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아라한 경지 머물거나 집착 안돼

7. 법왕(法王)의 충장로(沖長老)에게 드리는 글

언행일치, 외호 일도 맞아 떨어져야

불법 제대로 펼 조사안목 갖춘 셈

본문: 농사꾼의 소를 몰고 가고 주린 사람의 밥을 빼앗듯 하여 귀신도 알아차리지 못하니, 큰 해탈을 의지해야만 다시는 머리에 뿔 달린 이류(異類) 중생으로 태어나지 않습니다.

해설: 옛날부터 “밥을 구걸하는 거지의 밥통을 뺏을 수 있는 수단이 있어야, 본분의 솜씨를 지녔다고 할 만하다”는 말이 있다. 이 공부는 ‘크게 한 번 죽고 다시 살아나는 것(大死却活)’이어서, 목숨이 끊어지지 않고 마지막까지 붙들고 있는 명근(命根)까지 빼앗아서 숨을 끊어주어야, 비로소 절후소생(絶後蘇生)하는 소식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백척간두에서 진일보하여 대해탈의 안심입명처가 드러나야, 생사대사를 결판내고 윤회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본문: 함이 없는 데에 편안히 안주하면 참으로 5계10선(五戒十善)으로 티끌세계를 벗어난 아라한입니다. 달마스님도 “행동과 이해가 서로 일치한 사람이라야 조사라 부른다”고 하였습니다.

해설: 아라한의 경지에도 머물거나 집착해서도 안 되며, 더 큰 안목을 열 수 있도록 수행정진으로 향상일로(向上一路)해야 된다. 언행이 일치하고 나아가 주변에서 외호하는 모든 일들도 맞아떨어져야, 부처님의 법을 바르게 펼칠 수 있는 조사의 안목을 갖췄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본문: 두루 행각하여 제방을 초월함은 생사의 일이 큼을 근본으로 삼기 때문이며, 중생을 지도하고 이롭게 하여 큰 선지식이 되는 것은 일대사인연을 밝히는 데 있습니다.

해설: 조사는 대승불교의 기본이념인 ‘위로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 중생을 교화한다(上求菩提 下化衆生)’는 뜻에 누구보다 철저한 분이다. 상구보리를 위해 제방을 행각하며 끝내 생사대사를 타파하고, 그런 연후에야 세상에 나와 고해에 빠져 신음하는 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해 다양한 방편을 드리워 일대사인연을 밝히도록 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원오스님은 충장로에게 보내는 이 편지에서 이와 같은 큰 그릇이 되어야 한다고 격려하면서, 또한 이런 데 뜻을 두고 정진하고 있는지를 지적하며 격발시키고 있다.

본문: 이는 서로를 필요로 하고 서로에게 도움이 되어주는 이치로서, 예로부터 원래 그러하였습니다. 큰 법을 걸머질 만한 근기라야 만 길의 절벽에 서서 종사의 풀무와 쇠망치에 단련되고 완성되어 처음과 끝이 모두 진정하였습니다.

해설: 자리(自利)뿐만 아니라 이타(利他)까지 다 포함해서 완벽하게 구축된 모습을 수용하고 있어야 종사의 모습이다. 종사를 의지해 공부하는 수행자라면 늘 겸손하게 한발 물러서서 스스로를 낮추고 부끄러움을 알며 겸손해야지, 다른 사람들이 존중해주고 또 때에 당해서 한바탕 솜씨를 드러내 많은 사람을 위해서 이익을 줄 수 있는 기회가 올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 스스로 기회를 저버리게 되므로, 늘 말과 행동거지를 조심하며 안목을 점검하는 데에도 게으름 피지 말아야 한다. 대법을 걸머질 만한 근기라면 마땅히 만길 꼭대기 가파른 절벽 위에서 눈 밝은 종사의 풀무와 쇠망치에 단련되고 완성되어야, 비로소 참다운 변화를 수용할 수 있는 큰 눈을 뜨게 된다. 그런 연후에 모든 근기를 인연 따라 제접하고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본문: 나오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한번 나왔다 하면 반드시 대중을 놀라게 하는 것은 언제나 그랬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이미 깨달음이 엉성하지 않으니 법을 전수할 때도 경솔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해설: 공부가 된 선지식이라도 세상 바깥으로 나오지 않는다면, 자세를 낮추고 평범하게 세상을 살아간다. 그렇지만 인연 따라 법을 위해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면, 대중이 놀라지 않을 수 없을 정도의 솜씨를 보이지 않으면 안 된다. 본인이 완벽한 공부가 되었을 때에만 스승의 법을 이어받을 수 있으며, 수행자들을 가르칠 때에도 저절로 그 완벽함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지식은 공부인을 혹독하게 단련시킨 후에야 큰일을 감당할 만한 그릇으로 인정했고, 비로소 불조의 혜명을 잇는 심인(心印)을 부촉했던 것이다.

수불스님 | 금정총림 범어사 주지
[불교신문 2014년 12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