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가 늦는 한이 있더라도 정화운동 성취시켜야 한다”
금정총림 범어사ㆍ불교신문사 공동
동산대종사 열반 50주기 특별기획 2. 정화불사〈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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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산대종사 진영. |
“우리가 사농공상(士農工商)에 불참하고, 이부모(離父母) 기친척(棄親戚)함은 출가학도(出家學道)하야 불조(佛祖)의 혜명(慧命)을 이어
자기기충족(自己旣充足)하고 추기지여(推己之餘)하야 상보사중은(上報四重恩)하고 하제삼도고(下濟三途苦)할 지원(志願)이요.”
동산스님이 1954년 12월10일 발표한 종정훈화(宗正訓話)의 일부이다. 정화불사를 본격적으로 추진하면서 대중에게 당부한 내용이다.
이 훈화에서 동산스님은 “부모를 떠나고, 가족을 버려 출가해 도를 배우는 까닭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잇기 위함”이라면서 “위로는 네
가지(삼보, 국가, 중생, 부모) 은혜에 보답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구제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출가자의 본분을 구체적으로 적시하고
있다.
종정훈화에서 동산스님은 “명리(名利)를 위하거나 주지를 원하거나 사찰재산(寺刹財産)을 구하지 않음은 이제까지 밟아온 역사가 증명하는
바”라면서 “아무것도 겁내지 말고 다 7000 비구(比丘)가 되기를 바라며 그렇지 아니하면 호법중(護法衆)이 되어 질서정연하게 교단정화를
동심육력(同心戮力, 한마음으로 협력)하여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같은 종정훈화는 정화불사를 완수하기까지 동참 대중의 지남(指南)이 되었고,
한국불교의 청정승단을 복원하는 견인차가 되었다.
“승가본연의 길 돌아가는 것이
정화의 뜻이며, 국가사회 정화…”
대통령 만나 전향적 자세 요구
세속가정 정리 못하는 대처승
‘호법중’으로 등록하도록 포용
'관용과 구제’ 특별조치도 단행
1962년 4월 통합종단 출범 후
종정직에서 물러나 범어사 주석
납자들 제접…사격일신에 매진
동산스님과 함께 정화불사의 선봉에 섰던 청담스님은 “대처측의 강력한 방해공작으로 정화운동이 진퇴유곡(進退維谷)에 부딪쳤을 때마다
(동산스님이) 비장한 각오로 사자후(獅子吼)를 토하시며 대중에 앞장서 순교단식(殉敎斷食)을 감행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결연한 의지와 흔들리지 않는 신심으로 정화불사의 선봉에서 동산스님은 과감한 결단력과 추진력으로 대중을 이끌었다. 확고한 신념과 의지를
배경으로 불퇴전의 자세로 정진했던 것이다. 그러나 동산스님이 추진한 정화불사는 과격하거나 급진적인 입장만 견지했던 것은 결코 아니다. 스님은
대처승들도 교단 내에서 ‘호법중(護法衆)’으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고자 했다.
동국대 교수와 조계종 상임포교사를 지낸 고(故) 이종익 박사는 생전에 ‘내가 본 동산 선사와 불교정화운동’이란 글에서 정화불사에 대한
동산스님의 의중을 전하고 있다.
이 박사의 증언에 따르면 1954년 8월 선학원에서 열린 전국불교 비구승대회에서 동산스님은 “수십 년 종권을 장악하고 사재(寺財)를
점유하여 뿌리 깊은 기반을 잡고 있는 대처측을 일조(一朝)에 사원(寺院) 밖으로 몰아낸다면 큰 문제가 생길 것”이라면서 “비구승은 전국 사찰 중
수도장이 될 만한 곳을 15개 내지 30개 정도만 관리하고 수도에 전력하여 불교의 모범사찰을 만들고 도덕이 높은 승려가 출현한다면 전국불교가
정화 재건될 것이니, 나는 이것이 선책(善策)이라고 본다”고 밝혔다고 한다. 동산스님의 이같은 입장에 청담스님과 경봉스님 등 대부분의 원로,
중진 스님들이 찬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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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화불사의 주역들. 앞줄 왼쪽부터 대의 청담, 금오, 동산, 효봉스님. |
하지만 소장파 비구승들의 ‘완전한 정화’ 요구와 대처승들의 반대로 동산스님의 ‘점진적 정화’는 빛을 보지 못했다. 이에 대해 이종익 박사는
“대처측을 승려라는 명분은 취소하고, 재가교도(在家敎徒)로 돌아가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그를 적대시할 것이 아니라 각자 그 자격에 따라 사원
관리 또는 불교를 외호케 하자고 주장했다”면서 “동산 선사도 그 의견이 줗다고 인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입장도 앞서와 같은 상황 때문에 비구승과 대처승들이 수용하지 못했고, 정화불사는 급기야 물리적 충돌과 법정 싸움으로 비화됐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1954년 12월8일 동산스님은 조계종 종정 명의로 <행정신문>에 (대처승들이) 세속의 가정을 정리하고 비구승으로 돌아올 것과
그렇지 못할 경우 호법중(護法衆)으로 등록할 것을 촉구했다. ‘호법대중의 등록청원 촉구 공고’가 그것이다.
