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경론 통달해도 알지 못하는 그것은?

〈52〉12. 보현사(普賢寺) 문장로(文長老)에게 드리는 글

본문: 양수(良遂)스님이 “여러분이 아는 것은 내가 모조리 알지만, 내가 아는 것은 여러분이 모른다” 하신 말씀과 같다고나 할까요. 참으로 진실하신 말씀입니다.

해설: 양수스님은 불교의 경학에 통달하여 사람들에게 불교를 가르치는 좌주(座主)였다. 하지만 스스로 뭔가 미진한 것이 있다고 느껴져서, 마침내 마조의 제자였던 마곡보철선사를 찾아갔다. 마곡스님은 멀리서 양수스님이 오는 것을 보고, 짐짓 피해버렸다.

삼일 째 되는 날에도 마곡스님은 외면하고 방장실로 들어가 문을 탁 닫아버리자, 양수스님이 문 앞에 가서 인사를 했다. 마곡스님이 말했다. “누구냐?” 양수스님은 “양수입니다” 하고 자기 이름을 일컫다가 홀연히 깨닫고는 바로 큰절을 올리고 말했다.

“화상께서는 양수를 속이지 마십시오. 양수가 만일 여기에 와서 화상께 예배를 드리지 않았더라면, 어찌 오늘의 일이 있었겠습니까? 자칫 경론에 빠져서 일생을 속아지낼 뻔했습니다.” 그리고 돌아가서 경학을 공부하는 스님들을 모아놓고 말했다. “여러분이 아는 것은 내가 모조리 알지만, 내가 아는 것은 여러분이 모른다.”

아무리 경론에 통달해도 미처 알 수가 없지만, 선지식의 한 마디에 밝게 사무쳐 깨닫는 이것이 과연 무엇일까? 불법의 구경(究竟)에 뜻을 둔 공부인이라면, 모름지기 깊이 참구해볼 일이다.

선지식 한 마디에 밝게 사무쳐 깨닫는 ‘이것’

불법구경(究竟) 뜻 둔 공부인 깊이 참구해야

본문: 설봉(雪峰)스님이 덕산(德山)스님에게 “위로부터 내려오는 종승(宗乘)의 일이 저에게도 해당하는지요?” 하고 묻자, 덕산스님은 주장자로 때리면서 “뭐라고 지껄이느냐?”고 하였습니다. 설봉스님은 후에 “나는 덕산스님에게 매를 맞고 천 겹 만 겹 살 냄새와 땀이 밴 장삼을 벗어버린 것 같았다”고 하였습니다.

해설: 설봉의존(雪峰義存, 822~908)스님은 육조의 제자인 청원행사의 제5세로 덕산선감의 법을 이었다. 복건성 복주의 상골산 설봉에서 법을 펼칠 때 항상 1500 대중이 운집하였는데, 그 문하에서 현사사비, 운문문언, 장경혜릉 등의 기라성 같은 선승들이 배출되었다.

설봉스님은 처음에는 동산양개의 휘하에서 공양주를 맡아 공부했으나, 곧 동산의 지시로 덕산선감을 찾아가 참구하였다. <전등록>에는 덕산스님이 ‘종승의 일’을 물어오는 설봉스님을 때릴 때, “나의 종지에는 어구(語句)가 없다. 진실로 한 법도 남에게 전해줄 것이 없다”고 전한다.

후일 설봉스님이 사형인 암두전활스님과 행각하다가 호남성 오산진에서 눈에 막혔을 때, 암두스님에게 스승인 덕산스님에게 맞고 활연히 통 밑이 쑥 빠지는 것 같았지만 아직도 흉중이 편치 않다고 토로하였다. 그때 암두스님이 “그대는 듣지 못했는가. 문(門)으로 들어오는 것은 집안의 보물이 아니라는 것을” 하고 말하자, 설봉이 물었다.

“다음날 어떻게 해야 옳습니까?” 암두스님이 “만약 큰 가르침을 드날리려면, 자기 가슴에서 흘러나와서 하늘과 땅을 뒤덮어야 하리라” 하자, 이 말 끝에 설봉이 크게 깨치고 일어나 절을 하면서 말했다. “오늘에야 비로소 오산에서 도를 이루었습니다.” 설봉스님은 휘종 황제로부터 진각(眞覺)대사라는 호와 자의(紫衣)를 받았고, 세수 87세, 법랍 59년으로 입적하였다.

본문: 내 자리에 앉아서 참구하여 끝내 아무 터진 틈도 없는 도리를 요달한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방장실에 들어가 입에서 나오는 대로 어지럽게 말씀드렸더니, “무슨 횡설수설이냐?”고 나무라셨습니다. 즉시 마음속으로 복종하였는데, 참으로 눈 밝은 사람이 나의 가슴속 일을 꿰뚫어 보았던 것입니다.

해설: 원오스님은 임제종 양기파의 법맥을 이어받은지라,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제자들에게 임제스님의 오도(悟道)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임제스님도 황벽스님의 고구정녕한 60통방을 맞았을 때, 그 자리에서 바로 살펴서 해결했어야 하는데, 나중에 대우스님의 지적을 받고서야 알아차리고 ‘황벽스님의 불법이 별 것이 아니구나’ 했으니 그나마 다행스럽다고 할 수 있겠다.

수불스님 | 금정총림 범어사 주지
[불교신문 2015년 4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