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불성 일깨우는 법보시가 최고 불사

7. 법왕(法王)의 충장로(沖長老)에게 드리는 글

자재무애 갖춰야 세간 나가 법 펼쳐

총림 장로는 도를 설하는 것이 본분

본문: 옛사람을 자세히 살펴보면, 향상의 한 덩어리 인연을 확철대오하여 언상(言像)과 분별을 떠나 확고한 곳에 이르렀으니, 그들은 홀로 즐기며 편안히 쉬는 경계를 스스로 알았던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마조대사는 오히려 이처럼 격려하였으나, 정작으로는 원만자재한 변통으로 한 모서리만 지키며 한 곳에만 달라붙지 않기를 바랐으며, 반드시 고금을 포괄하여 원만하게 실천하고 섭화해서 둥글게 뒤섞여서 그 한계가 없기를 바란 것이었습니다.

해설: 고인들은 일대사인연을 철두철미하게 꿰뚫어 구경(究竟)에 이르기 전에는 멈추는 법이 없었다. 공부의 흔적이 남아있으면 그것이 도리어 성품을 방해해서 다시 답답해지기 때문에, 모든 관문을 돌파하고 확고한 자리에서 일 없는 사람이 되기까지는 지해(知解)와 업식(業識)을 남김없이 소멸시켰다. 그리하여 마침내 스스로 편히 쉬는 경계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리고 법을 펼 때에는 선교(禪敎)를 다 거머쥐고, 출가나 재가를 막론하고, 세간이나 출세간이나 모든 것을 망라해서 보다 많은 사람에게 부처님 법을 전할 수 있는 그런 자재무애한 능력을 갖추고서야 비로소 세상에 나갔던 것이다.

본문: 중생을 이롭게 할 때는 팔방으로 적을 받아들이고 초막 속을 헤쳐서 하나나 반개의 꼬리 그을린 큰 잉어를 찾아서 본분의 가풍을 담당할 법손을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니, 이 어찌 방편으로 불조의 은덕에 보답하고자 불사를 짓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해설: 선지식은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해 반드시 수단을 지녀야 한다. 비유하자면 용문폭포는 삼단으로 되어 있는데, 용이 되기를 원하는 잉어는 폭포에 이르러 비가 많이 내릴 때를 기다린다. 마침내 폭우가 내려 물살이 많아지면 간절한 마음으로 뛰어오르는데, 단번에 성공하기란 결코 쉽지 않으며 자꾸 떨어진다. 그러던 중에 몰람결에 번개를 맞고 순식간에 폭포 위로 올라가는데, 꼬리가 번개에 그을려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잉어가 용이 되면 자유자재로 날 수 있지만, 오르지 못하면 이마에 점 찍힌 이무기로 남게 된다. 선지식은 등용문에 오르려는 학인에게 가시달린 쇠채찍을 휘둘러 시절인연이 무르익게 해서 맷돌 맞듯 축착합착(築著?著)의 방편으로 큰 자비를 베푸는 것이다. 여러 가지 불사(佛事)가 많지만 돈오경절문의 본분 가풍을 이어나갈 법손을 기르고, 나아가 사람마다 간직하고 있는 불성을 일깨워주는 법보시야말로 최고의 불사가 아닐 수 없다.

본문: 요컨대 정신을 바짝 차리고 방편의 손을 드리워 척척 닿는 곳마다 모름지기 몸을 벗어날 기틀이 있어야 하며, 남의 눈을 멀게 해서는 안 되고, 인과를 미혹해서 그르치면 안 되니, 도리어 이익이 되지 못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선지식에게 가장 요긴한 길입니다.

해설: 명안종사가 되어 학인을 가르칠 때, 심안을 뜰 수 있는 장치를 철저하게 시설해 주어야 한다. 눈앞에 일구(一句)를 바로 제시하고 퇴로를 차단해서, 정신적인 벽에 즉각 부딪치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학인으로 하여금 안팎에서 사정없이 옥죄어 들어오는 금강권과 율극봉을 타파하고, 생사에서 훤출하게 벗어나게 해주는 것이 선지식에게 가장 요긴한 일이다.

본문: 황룡혜남(黃龍慧南)선사는 일찍이 말하기를, “단정하게 방장실에 거처하면서, 본분의 일로 사방에서 찾아오는 사람을 제접하는 것이 장로의 직분이다. 그 나머지 자잘한 일들은 소임 맡은 사람(知事)에게 맡기면 안 될 일이 없다”고 하였는데, 정말 그렇습니다.

해설: 임제종의 석상초원 선사에게 참학하여 그의 법을 잇고 황룡파의 개조가 된 황룡혜남(1002~1069)스님은 사제인 취암가진 스님에게 보낸 편지에서 또한 이렇게 말했다. “장로의 직책이란 도덕을 담는 그릇이다. 옛 성인이 총림을 세워 기강을 마련하고 이름과 자리를 정해 도덕 있는 납자를 선택하여 그를 장로로 임명함은 도(道)를 시행하고자 함이었지 구차하게 이름을 훔치게 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장로의 직분을 잘 지킨 자가 없었더라면 불조의 도와 덕이 어찌 남아있겠는가” 하였다. 참고로 양기방회(993~1048) 스님도 석상초원 선사의 법을 이은 법사형제이며 양기파의 개조이다.

수불스님 | 금정총림 범어사 주지
[불교신문 2014년 12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