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사의 삶은 주장자이니 출격대장부(出格大丈夫)의 생애로다”

금정총림 범어사ㆍ불교신문사 공동
동산대종사 열반 50주기 특별기획<끝> 3. 자비행

금정총림 범어사(주지 수불스님)와 불교신문(사장 영배스님)이 공동기획한 선교율(禪敎律)을 겸비한 수행을 근간으로 한국불교 정통성과 청정가풍을 회복한 동산 대종사 열반50주기 연재를 마무리한다. 오는 11일 열반 50주기를 앞둔 동산 대종사는 경허ㆍ용성ㆍ만해스님을 비롯해 역대 고승의 가르침을 계승한 선지식이다. 대종사의 삶은 앞으로도 한국불교의 지남(指南)이 될 것이다.

동산스님. 삿갓과 육환장이 이채롭다.

대중을 제접한 동산스님의 자비심은 비록 열반 50주년을 맞이하는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귀감이 되고 있다. 범어사에서 주석할 무렵 구름처럼 몰려든 납자(衲子)들을 단 한명도 배척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스님의 자비심을 엿볼 수 있는 일화가 전해오는 데 다음과 같다.

운수납자들이 줄을 잇자 사중(寺中) 살림을 책임진 원주(院主)의 상념이 깊어졌다. 국가는 물론 사찰의 재정상태도 넉넉하지 않은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동산스님에게 걱정을 고백했다. 그러자 동산스님은 간단하게 답했다. “의식(衣食)은 제천(諸天)이 감당하느니라.”

부처님 가르침을 배우고자 하는 대중을 외면할 수 없다는 소신에 따른 것이다. 동산스님을 모시고 정화운동의 전면에 나섰던 청담스님은 생전에 “식량의 유무를 불고(不顧)하고 수도납승(修道衲僧)들이 많이 오면 올수록 기쁘게 생각하고 한 사람이라도 가는 것을 섭섭히 여기고 만류했다”면서 “이러한 자비심으로 세세생생에 무량대복(無量大福)을 받을 것이며, 또한 많은 중생을 제도할 줄 믿는다”고 회고한바 있다.

옳지 못한 일에는 노도와 같이 경책

참회정진 다짐하면 넉넉함으로 포용

정화불사 한창이던 1956년 11월15일

네팔 카투만두 ‘세계불교도대회’ 참석

공식행사로 ‘한국불교 세계화’ 첫 발

핵무기 사용금지 구체적 제안낼 정도

지구촌평화 등에도 폭넓은 인식 가져

“불교계뿐만 아니라 국가 사회적 보배”

청담스님은 동산스님이 옳지 못한 일에 대해서는 “노도(怒濤)와 같은 폭발적인 꾸짖음을 했지만, 이내 무심(無心)한 얼굴로 대했다”고 전했다. 이같은 회고는 범어사 승가대 교수 흥선스님의 증언과도 일치한다. 예불에 맞춰 각 전각을 참례(參禮)하던 동산스님이 대웅전 앞 오른쪽에 있는 향나무를 가지치기한 스님에게 “당장 나가라”고 크게 경책했다. 깜짝 놀란 그 스님은 범어사를 나갔고, 다음날 아침 동산스님을 찾아가 문안 인사를 했다고 한다.

대중들은 또 다시 꾸중을 듣고 쫓겨나리라고 여겼지만 동산스님은 “잘 왔다. 저기 앉아라”고 자리를 권했다. 그때 다른 스님이 “어제는 쫒아냈는데 금방 받아 주십니까”라고 하자, 동산스님은 “가는 사람 잡지 않고, 오는 사람 막지 않는거야”라고 답했다는 것이다. 옳지 못한 일에는 따끔한 경책을 하면서도, 참회하고 다시 정진하겠다고 하면 거두었던 넉넉한 품을 느낄 수 있는 일화이다.