“불교정순(淨純)운동에 수응(隨應)하신 제위(諸位, 대처승)는 빨리 가정을 정리하시고, 비구승으로 회심수행(回心修行)하심을 축하하오며,
만약 그렇지 못할 부득이한 사정에 처한 분들은 호법중(護法衆)으로 등록하시면 그 자격에 따라 좌기(左記)의 위촉을 받을 수 있습니다.”
동산스님이 정화운동 지도부의 의견을 수렴해 마련한 호법중의 위촉 가능한 직책은 다음과 같다. △사찰의 총섭대행(總攝代行, 주지대리)
△삼직, 감원 등 △포교사, 전도사. 정화불사의 원칙에 근거하면 이같은 제안은 매우 획기적인 것이었다. 일부의 반발이 전혀 없지는 않았지만,
이같은 동산스님의 공고문은 대처승들이 비구승 또는 호법중으로 신분을 정리해 교단에서 함께 불교발전을 우해 협력하는 길을 제시한 것이다.
1954년 12월12일과 13일 이틀간 폭설이 내리는 가운데 600여 명의 스님들이 참석한 가운데 제3차 전국 비구비구니대회가 열렸다.
이날 대회가 끝난 후 조계사 대웅전을 출발한 동산스님을 비롯한 수백 명의 스님들은 광화문과 중앙청을 지나 효자동 거리를 점거하고 대통령 면담을
요청했다. 이날 동산스님은 6명의 스님과 함께 대통령을 만나 정화의 당위성을 설명하고 정부의 전향적인 자세를 촉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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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8월 전국승니대회 기념사진. |
그러나 정화불사의 과정은 가시밭길이었다. 1955년 6월 350명의 비구스님들이 정화불사의 당위성을 강조하며 조계사에서 단식 묵언기도를
하고 있을 때였다. 사흘째 되는 날인 10일, 대처승 300여 명이 조계사 담을 넘어와 법당에서 단식묵언 정진 중이던 비구승들을 무차별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단식하고 있는 비구 스님들은 무방비 상태에서 폭행을 당했고, 그 결과 많은 부상자가 발생했다.
동산스님은 물론 서운스님 등 31명이 중경상을 입었고, 동산스님 상좌 지효스님은 할복을 결행하며 결연한 의지를 보였다. 당시 단식은 7일
만인 6월15일 오전8시 회향했다. 당시 조계사 주지 대의스님은 동산스님의 당부를 훗날 회고한바 있다. “나와 몇 사람을 불러 놓고는 ‘우리의
공부가 늦는 한이 있더라도 정화운동을 성취시켜야 한다’면서 ‘우리들의 후생(後生)을 위해서 거름이 되자고 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한국전쟁 휴전 후에 본격화된 정화운동 기간 내내 동산스님은 흔들리지 않는 신심으로 승단의 청정성 회복을 위해 매진했다. 서울 조계사와
선학원에 주로 주석하면서 시시각각 변하는 정화운동 상황을 점검하고, 대중에게 방향을 제시했다. 동산스님은 “승가 본연의 길로 돌아가는 것이
정화의 뜻이며, 그것이 곧 국가와 사회를 정화하는 길”이라고 역설했다.
대의스님은 “(동산스님은) 우리 불교계의 자랑일 뿐 아니라 국가 사회적인 보배가 아닐 수 없다”면서 “고귀하신 인격의 소유자였던 동산스님이
아니고서는 누가 감히 한국불교정화의 제 일선에서 선두 지휘하고, 악전고투할 사람이 있겠는가”라고 밝힌바 있다. 총무원장을 역임한 경산스님 역시
“동산 대화상은 한국불교 정화운동을 처음부터 끝까지 영도하셨다”면서 “대중적이며, 인자하시고, 누구보다도 신심(信心)이 장한 분”이라고
했다.
1962년 동산스님은 정화불사의 완수를 위해 큰 결단을 내렸다. 분쟁의 화근을 멸절(滅絶)하기 위해 정화의 대원칙에 반하지 않는 모든
인사들에게 관용과 구제하는 특별조치를 단행했다. 스님의 조치에 화답하는 이들이 늘고, 정부에서도 정화불사의 타당성에 적극 옹호하는 입장으로
바뀌었다.
그 결과 1962년 4월10일 통합종단이 출범했으며, 일제강점기에 태동하고 한국전쟁 후 본격화된 정화불사가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됐다.
