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 세우고 공 굴리고…그러나

〈54〉12. 보현사(普賢寺) 문장로(文長老)에게 드리는 글

말, 동작에 무슨 뜻 있는 것 아니다

이 순간 작용하는 당체를 바로 보라

본문: 노조(魯祖)스님은 납자들이 오는 것을 보면 얼른 돌아앉아 면벽하였습니다. 남전(南泉)스님이 이 말을 전해 듣고 말했습니다. “나는 평상시에 스님들에게 말하기를, ‘부처님이 오시기 전에 알았다 해도, 하나는커녕 반도 얻지 못했다’고 했는데, 그가 이렇게 해서는 나귀해가 되도록 참구해도 기약이 없을 것이다.”

해설: 이 공안은 <선문염송> 제188칙에 ‘노조면벽(面壁)’의 제목으로 실려 있고, <전등록> 제7권에도 나온다. 마조스님의 법제자인 지주(池州) 노조산의 보운(寶雲) 스님은 납자들을 제접할 때, 누구라도 다가오면 얼른 벽을 향해 돌아앉는 것으로 유명했다.

이에 대해 시비가 끊임없이 일자, 사형이었던 남전스님은 일전어(一轉語)로써 구구한 시비를 끊어주었던 것이다. ‘염송’에는 이 공안에 대해 취암가진, 천동정각, 장경혜릉, 동림상총 등의 선사들이 붙인 다양한 송(頌)이 소개되고 있다.

본문: 이 두 어른들은 자취를 함께 하고 눈썹을 나란히 한 분으로, 도리를 모르는 것이 아니었는데 무엇 때문에 굳이 이처럼 말하였을까요? 노조스님의 방법을 알아냈습니까? 알아냈다면 남전스님 보기를 물이 물로 들어가듯 하겠지만, 모른다면 노조스님을 잘못 알고 남전스님을 그릇되게 집착하여 빙글빙글 그저 말로 드러낸 주장을 좇기만 할 뿐 어찌해 볼 수가 없을 것입니다.

해설: 원오극근스님은 보현사 문장로에게 보내는 이 편지에서 노조스님이 면벽한 뜻과 남전스님이 굳이 이를 부정함으로써 자취를 쓸어준 뜻을 흔쾌히 소화시킬 줄 알아야 한다고 경책하고 있다. 만일 그 낙처에 계합하여 점두할 수 있다면, 노조스님이나 남전스님이나 심지어 이 편지에서 ‘노조면벽’ 공안을 제시하는 원오스님의 심중까지도 꿰뚫어 마치 물이 물에 합하듯 이심전심으로 계합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선문염송 제211칙에는 노조스님이 남전스님과의 문답 끝에 돈오하는 공안 ‘노조불회(魯祖不會)’가 소개되고 있다. 남전스님에게 노조스님이 물었다. “마니주(摩尼珠)를 사람들이 알지 못하여, ‘여래장(如來藏) 속에서 몸소 얻었네’라고 하였으니, 어떤 것이 장(藏)입니까?”

그러자 남전스님이 말했다. “나 왕노사(王老師)가 그대를 위해 왕래한 것이 장(藏)이니라” 노조스님이 말하였다. “가지도 않고 오지도 않을 것입니다” 남전스님이 말했다. “그것도 장이니라.” 노조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구슬입니까?” 남전스님이 노조스님을 부르니, 노조스님이 대꾸했다. 그러자 남전스님이 말하였다. “가거라. 그대는 나의 말을 알지 못한다” 이에 노조스님이 깨달았다.

본문: 석공(石鞏)스님은 활을 당겨 화살을 쏘았고, 비마(秘魔)스님은 나무집게를 들어 사람을 시험하였으며, 구지(俱?)스님은 한 손가락을 치켜세웠고, 무업(無業)스님은 “망상 피우지 말라” 했습니다. 화산(禾山)스님은 “북칠 줄 안다”고 하였고, 설봉(雪峰)스님은 나무공을 굴렸으며, 조주(趙州)스님은 “차나 마시게” 하였고, 현사(玄沙)스님은 “빗나갔군” 하였는데, 경론에 어찌 이런 것들이 있겠습니까?

해설: 조사스님들은 납자들이 법을 물어올 때, 다만 인연 따라 당처를 드러낼 뿐이었다. 그 한 마디 말이나 하나의 동작에 무슨 비밀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온 천하에 환히 드러나 있는 법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그 한 마디 언구나 한 동작은 단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과 같은 것으로서, 그 뜻은 지금 이 순간 작용하고 있는 당체를 바로 보라고 하는 것이다.

화살을 쏘거나 나무집게를 들거나 손가락을 들거나 한 마디 말을 하거나간에, 묻고 답하는 그 순간에 바로 지적해서 보여주고 있는 당처에 계합하게 하여 실제로 정신적 벽을 타파하고 근본실상을 깨닫게 해주는 선법(禪法)은 팔만대장경 어디에도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실상이 바로 목전에 역력한 조사라면 복잡한 언어문자를 빌릴 필요 없이, 모든 사람의 목전에서 활발발하게 드러나고 있는 법을 바로 지적하여 눈뜨게 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고 실질적인 가르침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수불스님 | 금정총림 범어사 주지
[불교신문 2015년 4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