동산스님은 정화불사의 어려운 시기에 한국불교를 해외에 알리기 위한 노력도 마다하지 않았다. ‘한국불교 세계화’의 첫 발을 내딛었던 것이다. 정화불사가 한창이던 1956년 11월15일 동산스님은 효봉, 청담스님과 함께 네팔 카투만두에서 열린 제4차 세계불교도 대회에 참석한다.

1964년 속리산 법주사 미륵대불 점안법회에서 법문하는 동산스님.

일본, 홍콩, 태국, 인도를 거치는 강행군 끝에 네팔에 도착한 동산스님은 일주일간 머물며 한국불교의 현실을 알리고, 청정승가를 복원의 원력을 전 세계 불자들에게 전했다. 한국불교가 세계불교와 갖는 공식적인 첫 접촉이었던 것이다. 동산스님을 비롯한 일행 들은 한국불교의 정화운동을 인식시키고, 세계 각국 불자들과 유대를 강화했다.

귀국하는 길에 동산스님은 일행들과 함께 부처님 성도지를 비롯한 불교 성지를 순례했다. 장장 한 달에 이르는 외국 방문이었다. 1956년 12월15일 귀국한 동산스님이 친필로 남긴 ‘제4차 세계불교도 참가기’는 당시 한국 대표단의 활동을 구체적으로 담고 있다.

“2000년 불교역사를 지닌 한국불교가 신라, 고려, 조선으로 거쳐 오면서 불타(佛陀)의 광명을 이어오다, (조선 말기에) 일본의 침략으로 인해 불교종단 내부에 대처승이 발호하여, 한국불교의 전통적 가풍이 일시나마 흔들렸다. … 대한민국이 수립되고 이 대통령의 협조에 힘입어 대처승 정화에 힘을 기울여, 올바른 비구승 종단을 다시 수립하였다.”

세계불교도대회에 참석한 한국 대표단은 ‘교육(敎育) 및 인도우의(人道友誼) 분과위원회’에 소속되어 활동했다. 이 위원회는 세계평화와 인도주의 봉사활동을 논의하는 기구였다. 분과위원회는 11월17일에는 3일간 계속됐는데, 동산스님의 기록에 따르면 “(당시 한국 대표단은) 세계평화 유지를 위해 원자무기(原子武器)의 제조와 사용 금지안을 제출하고, 또한 강대국의 약소국에 대한 부당한 침략과 간섭을 배격하도록, 영국과 프랑스가 이집트를 침범한 예를 들어 강력히 주장한 결과 이 2개 안이 본대회에서 정식으로 채택되어 이 사실을 통고(通告)하도록 했다”고 한다.

주지 수불스님을 비롯한 범어사 대중들이 의 대종사 열반50주기 추모행사를 진행하는 가운데 경내 부도전 참배하며 다시 가르침을 되새기곤 했다.

즉 핵무기 사용 금지 등 세계평화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제안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 크다. 이는 당시 불교정화운동을 주도한 비구승들이 단순히 종단 내부의 문제에만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세계불교와의 교류, 그리고 지구촌의 평화를 위해 매우 구체적인 제안을 낼 정도로 폭넓은 인식이 있었음을 증명한다.

동산스님의 시야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세계불교도대회가 열린 카투만두에 머물면서 당시 네팔 불교계의 현황을 살펴본 스님은 한국불교가 출가자는 수행에 집중하고, 재가자는 사찰 운영에 참여해야 한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동산스님은 “이곳에서는 대처승이란 말조차도 알지 못하여, 그런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일체의 불교사업은 신도들이 맡아서 하며, 비구들은 오직 정진득도(精進得道) 중생제도(衆生濟度)에 전념할 뿐이다. 이곳에도 수선자(修禪者)가 있으나, 그들이 닦는 선(禪)은 모두 수상선(修相禪)이다.” 동산스님은 이어 교단 운영 방안에 대한 복안을 설명했다.

