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부처님의 거울 안팎으로 티와 가림이 없어”

5. 융지장(隆知藏)에게 주는 글

달마 ‘직지인심 견성성불’ 종지 천명

이후 역대 조사 근본을 바로 ‘지적’

원오극근 선사가 제자인 호구소융(虎丘紹隆, 1077~ 1136)스님에게 보낸 편지다. 소주 호구산에서 주석한 소융스님은 안휘성 출신으로, 원오극근 선사를 찾아가 깨달았고 그 문하에서 20년을 시봉하고 법을 이었다.

호구소융 스님은 선종 초조 보리달마스님 이하 제22대인데, 그 아래에서 7대를 더 내려와 석옥청공(石屋淸珙, ~1352)이 나오고, 석옥청공의 법을 고려의 태고보우(1325~1382) 선사가 받아왔다.

이 선법은 조선조 서산대사 등을 거쳐 근대의 경허와 용성 선사에게 이어졌으니, 한국 선불교의 맥은 가히 임제종 양기파 호구소융의 후손이라고 할 것이다. 간화선을 창시한 대혜종고는 호구소융과 법사형제간이다.

조사가 나오신 뒤로, 바로 가리킴만을 오로지 전하는데 힘썼을 뿐, 사람을 물에 띄우고 진창으로 이끄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으니, 표방과 격식을 늘어놓는다면 바보짓이다. 석가 부처님이 300여 차례나 법회를 하시고 근기에 따라 교화를 베풀고 세상에 나와 모범을 보이신 것은 아마도 노파심에서 나온 번거로운 말씀들(周遮)이라고 하겠다.

달마대사가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의 종지를 천명한 이래, 역대 조사들은 근본을 바로 지적했다. 구구절절 문자로 오염시키거나 표방과 격식을 늘어놓지 않았다.

부처님께서 중생의 근기 따라 베푸신 팔만사천 법문은 자상한 방편설인 반면, 선사들의 수단은 근본을 바로 직지(直指)하여 견성(見性)의 기연(機緣)을 베푸는데 주안점을 두었다.

그러므로 끝에 가서는 요점만을 가지고 최상근기를 제접하셨던 것이다. 가섭으로부터 28대 조사까지 기연에 따른 관문(機關)을 보여준 일은 적고 이치를 설명한 적이 많았으나, 법을 부촉해 줄 때 가서는 언제나 직접 대면하여 받아 지니지 않음이 없었다.

서천의 28분의 조사께서 비록 중생을 교화할 때에 언어를 의지해서 설하신 바가 없지는 않지만, 막상 법을 부촉할 때는 이심전심으로 밀밀(密密)히 상전(相傳)하였다.

예컨대 찰간대를 거꾸러뜨리고, 사발물에 바늘을 던지며 원상(圓相)을 보이고, 승리의 붉은 깃발을 잡으며, 밝은 거울을 잡고, 무쇠말뚝처럼 전법게(傳法偈)를 설하였다.

초조인 가섭존자에게 아난이 “부처님으로부터 금란가사 외에 달리 전해 받으신 법이 있습니까?” 하고 묻자, 가섭존자는 “아난아!” 하고 불렀다. 여기서 못 알아듣자 “문 앞의 찰간을 꺾어버려라”라고 하는 순간, 아난존자는 찰나 간에 그 자리에서 깨닫고 제2대 조사가 되었다.

남천축국 가나제바가 제14대 용수조사를 뵈러 갔을 때, 조사는 그가 지혜로운 사람인 것을 알고서 시자를 시켜 발우에 물을 가득 떠다가 법좌 앞에 놓게 하였다. 가나제바가 이를 보자 즉시 바늘을 뽑아서 물에 던지니, 용수조사께서 기뻐하였다.

용수조사가 어느 날 대중에게 법을 설하면서 보름달 모양의 원상을 나타내니, 조사의 소리만 들릴 뿐 형체가 보이지 않았다. 가나제바는 대중에게 “지금의 이 상서로움은 스승께서 불성을 나타내시어, 법을 설해도 소리와 빛깔이 아님을 보이신 것이다” 하고 말하니, 이로써 법을 부촉 받고 제15대 조사가 되었다.

가나제바조사가 파련불성에 이르렀을 때 외도들이 불법을 방해하려는 것을 알고, 깃발을 들고 그 무리 속으로 들어가 걸림 없는 변재(辯才)로써 설복시키자 모두가 귀의하였다. 그 중에서 제16대 라후라다조사가 나왔다.

제17대 승가난제조사가 상서로운 구름이 깃든 초막 앞에 이르자, 한 동자가 둥근 거울을 갖고 나왔다. 조사가 그것이 무엇인지 묻자, 동자는 “모든 부처님의 크고 밝은 거울은 안팎으로 티와 가림이 없다는 것을 표시합니다” 하였다. 조사는 동자의 비범함을 보고는 ‘가야사다’라고 이름을 지어주니, 동자는 후에 제18대 조사가 되었다.

수불스님 | 금정총림 범어사 주지
[불교신문 2014년 10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