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임자 쓸 때 법 외호를 기준 삼아야

〈40〉법왕(法王)의 충장로(沖長老)에게 드리는 글

본문: 그러나 사람을 쓸 때는 반드시 조심스럽게 선택하고 일을 맡겨 그르치지 않게 해야 합니다. 대위사(大?寺)의 진여(眞如)스님은 말하기를 “주지하는 데는 특별한 재주가 없다. 그저 사람을 잘 쓰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고 했으니, 깊이깊이 생각하십시오.

해설: 장로의 가장 중요한 직분은 법을 후대에까지 끊어지지 않게 전해주는 일이다. 따라서 사중을 다스릴 때에도 법에 중심을 두고 잘 호지하여야 한다. 법이 바로 서면, 사원(寺院) 지키는 일이나 사람이 모여드는 일은 저절로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주지가 소임자를 쓸 때, 그 기준은 법을 잘 외호할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하여 일을 맡겨야 한다. 원오극근 스님은 대위산 진여모철 스님의 가르침을 인용하여, ‘인사(人事)가 만사’라는 지극히 평범하면서도 당연한 진리를 편지로 ‘법왕의 충장로’에게 당부하고 있다.

모든 일에 법 중심 놓으면 아무 문제없어

원칙대로 하면 늦어보여도 대중들이 단합

본문: 속담에 재주를 부리는 것이 원칙대로 하는 것만 못하다고 하였습니다. 백장 대지(百丈大智) 스님이 규범을 세우시니 천고에도 그것을 부수지 못하였고, 요즈음도 조심스럽게 준수할 뿐입니다. 자기가 솔선하여 그 고아한 모범을 어기지 않으면, 여러 사람들이 따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해설: 선문에서는 일찍이 선원의 조직, 의식, 규율 및 교단제도 등이 집대성된 ‘백장청규(百丈淸規)’가 제정되어 전해오고 있다. 마조도일의 법을 이은 백장회해(749~814) 스님은 선종사상 처음으로 율원에서 독립한 선원을 창설하면서, 율전을 기본으로 선원의 가풍에 맞는 청규를 마련하였다.

백장스님은 누구나 동등하게 일을 하는 ‘보청법(普請法)’을 제정하여 솔선수범하였다. 여기서 유명한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一日不作 一日不食)’는 말이 나왔다. 11세기 송나라의 원오스님 때도 이를 잘 수지하고 있었다.

참고로 우리나라에서도 선원 수좌들의 생활규범이자 종합 수행지침서인 ‘선원청규’가 몇 년 전 새롭게 제정되어 시행되고 있다. 항상 장로가 먼저 솔선해서 법을 귀하게 여기고 모든 일에서 법을 중심으로 처리하게 되면 법이 곧 만사의 원칙이 된다. 이렇게 원칙대로 하면 이익도 적고 속도도 늦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법 앞에서 모든 사심이 녹아버리기 때문에 대중은 언제나 법 안에서 단합하게 된다.

본문: 말후구를 꺾어 거꾸러뜨리고 생사를 투철히 벗어난 납자라면 모름지기 모든 성인들이 가두어도 갇히지 않고, 번뇌의 뿌리(命根)까지 끊어버리는 하나(一著子)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해설: 말후구(末後句)를 타파하여 깨달음은 물론 그 깨달음마저도 초탈하여 생사대사를 확철하게 해결한 명안종사라면 염라노자는 물론 그 어떤 성인도 알아볼 수가 없고 붙잡을 수도 없다. 거친 번뇌는 물론 최후의 미세망념까지도 모조리 뿌리 뽑을 수 있는 일착자에 착안해야 종횡무진으로 무애자재 할 수 있기에, 그때까지는 정진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본문: 옛 분들에게는 잡고 놓고 죽이고 살리고 하는 큰 도가 있었으며, 큰 해탈을 얻어 언제나 그 지식(知識)을 활용하였습니다. 알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니 일 속에서 살펴보아 그 근기에 마땅하게 초탈 단행해야만 비로소 영원토록 힘을 얻을 것입니다.

해설: 근본에 철저하게 눈뜬 선지식이라면, 저절로 법수(法數)가 열려서 다양한 방편을 바르게 살펴 쓸 수 있는 힘이 생긴다. 학인을 가르칠 때 먼저 빠져나올 수 없는 장치를 시설하여 궁지에 몰아넣고, 그 결과 스스로 조사관을 타파해서 활발발하게 살아 숨 쉴 수 있도록 진정한 안목으로 이끄는 것이다.

자비로운 선지식이라면 학인을 제접할 때 마땅히 상대방의 근기를 살펴서 공부의 기회를 제공하여 그 결과 향상일로에 매진할 수 있도록 힘써주어야 한다. 공부의 책임을 학인에게 전가시키기 보다는 선지식이 짊어짐으로써 학인으로 하여금 실질적인 변화를 수용할 수 있도록 확실한 방편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수불스님 | 금정총림 범어사 주지
[불교신문 2015년 1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