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벽이 임제를 60방 때린 이유는?

〈47〉10. 보령(報寧)의 정장로(靜長老)에게 드리는 글

본문: 그 후 임제조사를 제접할 때는 온통 그대로 작용하여 눈썹을 아끼지 않고 가업을 이을 자식을 얻어서 천하 사람들에게 음덕을 입혔습니다. 뜻 있는 사람이라면 응당 충분히 알고 노련하게 단련하여 격식과 종지를 초월해야 합니다.

해설:  <임제록>에 임제스님이 대오(大悟)한 기연이 자세히 나온다. 임제스님은 황벽스님에게 ‘불법의 대의’에 대해 세 번 물었는데, 그때마다 20방씩 얻어맞았다. 임제스님이 깨닫지 못하고 하직인사를 하니, 황벽스님은 고안 땅에서 법을 펴고 있는 대우스님에게 가라고 지시했다.

임제스님은 대우스님을 찾아가서 “저는 세 번이나 불법의 대의에 대해서 질문했다가 전후해서 60통방을 맞았습니다. 도대체 제가 뭘 잘못 했는지 모르겠습니다”하고 말하자 대우스님은 “황벽스님이 그렇게 친절하게 너를 위해 지도해주었는데, 이제 와서 잘못이 있느니 없느니 묻느냐!” 하고 경책해주었다.

임제스님은 이 말을 듣고 크게 깨닫고 “원래 황벽스님의 불법이 별 것 없구나!(元來黃檗佛法無多子)”라고 했다.

이에 대우스님은 “자네의 스승은 황벽스님이다”라고 하였다. 예부터 선문(禪門)에서는 진리와 동떨어진 일을 하면 눈썹이 빠진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런데 황벽스님은 눈썹을 아끼지 않고 임제스님을 확철대오케 하여, 임제 종풍이 천하게 두루 퍼지게 하였다.

학인이 간절한 마음으로 공부 문 두드리면

명안종사는 심안 여는 솜씨 베풀 수 있어야


본문: 그런 뒤에 주린 사람의 밥을 빼앗고 농사꾼의 소를 몰고 가는 솜씨로 옛 규범을 계승하여 방향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아무리 미세한 곳이라도 물방울이 스며들 수 없고 햇빛도 뚫지 못하며, 너그러이 한가한 때라도 모든 성인이 그를 찾아낼 수 없어야만 비로소 향상의 ‘씨풀(種草)’입니다.

해설: 학인이 간절한 마음으로 공부하려고 문을 두드리면, 명안종사는 심안을 열어줄 수 있는 솜씨를 베풀 수 있어야 한다. 노련한 한마디로 언하(言下)에 눈을 뜨게 해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믿음을 낸 수행자를 입실케 해서 향상일로의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방편지(方便智)를 갖춰야 하는 것이다.

불법에 대한 안목을 완벽하게 구축한 종사가 20년, 30년을 드러내지 않고 평범한 모습으로 살아간다면, 아무리 눈 밝은 공부인일지라도 그를 알아본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지만 인연 따라 법을 쓰게 되었다면 전광석화같이 움직이므로, 그 빼어난 솜씨를 누구도 엿보기가 어려운 것이다.

원오스님은 보령의 정장로에게 마음을 자재하게 쓸 수 있는 위신력을 스스로 지닐 정도가 되어야, 세간과 출세간을 아우를 수 있는 일대종사라고 말할 수 있다고 당부하고 있다.

본문: 오조법연 노스님이 항상 말하였습니다. “석가와 미륵도 오히려 그의 노예이다. 필경 그는 누구이겠느냐?” 여기에서 어지럽게 송곳 찌르는 것을 어찌 용납하겠습니까. 있는 줄을 알기만 하면 조금은 옳다 하겠습니다.

해설: 이치를 배워서 이해한 것을 공부로 삼아봤자, 그런 알음알이로는 흉중에 맺혀있는 답답함을 조금도 녹여내지 못한다. 참된 공부인이 이와 같은 질문을 당하면, 마치 은산철벽이 앞을 꽉 막는 것처럼 꼼짝달싹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게 돼야 비로소 활구의심이 들려져서, 무명(無明)의 벽을 돌파할 분이 생기는 것이다.

참고로 ‘석가와 미륵도 누구의 노예인데, 필경에 그는 누구인가?’라는 공안이 원말(元末) 몽산덕이의 <몽산법어>에 나오는데, 여기에 대해서 “배고프면 밥 먹고 때 되면 잠자는 그 놈 아닙니까?”라고 한다면, 이미 그것은 허망한 소리이다.

본문: 무릇 장부의 기개를 떨쳐 상류(上流)를 뛰어넘고자 한다면 반드시 손을 써서 바로 얽매이지 않게 해주며, 불러도 되돌아보질 않아야 하며 중생을 이롭게 하고 기연에 응대해 주어야 합당한 것이니, 말쑥하여 깨끗한 경지입니다. 풀 구덩이 속에서 구르거나 귀신의 굴속에서 도깨비와 희롱하지 마십시오.

해설: 공안 상에서 의심이 일어나 본격적으로 화두가 들리게 되면, 명안종사는 학인이 오직 활구(活句)만을 지어갈 수 있도록 지남이 되어야 한다. 그 어떤 분별심이 일어나더라도 오직 활구에만 집중케 함으로써, 화두의 힘으로 온갖 경계를 극복해나갈 수 있도록 안내를 해줘야 할 것이다.

수불스님 | 금정총림 범어사 주지
[불교신문 2015년 3월 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