통합종단이 출범하자 동산스님은 종정의 자리를 마다하고 범어사로 돌아갔다. 스님은 1955년 8월 전국승려대회 결의사항을 정부에서 인정하면서
제1차 정화불사가 막을 내렸을 때도 종정에서 물러나 범어사에서 납자들을 제접하고 사격(寺格)을 일신하는데 매진하는 등 지위에 연연하지
않았다.
동산스님은 불교정화운동의 핵심은 ‘수행(修行)’이었다. 초지일관 수행의 회복을 견지하며 정화불사를 이끌었다. 스님은 “정화는 오직
수행정진을 올곧게 하는 것이다. 진짜 정화는 이것”이라면서 “우리가 정화를 한 것은 이렇게 하려고 한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청정승단을
재건하고, 불법(佛法)을 후대에 전하기 위한 원력에서 비롯된 정화불사의 견인차 역할을 담당한 동산스님의 뜻은 지금도 유효한 가르침이다.
금정총림 범어사 주지 수불스님은 “동산대종사를 비롯한 큰스님들의 정화불사는 청정수행종단을 구현하기 위한 원력에서 비롯된 것으로, 한국불교의
정통성을 계승한 대한불교조계종의 근간이 됐다”면서 “정화 정신을 바르게 계승해 부처님 정법(正法)을 보다 널리 전하는 일에 후학들이 최선을 다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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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금정총림 범어사 일주문. |
■ 동산대종사 정화선언문
“불교는 청정(淸淨)의 교문(敎門)이다. 청정으로 미망을 제거하며, 청정으로써 세탁을 전화(轉化)하여 상락범자(常樂梵字)를 실현함이 이른바
불교요 불원(佛願)이다. 또 불수행이다. 저 제불의 정의(淨意)로써 의리를 삼고 중성(衆聖)이 정거(淨居)로써 의지(依支)를 지음이 진실로
우연함이 아니다. … 시대의 탁류(濁流)가 불도(佛徒)의 신근(信根)을 동요하고 이 틈을 타서 군마(群魔)의 도랑(跳浪)과 만장(萬障)의
분등(粉騰)을 본 것은 아 하등(何等)의 법난(法難)이며, 하등의 교화(敎禍)인가 … 해동의 불교는 금일로써 신기원을 삼아서
인천화도(人天化導)의 도정에 재출발하게 된 것을 불자여 명기(銘記)하여 망각하지 말지어다.” 불기 2982년 8월3일 한국불교조계종 대표
하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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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산 대종사 정화불사 주요 일지 |
■ 동산대종사 어록
“정혜쌍수만 하지 말고 계정혜 삼수를 행해야 한다. 계율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
“(사미승들에게) 사미율의를 철저히 가르치도록 해서, 수행풍토를 반드시 되찾아야, 불조혜명을 이어갈 수 있지 않느냐.”
“잘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재보시, 법보시, 무애보시를 하라, 남에게 베풂으로써 나에게 복이 오고, 타인을 괴롭히면 해가
온다.”
“여러분이 삼동결제(三冬結制)에서 나오지도 않고 절개를 지키고 공부를 잘 했으면 그 중에는 조사공안(祖師公案)을 투득(透得)한 이도
있겠지만 만일 못했을 것 같으면 그대로 공부를 계속해 나가야 한다. 내가 이제 해제했으니 공부를 그만둔다 하지 말고 하던 공부를 계속해 나가면
자꾸 계속하고 싶은 생각이 나고 계속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이 일념(一念)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마음은 본래 내외중간(內外中間)이 없고 있고 있지 않은 곳이 없다[無在不在] 그러니 다시 의의(擬議)할 것이 없고, 만일 조금이라도
의의한다면 이미 글렀으며 한 방망이 맞는 것이다.”
“법신을 깨달으면 한 물건도 없고 본래 근원 그대로의 자성이 천진한 부처님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장애가 되던 것이 도리어 광명세계가 되어
자유자재한 해탈법을 얻어서 중생을 오늘날에 이렇게 건져주시는 법(法)이 이것이다.”
“부처님 원리는 일체가 유심(唯心)이다. 이 유심의 근본은 불(佛)도 아니요, 중생도 아니요, 물(物)도 아니요, 심(心)도
아니다.”
“차라리 잠깐이라도 지혜로운 사람이 될지언정 백년의 일생 동안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말기를 바라고 바라노라.”
“그 도리는 깊고 깊으며 세밀하고 세밀하되 조금도 옹색함이 없다.(深深密密, 無壅塞)
“삼계는 오직 마음이니, 한 마음의 가운데 무슨 성쇠(盛衰)가 있겠는가? 천겁을 지나도 예스럽지 않고, 만세에 걸쳤으나 항상
오늘이네.”
범어사=이성수 기자 | soolee@ibulgyo.com
[불교신문 2015년 5월 1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