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산방 임제할’은 무엇을 말해주나

〈53〉12. 보현사(普賢寺) 문장로(文長老)에게 드리는 글

본문: 이 두 어른은 총림에서 걸출한 분들로, 모두 몽둥이 끝에서 크게 깨달아 뒤에까지 이 종풍을 크게 떨쳐 세상의 사다리와 배가 되었습니다. 참선하는 사람들은 잘 돌이켜 보아야 합니다. 어찌 그들이 거칠고 천박했겠습니까?

그런데 요즈음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주장자로 사람을 제접하는 것은 모두 경계[機境]에 떨어진 것이다”고 합니다. 반드시 심성을 참구하여 요달하고 나서 지극히 묘한 이치를 철저히 논할 것이니, 어느 때이고 바늘과 실처럼 면면밀밀해야 바야흐로 세밀한 데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해설: 설봉스님이 덕산스님의 주장자를 맞고 깨달은 것이나 임제스님이 황벽스님의 뼈아픈 방망이를 맞고 대우스님에게서 깨달은 기연을, 자칫 거칠고 천박한 행동이라거나 경계에 떨어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단지 그 겉모습만 보고 오해한 것이다.

때리고 맞는 가운데 밝게 드러나 있는 낙처(落處)를 철저히 꿰뚫어 보아야만, 비로소 고인들의 무애자재하게 법 쓰는 법을 점두(點頭)할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옛 분들의 매서운 수단에 흔쾌히 계합하여 긍정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실상(實相)을 밝히지 못하고 알음알이에 빠져 헤아리고 있는 자신의 허물이라는 점을 돌이켜봐야 한다.

덕산방(德山棒) 임제할(臨濟喝)이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살인도 활인검’이 된 까닭을 아직 면면밀밀하게 밝히지 못한 공부인이라면, 여기서 크게 신심과 분심과 의심을 일으켜 은산철벽에 곧장 부닥쳐 가야 될 일이다.

임제가풍인 금강권, 율극봉을 철저히 투탈(透脫)하고 내외명철(內外明徹)해서, 마치 화살촉과 촉이 서로 마주치듯이 중도 불이법에 통달하고 나서야 바야흐로 방편지(方便智)까지 세밀하게 살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

겉모습만 보고 비판하거나 배워서는 안돼

때리고 맞는 가운데 있는 낙처(落處) 꿰뚫어야

본문: 예컨대 저 일대장교인 5교3종(五敎三宗)은 은밀한 곳, 지극히 진실한 실제의 경지를 분석해 드러내며 부처 지위의 이치를 꿰뚫었으니, 어찌 조사서래의를 빌림이 세밀함이 되지 않겠습니까?

해설: 부처님의 49년 동안의 일대 가르침을 설법순서에 따라 천태지의 대사가 교상판석(敎相判釋)하여 다섯 시기[五時]로 나누었다.

첫째, 깨달은 후 21일간 <화엄경>을 설한 화엄시(華嚴時). 둘째, 12년간 녹야원에서 <아함경>을 설한 아함시(阿含時). 셋째, 8년간 <유마경>과 <능가경> 등 방등부 대승경전을 설한 방등시(方等時). 넷째, 21년간 반야부의 경전을 설한 반야시(般若時). 다섯째, 8년간 <법화경>과 <열반경>을 설한 법화열반시(法華涅槃時)이다.

부처님께서는 중생의 근기에 따라 차제(次第)로 대기설법(對機說法)을 하셨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그 근본 뜻은 희미해지고 방편설인 언어문자에만 집착하여 교학이 칡덩굴처럼 얽혀 복잡해졌다. 그래서 아무리 경론에 밝은 학자라도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 한 마디 앞에선 그만 아득해져서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만다.

본문: 그러나 법이 오래 흐르다 보니 이견(異見)이 많이 나오고 참된 가르침을 전해 받지 못하여 제호(醍?)를 가지고 독약을 만들었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어찌 덕산·설봉·황벽·임제의 허물이겠습니까. 속담에 “두레박줄이 짧으면 깊은 샘에 이르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해설: 5교3종은 결국 일심(一心)으로 회통되는데, 제아무리 머리가 좋아 경론에 통달하더라도 이 마음을 깨치지 못하면,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에 계합하지 못하고 생사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다.

대자대비하신 부처님의 팔만대장경의 친절한 가르침이 세월이 오래 흘러 허다한 논설(論說)에 의해 복잡해져서 오히려 명심(明心)을 방해하는 독약이 되어버린 현실에서,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의 경절문(徑截門)인 선(禪)의 출현은 지극히 당연하고도 바람직한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량분별(思量分別)의 짧은 두레박줄로서는 도저히 언어도단(言語道斷) 심행처멸(心行處滅)의 근본당처의 감로수를 마실 수가 없다. 백천 마디 말보다는 방할(棒喝)로써 전도몽상에 빠진 사람을 직접 흔들어 깨우는 기연(機緣)을 베푸신 황벽·임제·덕산·설봉스님 등의 역대 명안종사들이야말로 부처님의 혜명을 바로 세우고 더욱 올곧게 이어가는 적자(適子)라고 할 수 있다.

수불스님 | 금정총림 범어사 주지
[불교신문 2015년 4월 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