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오로 가는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수행은?

〈55〉13. 정주(鼎州) 덕산 정(德山靜) 장로에게 드리는 글

간화선, 출재가 누구나 눈뜰 수 있음 입증

바삐 살아가는 현대인 수행으로 가장 적합

본문: 장로께서 도림(道林)과 상종하심은 숙세의 인연입니다. 향상의 관문을 열어 제치고 한마디에 그대로 계합하여 빠짐없이 원만히 비춤은 예부터 모두 대기와 대용을 썼기 때문이니, 용과 코끼리의 발자국은 노새가 감당할 바가 아닙니다.

만약 이 솜씨를 갖추지 않았다면 어떻게 사람에게서 끈끈함을 떼어주며 결박을 풀어주고 못과 쐐기를 뽑아주겠습니까? 이 본분의 일은 단지 한결같이 다잡아 농사꾼의 소를 몰고 가고, 주린 사람의 밥을 빼앗는 솜씨만이 활구(活句)입니다.

해설: 향상(向上)은 선문의 구경(究竟)을 말한다. 향상의 자리는 처음부터 온 천하에 환히 드러나 있어서, 도무지 관문이라곤 없다. 허공에 무슨 문이 있을까? 그렇지만 미혹한 중생이 스스로 분별망상에 떨어져 눈앞에 역력한 향상사(向上事)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명안종사들은 방편으로 장치를 시설하여 공부인으로 하여금 스스로 눈을 뜨도록 독려하고 호법을 서는 것이다.

모든 공안은 향상사를 그대로 드러낸 한 마디 말인데, 공부인이 이 말을 소화하지 못하면 당연히 의문이 일어나게 된다. 이렇게 공안 상에서 일어난 의심이 곧 화두인데, 활구가 들려지면 정신적인 벽, 즉 은산철벽이 가로막게 된다.

공부인은 이 벽을 뚫기 위해 최선을 다하여 몸부림쳐 보지만, 그럴수록 마치 쥐를 잡으려고 만든 소뿔 속으로 들어가 앞뒤가 꽉 막힌 것처럼 답답해지고 요지부동이 된다. 눈앞에 활발발하게 살아서 작용하고 있는 향상사에 통하지 못해 마치 눈뜬 봉사처럼 미혹 속에서 헤매는 사람들은 대개 밖에서 듣고 배운 지식이나 잠깐 스치며 맛본 경계를 마치 농사꾼이 소를 애지중지하거나 주린 사람이 밥에 집착하는 것처럼 꽉 붙들고 놓지 못하고 있다.

향상사는 곧 불이법(不二法)으로 분별망상의 알음알이로는 도무지 계합할 수가 없기 때문에, 눈 밝은 선지식은 공부인을 결박하고 있는 온갖 고정관념과 선입견들을 없애주기 위해 활구를 들고 의심하도록 간화장치를 시설하는 것이다. 마치 붉은 화로에 떨어지는 눈이 흔적 없이 녹듯이, 활구 앞에서 비로소 은산철벽이 무너진다.

이렇게 공부인이 부지불식간에 집요하게 붙잡고 있는 정식(情識)의 명근(命根)을 뿌리채 뽑아주는 활구를 시설해주는 것이야말로 명안종사의 진정한 자비라고 할 것이다. 믿음을 낸 공부인을 대상으로 이런 활구 장치를 시설하는 것이 참선법의 기본원리이며, 이를 가장 충실히 적용하여 짧은 기간 내에 효과적인 결실을 맺게 하는 방법이 한국불교의 정통수행법, 즉간화선인 것이다.

원오극근스님의 법제자인 대혜종고스님이 여기에 착안하여 민(?)땅의 양서암에서 50명의 결제대중에게 활구 화두를 들도록 지도했으며, 이 중에서 한 철 만에 13명이나 깨달음에 들어갔던 것이다. 그 후 선지식을 믿고 들어온 사대부들에게 화두를 걸어주고 깨달음으로 이끌어주어서, 간화선은 출가자나 재가자나 관계없이 불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눈 뜰 수 있게끔 길을 열어주는 수행법임이 증명되었다.

본문: 모든 언어, 요긴한 기연, 사리(事理), 밝고 어두움, 침묵과 언어, 잡고 놓아줌, 살림과 죽임 등은 모두 다음 글에 갖추어져 있으니 더 이상 들먹이지 않겠습니다. 오로지 황벽 · 임제 · 목주 · 운문· 위산 · 앙산 · 설봉 · 현사 등 스님은 더욱 오묘함을 체득했습니다.

산승의 방안에서는 일찍이 이 관문을 밟지 않으면 결코 그냥 지나게 하지 않았으며, 부촉할 때에는 더더욱 철저하게 했습니다. 희귀하게 하는 것은 절대 금물이니 그런 건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습니다. 알아차린 사람이 없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반드시 바로 이 문중의 사람이라야만 할 것입니다.

해설: 불법의 대의는 마음인데, 이것을 눈앞에서 분명하게 자각하고 있는 사람은 이러쿵저러쿵 설명할 필요가 없이 즉각 ‘직지인심’ 하게 된다. 그래서 조사의 뜻에 통한 사람은 그 자리에서 언하에 깨닫게 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의심이 불같이 일어나게 된다.

돈오법문(頓悟法門)을 창시한 육조혜능 스님의 적자(適子)인 역대의 명안종사들은 당장 그 자리에 환히 드러나 있는 향상사를 가리킬 뿐이지, 기발한 언어문자나 희귀한 수행법에 의지하지 않았다.

수불스님 | 금정총림 범어사 주지
[불교신문 2015년 5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