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분별망상 힘 못쓰도록 만드는 활구의심(活句疑心)

5. 융지장(隆知藏)에게 주는 글

안으로는 법인 전해 깨달은 마음 계합

밖으로는 가사를 부촉해 ‘종지’를 확정

달마스님이 6종(六宗)을 외도(外道)로 규정짓자 천하가 태평하여 ‘나는 하늘이고 너는 개다’로 낙착됐으니, 이는 헤아리고 따져서는 알 수 없는, 민첩한 신기(神機)이다.

남천축국 향지왕의 셋째 아들이었던 보리달마가 제27조 반야다라 조사의 법을 잇고 본국에서 법을 펼 때, 불대승다 법사의 가르침이 여섯 종파로 갈라져서 복잡하였다. 달마대사가 그들을 찾아가서 하나하나 삿된 소견을 설복시켜 본심을 깨닫게 해주자, 여섯 무리가 모두 불법에 귀의하였다.

마침내 양(梁)나라에 갔다가 위(魏)나라로 가서는 또다시 부처님 교설밖에 따로 행하고 오직 마음(心印)만을 전하는 도리를 말씀으로 드러내보였다.

마침내 스승이 예언한대로 중국과의 인연이 익어서 교화를 행할 때가 다가오자, 달마대사는 인도를 떠나 바다를 통해 양나라에 도착했다. 양무제는 수도 금릉으로 대사를 모시고 와서, <벽암록> 제1칙에 나오는 유명한 문답을 주고받았다.

양무제는 ‘불심천자(佛心天子)’라 불릴 정도로 신심 깊은 불자였으나, 현세적인 이익에 관심이 많았다. 그가 “무엇이 불교의 가장 성스러운 진리입니까?” 하고 물었을 때, 달마대사가 “텅 비어 성스러울 것이 없습니다.(廓然無聖)” 하고 대답했다. 그러나 무제가 이 말을 알아듣지 못하자, 대사는 양자강을 건너 위나라로 갔다.

대사는 위나라 수도 개봉 근처의 숭산 소림굴에서, 9년간 면벽하며 때를 기다렸다. 어느 날 신광(神光)이 찾아와서 칼로 왼팔을 끊어 바치고 법을 물었다. 달마대사는 ‘안심법문(安心法門)’을 통해 일심법(一心法)을 전하며, 이름을 혜가(慧可)로 바꾸어주었다.

6대에 걸쳐 가사를 전하며 지적한 도리가 분명하였고, 조계대감(曹谿大鑑) 스님에 이르러선 언설에도 통하고 종지에도 통함을 자세하게 드러내보였다.

선종 초조 달마대사가 2조 혜가에게 지적한 도리를 <전등록>은 이렇게 전한다. “여래께서 정법안장을 가섭 존자에게 전했는데, 차례차례 부촉하여 나에게까지 이르렀다. 내가 이제 그대에게 부촉하니, 그대는 잘 수호하여 지켜야 한다. 그리고 그대에게 가사를 전해서 법의 신표로 삼는다. 안으로는 법인(法印)을 전해서 깨달은 마음과 계합하고, 밖으로는 가사를 부촉하여 종지를 확정한다.”

달마의 일심법을 이어받은 육조혜능대사는 모든 사람이 본래 지닌 자성(自性)을 직시하여 그 자리에서 몰록 깨치는 돈오견성(頓悟見性)을 천명하여 돈교법문을 대성하였다.

오래도록 이렇게 지내오자 바른 안목을 갖추어 크게 해탈한 종장들이 격식을 변동하고 막힌 길을 틔웠다. 사람들로 하여금 이름과 모습에 걸리거나 이론과 말에 떨어지지 않게 하여, 우뚝하게 살아있어서 씻은 듯 자유로운 묘한 기틀을 내 놓았다.

육조스님 이후로 마조, 백장, 황벽, 임제 등 기라성 같은 조사들이 출현하여, 선불교는 5가7종으로 뻗어나가 천하를 풍미하였다. 역대 명안종사들은 학인들을 제접할 때 언제나 마음자리를 바로 드러내 보여주었지, 언어나 이론의 삼구(三句)에는 의지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드디어는 방(棒)을 휘두르고 할(喝)을 내지르며, 말로써 말을 무찌르고 기틀로 기틀을 빼앗으며, 독으로 독을 쳐부수고 작용으로 작용을 타파함을 보게 되었다.

덕산선감 선사는 학인들을 지도할 때 방망이로 법을 드러내 보였고, 임제의현 선사는 고함을 질렀다. 그래서 ‘덕산방(德山棒) 임제할(臨濟喝)’이라는 말이 있게 되었다.

중생의 무명업식(無明業識)이라는 독을 어떻게 타파할 수 있는가? 분별망상의 독이 전혀 힘을 쓰지 못하도록 만드는 ‘독으로써 독을 치는 것’은 활구의심(活句疑心)만한 것이 없다는 것이 간화종장들의 위대한 발견이다. 활구참구로 정식(情識)이 녹아 안심입명처가 몰록 드러나서 내외명철(內外明徹)하는 경절문(徑截門), 즉 간화선은 대한불교조계종의 공식 수행법이다.

수불스님 | 금정총림 범어사 주지
[불교신문 2014년 10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