“짧은 시일이나마 다른 나라에 와서 그 곳의 불교를 살피고, 비구들의 행도(行道)를 보고서 느낀 것은 우리나라도 이곳 불교의 좋은 점들은 본받아 사원운영(寺院運營)은 재가신도(在家信徒)들에게 맡기고, 비구들은 교단의 기둥으로써 오로지 수도(修道)에 정진하며 중생들을 지도 교화하는 데만 주력하여야 되겠다는 것이니, 왜냐하면 현 세계불교의 형세(形勢)로 봐서 자연히 그렇게 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하여 한국불교 종단을 재건하고 불일(佛日)이 증휘(增輝)케 하기를 마음 속 깊이 다짐해 본다.”

동산스님의 가르침은 대중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고, 스님을 따르는 후학과 불자들이 줄을 이었다. 불교정화운동에 참여한 대의스님은 “(동산스님은) 우리 불교계의 자랑일 뿐 아니라 국가 사회적인 보배가 아닐 수 없다”면서 “이처럼 고귀한 인격의 소유자였던 동산스님이 아니고서는 그 누가 감히 한국불교정화의 제 일선에서 선두 지휘, 악전고투할 사람이 있었겠는가”라고 밝혔다.

동산스님이 열반에 든 후 대의스님은 “그러나 아직도 불교정화의 완수를 보지 못하고, 스님께서 홀로 가셨음은 가슴 터질 듯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면서 “우리들은 마치 기둥 없는 집이요, 부모 없는 아이들이요, 목동 없는 양(羊)떼가 되었으니, 지금에 오직 그 높은 덕(德)을 우러러 사모할 뿐”이라고 안타까워했다.

통도사 조실 경봉스님은 1967년 나온 <동산대종사석영첩(東山大宗師錫影帖)> 권두언에서 “우리 인간에 문사(文士)의 생애는 일병필(一柄筆)이요, 무사(武士)의 생애는 일척검(一尺劒)이요, 종사(宗師)의 생애는 일개(一箇) 주장자(?杖子)로다”고 했다.

“동산 대종사는 대원력(大願力)과 대자심(大慈心)으로 무궁무애(無窮無碍)의 종문본지가풍(宗門本地家風)과 운수납자(雲水衲子)의 행(行)으로서 천산만수(千山萬水)를 변답(遍踏)하고 고행신도(苦行信道)하여 일생의 생애가 일개(一箇) 주장자(?杖子)로서 불조(佛祖)의 현풍(玄風)을 대진(大振)하고 중생을 교화하였으니 과시(果是) 출격대장부(出格大丈夫)의 생애(生涯)로다”라고 추모했다.

청담스님은 동산 대종사 열반 소식을 듣고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큰 법당이 무너졌구나. 어두운 밤에 횃불이 꺼졌구나”라면서 “어린 아이들만 남겨두시고 우리 어머니는 돌아가셨구나”라고 아파했다. “동산(東山)이 물 위에 떠다니니, 일월(日月)이 무광(無光)하도다. 억. 봄바람이 무루 익어 꽃이 피고 새가 운다.”

신구 학문과 내외전을 두루 익히고 계율을 호지하면서 참선 수행으로 일관한 동산대종사의 삶은 지금은 물론 미래의 한국불교가 가야할 등대와 같다. 열반 50주기를 맞아 동산대종사의 가르침을 조명하고 계승하는 일은 대한불교조계종, 나아가 한국불교의 지향이 될 것이다.

범어사 주지 수불스님은 “언제나 동산 큰스님의 가르침을 잊지 않고 수행정진한다는 원력을 지닌 도량이 금정총림으로 그 정신을 깊이 새겨 실천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면서 “동산 대종사의 정신이 불교는 물론 사회와 국가 나아가 지구촌 발전의 원동력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조선말에 태어나 격동의 세월을 거치며 수행 정진하고, 한국불교의 청정성 회복의 주춧돌을 놓은 동산 대종사. 선지식으로 존경받는 스님은 직접 작성한 자찬(自贊)에서 삶을 자평했다. “元來未曾轉(원래미증전) 豈有第二身(기유제이신) 三萬六千朝(삼만육천조) 反覆只這漢(반복지저한)” “원래 일찍이 전한바 없거니, 다시 어찌 두 번째의 몸이 있으랴, 100년이라 3만6000일이, 단지 이놈의 반복이라.”

