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깨닫고 난 뒤에도 수십년 선지식과 함께

충 장로에게 드리는 글

사사로운 감정 이끌려 제자 법부촉 안돼

뛰어난 스승 제자 있어 법등 면면히 계승

본문: 대기(大機)와 대용(大用)이 천차만별한 갈등을 하나의 근원으로 돌아가게 한 것이니, 사람에게 끈끈한 것을 떼어주고 결박을 풀어줄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말을 따라 알음알이를 내는 이가 있다면 곧 본분수단(本分草料)을 제시하니, ‘노새 젖 열 섬에 사자 젖 한 방울을 타면 모두가 흩어져버리는 것’과도 같았다.

해설: 1700 공안으로 전승되어 내려오는 다양한 깨달음의 기연들은 하나같이 학인으로 하여금 본분사에 바로 계합하도록 해서, 분별 갈등을 단칼에 끊어주는 대자비의 대기대용이었던 것이다. 선지식의 한 마디 지남(指南)에 힘입어 가슴에 걸려있던 근본무명의 업식을 일거에 소탕하여, 본래 여여(如如)하고 무사(無事)한 것이 다른 곳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확철대오 하면, 모든 결박으로부터 풀려나 대자유인이 되는 것이다. 선지식이 시설한 장치에 제대로 걸려든 인연 있는 학인이라면, 눈앞의 정신적인 벽을 뚫으려고 갖은 힘을 다하다가 마침내 은산철벽이 무너지는 것을 보게 된다. 이때 학인은 그동안 경계마다 알음알이를 일삼던 어리석은 노새에서 우렁찬 사자후로 들여우들을 물리치는 사자로 전환된다. 노새에게는 일거수일투족에서 분별망상이 치성하였지만, 사자에게는 모든 번뇌가 즉시 보리(菩提)로 화하게 된다.

본문: 요컨대 서 있는 그 자리에서 전수해 받아 면면히 계속 멀리 잇고자 할진댄, 부디 인정을 따르지 말고 쉽다고 여기지도 말지니, 이것이 바로 단적인 뜻이니라. “마지막 한마디에 비로소 견고한 관문에 도달한다”고 하였는데, 참으로 진실한 말씀이다. 생사를 투철히 벗어나 정인(正印)을 지님이 모두가 이러한 시절이니, 향상의 문빗장을 밟은 자라야만 바로 알 수 있다.

해설: 서 있는 그 자리가 바로 당처임을 분명히 밝힌 후, 제자를 만나 법을 부촉할 때에 사사로운 인정에 끌려 경솔하게 법을 전해주어선 안 된다. 협산(夾山)의 법을 이은 낙보원안(樂普元安, 834~898) 선사는 대중에게 간곡히 이르기를, “마지막 한 마디에 비로소 견고한 관문에 도달한다. 요긴한 길목을 지키고 앉았노라면 범부도 성인도 통하지 못한다”고 하였다. 돈오를 해야만 생사일대사 인연을 확실히 밝히는 바른 도장을 지니게 된다. 우리는 돈오의 인연을 귀하게 여겨서, 부처님의 법이 지구촌에서 면면히 이어가도록 호법을 잘 해야 할 것이다.


7. 법왕(法王)의 충장로(沖長老)에게 드리는 글

본문: 옛 부터 내려온 종승(宗乘)에서는 높이 초월하여 곧바로 증득하였으니, 스승과 제자가 계합하여 깨닫는 일에 결코 소홀하지 않았습니다.

해설: 달마대사가 일심법을 전하고, 육조 스님께서 돈오법문으로 대성한 이후로, 선(禪)은 영가현각이 <증도가(證道歌)>에서 노래한 것처럼 ‘한 번 뛰어 곧바로 여래의 지위에 든다(一超直入如來地)’는 것을 종지로 삼았다. 즉 직지인심(直指人心) 하면, 이심전심으로 계합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 하게 되는 것이다. 일체 중생이 불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본래부처였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부처의 경지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본문: 때문에 이조(二祖) 스님은 눈에 서서 팔을 끊었으며, 육조 스님은 황매산(黃梅山)에서 돌을 지고 디딜방아를 찧었던 것입니다. 그 나머지 분들도 이삼십 년씩을 부지런히 힘썼으니, 어찌 쉽게 인가하였겠습니까?

해설: 이조 혜가스님은 소림에서 면벽하고 있던 달마대사를 찾아가, 밤새 눈을 맞으며 기다린 끝에 스스로 팔을 잘라 견고한 신심을 드러내 보이고 안심법문을 들을 수 있었다. 육조 스님은 황매산으로 오조 홍인대사를 찾아가 꾸지람을 듣고, 몸이 가벼워 방아무게를 누를 수 없어서 등에 돌을 지고 8개월간이나 방아를 찧으면서 정진한 끝에 오조 스님의 <금강경> 법문을 듣고 크게 깨달을 수 있었다. 눈 밝은 스승을 의지한 제자가 깨닫고 난 뒤에도 20년, 30년을 선지식과 함께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고귀한 법등이 중간에 끊어지지 않고 오늘날까지 이어져 올 수 있었던 것이다.

수불스님 | 금정총림 범어사 주지
[불교신문 2014년 11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