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청정 원융무애한 뒤에야 법 이을 그릇

7. 법왕(法王)의 충장로(沖長老)에게 드리는 글

의심 격발이 종사의 바른 가르침

법 펼칠 인연 확인하고 세상 보내

자만에 빠지지 않게 거듭 조심해야

본문: 이는 아마도 근기를 관찰하여 맞게 가르치고 백천 번을 단련하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해설: 눈 밝은 선지식은 제자를 가르칠 때, 근기를 살펴 방편을 베푸는 법이다. 또한 공부가 좀 되었더라도 쉽게 인정해주지 않고, 푹 익어서 스스로 우러나올 때까지 철저히 단련시켰다. 오조스님은 육조스님의 거친 바를 다듬어주기 위해, 짐짓 8개월간 방아를 찧게 하였다. 마침내 시절인연이 도래하자, “방아는 다 찧었느냐?” 하고 묻고, 육조스님이 “예, 방아는 벌써 다 찧었습니다마는, 아직 키질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따로 불러서 <금강경>을 설해주고 대오(大悟)케 하였다.

본문: 편견이나 집착, 의심 등이 생기자마자 모두 결단 내주어 철저히 놓아버리도록 하여, 마치 새는 가죽부대를 새지 않도록 하는 것처럼, 쳐도 부서지지 않는 곳으로 평온하게 옮겨 밟도록 하였습니다.

해설: 법은 정해진 바가 없고 본래 일이 없기 때문에, 학인이 조금이라도 법에 대한 알음알이나 법상(法相)을 내면 즉각 쳐부수어주어야 한다. 그리고 마침내 번뇌가 새지 않는 무루법(無漏法)에 계합하여, 온전히 쉬도록 가르쳤던 것이다.

본문: 그런 뒤에야 세상에 나와 중생들을 지도하게 하였으니, 이야말로 작은 인연이 아닙니다. 한 구석이라도 빈틈없게 하지 않으면 모양새가 바르지 못하니, 이리저리 들쑥날쑥 하면 선지식에게 비웃음을 당합니다. 이 때문에 옛 스님들은 8면으로 영롱한 구슬처럼 빈틈없고 올바르고자 힘썼을 뿐입니다.

해설: 스승은 제자를 다그쳐서 그 안목이 분명한지 확인했을 뿐만 아니라 법을 펼칠 수 있는 인연까지 살핀 뒤에야 세상에 내보냈고, 제자도 스스로 확철하여 누구라도 제접할 수 있는 자신이 있을 때라야 독립하였다. 계정혜(戒定慧) 삼학(三學)을 닦아 익히고 남의 존경을 받을 수 있는 입장에서 아주 분명한 삶을 살면서, 법을 설하는 데 있어서도 뚜렷하고 정확한 방편으로 남의 안목을 열어줄 수 있어야 비로소 불조의 혜명을 이어서 널리 이익을 베풀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혹여 자만에 빠져 눈 밝은 다른 사람의 비웃음을 받지 않도록 조심하고 조심해야 한다.

본문: 안으로는 자기 행실이 얼음장이나 옥처럼 청결하고, 밖으로는 방편을 원만하게 통달하여 뭇 유정들을 보살펴서 마치 방죽의 못물처럼 서로 잘 돌이켜 베풀도록 하였습니다.

해설: 선지식의 지남에 힘입어 안목을 열고난 뒤에도 곁에서 떠나지 않고 정진하면서, ‘법 쓰는 법’이나 보현행을 원만히 익혀 안팎으로 청정하고 원융무애해진 다음에야 종승(宗乘)을 이어받을 만한 그릇이라 할 것이다.

본문: 그러다가 참문할 때에는 본분의 일로써 낱낱이 묻고 점검하여 그가 알아차리면 그때 가서 수단을 써서 탁마해 주었으니, 비유하면 물 한 그릇을 조금도 흘리지 않게 다른 그릇에 쏟아 붓는 것과도 같다 하겠습니다.

해설: 이제 법을 펴는 입장이 되어 공부인이 법을 물어오거나 점검받으러 오면, 언제나 일구(一句)의 본분사(本分事)로써 분명하게 일러주어서 상대가 언하에 뚫리든지 아니면 설상가상(雪上加霜) 즉 눈 내린 뒤에 서리가 더 내리듯이 의심을 더욱 격발시켜주는 것이 명안종사의 바른 가르침이다.

이렇게 남을 지도할 때 이구(二句), 삼구(三句)에 떨어지지 않게 했으며, 상대로 하여금 유루(有漏)의 알음알이를 일으키지 않도록 했다. 그리고 일구에서 돈발된 의심이 뭉쳐 의정이 되고, 의정은 더욱 익어 한 덩어리 의단이 되어 타파될 때, 비로소 이심전심할 수 있는 ‘법 쓰는 법’을 눈 뜨는 것이다. 역대 조사들이 이어온 부처님 법은 자고로 한 방울의 물도 흘리지 않고 이 그릇에서 저 그릇으로 전해져온 것이다. 한 마음은 언제나 불이법(不二法)이어서 조금도 틈이 없다. 이 도리에 확철하게 계합하여 본분사를 밝히는 것이 생사일대사를 해결하는 길인 것이다.

수불스님 | 금정총림 범어사 주지
[불교신문 2014년 12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