1956년 11월20일 세계불교도대회에서 네팔왕비에게 관음상을 선물 받는 동산스님(왼쪽).

■ 동산대종사가 좋아한 글

동산스님은 평소 ‘참고 견디며 기다리라’는 의미의 ‘감인대(堪忍待)’를 후학들에게 강조했다. 스님 스스로의 다짐이면서 대중에게 전하는 가르침이었던 것이다. 갈등과 대립, 고통과 번뇌의 사바세계에 살고 있는 중생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소중한 가르침이다.

또한 스님은 ‘千古榜樣(천고방양)’이란 친필 휘호를 주변에 나누어 주었다. ‘먼 후세에까지 남는 모범이 되라’는 의미로 출가자는 출가자답게, 재가자는 재가자답게 부처님의 제자로 정진하라는 뜻이다.

무너진 한국불교의 정법당간을 다시 세운 동산스님은 ‘정화불사 완수’에 대한 기쁨을 지은 글을 남겼다. “淨化完遂有何恨(정화완수유하한), 千思萬想都放下(천사만상도방하), 願入松風蘿月底(원입송풍라월저), 長觀無漏祖師禪(장관무루조사선)” “정화불사가 완수되었으니 무슨 한이 있겠는가, 천 생각 만 생각 모두 다 놓아버리고, 솔바람 달 걸린 넝쿨 밑에 들어가서, 무루의 조사선을 관하기가 원리로다.”

범어사 대웅전 앞의 동산스님. 연대는 정확치 않다.

■ 동산대종사 어록

“불(佛)은 허물이 없거늘, 중생이 전도하여 자심(自心)이 부처인 줄을 알지 못하는 것이니, 만일 자심이 부처인 줄 알면, 응당 마음 밖에 부처를 찾지 않는 것이다. 불성(佛性)은 스스로 있는 것이나, 스승을 인(因)하지 않으면 마침내 밝게 요달하지 못하나니, 만일 깨달아 알지 못하거든, 급히 선지식을 찾아 힘써 참구하여야 하느니라.”

“불법(佛法)에 대처승 없다. 승가 본연으로 돌아가는 길만이 우리가 갈 길이요. 또한 국가 사회를 정화하는 길이다.”

“보살계를 받는 제자는 다만 부처님께 예경(禮敬)하고 참회할 것이며 도를 행(行)하고 경(經)을 찬탄할 때에 이 옷을 입을지니, 마음으로는 성인경계(聖人境界)에 반연(攀緣)하고 몸으로는 법의(法衣)를 입고, 입으로는 부처님의 경(經)을 외워 보살행을 행하여야 한다.”

“어떤 사람이 손으로써 허공을 잡으려 하면 붙잡을 수 있겠는가? 허공은 다만 이름만 있고 모양이 없어서 취할 수도 버릴 수도 없다. 이 허공을 잡으려다 잡지 못하는 것과 같이 이 마음을 제(除)하고 부처를 찾으면 마침내 얻지 못하는 것이다. 부처란 제 마음으로 지어 얻는 것이거늘 무엇을 인(因)하여 이 마음을 여의고 부처를 찾겠는가?”

“샘물이 치솟듯 끊임없이, 등불과 등불이 서로 잇는 것처럼, 영산회상이 완전하게 항상 있어야 바야흐로 본분납자(本分衲子)의 방명(芳名)이라 이름 할 수 있으리라.”

범어사=이성수 기자 | soolee@ibulgyo.com
[불교신문 2015년 5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