껍질을 깨고 나올 것이고, 그렇지 못한 학인이라면 근본에 대한 의문이 눈 위에 서리를 더한 것처럼 더욱 커질 것이다.

본문: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개나 반 개도 얻지 못했는데, 어찌 피차 어리석음 속에서 서로 뒹굴고 끌고 당기며 선문답을 두고 이리저리 따지고 가려서 격식을 만들어 사람들을 매몰시켜서야 되겠습니까. 이는 눈을 뜨고 침상에 오줌 싸는 격임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저 눈 밝은 사람은 결코 이런 틀에 박힌 짓은 하지 않습니다.

해설: 선지식은 때에 당해 만천하에 드러나 있는 이 일단의 일을 단박에 직지인심 해주지만, 언하에 계합해서 몰록 쉬어버리는 상상근기를 만나기란, 결코 쉽지가 않았다. 전진왕 부견이 불법을 구하려고 10만 대군을 이끌고 양양에 쳐들어가서, 겨우 몸이 성한 도안스님과 한쪽 다리가 불구인 습착지스님을 모셔왔다. 비로소 불법의 귀함을 상징하는 ‘한 개 반 개’가 회자되었다.

비록 불조의 혜명을 이을 제자를 얻기가 이처럼 어렵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법의 그릇이 안 되는 제자에게 틀에 짜인 선문답이나 법거량을 주고받는 어지러운 모습으로, 세상을 속이고 법을 전해주는 허망한 짓은 결코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요컨대 위신력을 지닌 눈 밝은 선지식이라면 모든 틀에 박힌 짓거리를 싹 쓸어버려서, 제자로 하여금 불법에 대한 안목을 투철하게 갖출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본문: 대장부의 의기(意氣)로 여러 사람을 놀라게 함에는 모름지기 임제스님의 근본 종지를 올바르게 이어, 할 한 마디, 몽둥이 한 대, 한 기틀, 한 경계에서 분명히 해결해야만 합니다. 듣지 못하였습니까? “취모검을 쓰고 나서는 재빨리 다시 갈아두라”고 했던 말을.

해설: 임제종의 수행가풍은 활발발하다. 크게 의심하면 크게 깨친다는 말처럼, 공부를 뼈저리게 하고 있는 학인에게 만나자마자 방(棒)과 할(喝)로써, 분명히 일대사를 해결해 마칠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한편 이와 같은 상근기는 흔치 않겠지만, 비록 중 · 하근기라 할지라도 믿음을 내고 공부하려고 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활구선(活句禪), 즉 간화선 수행법이 세간에 출현하게 된 것이다.

‘활구화두’야말로 온갖 번뇌를 뿌리 채 끊어내는 취모검과 같다. 선지식이 신심과 분심 그리고 용맹심이 사무치도록 간화장치를 열어놓고 학인을 그 속으로 밀어 넣어서, 은산철벽 앞에서 현애상(懸崖相)을 내어 돌아 나오지 못하도록 단단히 호법을 서주면, 어지간한 사람이라도 마침내 의단을 부수고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 시절인연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런 뒤에야 진정한 믿음 위에서 변화를 수용하며 살얼음을 밟듯이 세월을 보낼 수 있도록 지도하면, 임제종의 근본에서 어긋나지 않는 재목으로 자라나게 될 것이다.

수불스님 | 금정총림 범어사 주지
[불교신문 2015년 6월 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