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마음 그대로 부처, 다른 법은 없다”

‘흔적없이 나는 새’ / 수불 스님 선해 / 김영사

없었을 것이다.

최근 부산 범어사 주지 수불 스님이 ‘흔적 없이 나는 새’를 펴냈다. 당대 최고의 지성인 배휴(裵休, 797~870)와 황벽 스님이 수행에 대해 묻고 답한 내용을 정리한 전심법요(傳心法要)를 현대인들의 근기에 맞게 풀어썼다. ‘전심법요’는 중국 당나라 말기 강서성 종릉의 관찰사로 부임한 배휴가 황벽 스님의 가르침을 꼼꼼히 기록한 것으로 ‘황벽산 단제선사 전심법요’와 ‘완릉록’을 함께 엮은 것이다. 재가지성인이 묻고 당대 최고의 스님이 선의 요체를 일러주는 내용도 이채롭지만 중국 조사선의 핵심대의를 잘 표현하고 있을 뿐 아니라, 간명하고도 쉬운 언어로 선의 이치를 드러낸 드물게 친절한 선어록이라는 점도 눈길을 끈다. 대개의 선사들은 분별망상에 가득찬 제자들의 질문에 친절하게 답하기보다는 할이나 방으로 바로 무찔러버린다. 그러나 ‘전심법요’속 황벽 스님은 어리석은 질문이라도 절대 내치는 법이 없다. 진리를 묻는 임제 스님을 후려치던 특유의 격렬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근기를 살펴 방편에 따라 법을 설하는 부처님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어찌됐든 선불교의 내용을 두려움이 없이 최대한 논리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선어록과 대비되는 가치를 지닌다. 범어사 주지이면서 안국선원과 동국대 국제선센터의 선원장을 겸하고 있는 수불 스님은 평생을 참선 지도에 매진해 온 스님이다. 특히 선의 대중화를 위한 열정은 교계에 익히 잘 알려져 있다.

“선 공부는 우리 모두의 당면한 과제이지만 보통의 사람은 일상의 번잡함에 쫓겨 쳇바퀴 돌듯 어둠 속을 방황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선 일반인들에게 선이 무엇인지 알리고, 선 공부의 필요성을 스스로 느낄 수 있도록 제공하고 싶었습니다.”

수불 스님이 ‘전심법요’에 주목한 이유는 수행이 깊지 못한 재가자까지도 모두 포용한 선어록이라는 점 때문이다. 그럼에도 언어와 생각이 다른 1200년 전 선어록을 오늘 날의 근기와 언어에 맞게 풀어쓰는 일은 쉬운 작업만은 아니었다. 책은 ‘전심법요’와 ‘완릉록’, ‘황벽 스님 행록’을 합쳐 44개의 꼭지로 구성돼 있다. 뜻에 따라 원문을 나누고 번역한 뒤 해설을 더했기 때문에 굳이 순서대로 읽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 강점이다. 그래서 수불 스님의 친절한 설명에 따라 책의 행간을 여행하다보면 “이 한마음이 바로 부처일 뿐, 부처와 중생이 새삼 다를 바 없다”는 황벽 스님의 가르침과 몰록 마주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교는 스스로 깨달아야 하는 자력종교다. 아무리 친절한 설명을 들어도 스스로 주인으로 서지 않으면 안 된다.

‘번뇌를 멀리 벗어나는 일이 예삿일이 아니니(塵勞逈脫事非常)/ 고삐를 단단히 잡고 한바탕 공부할지어다(緊把繩頭做一場)/ 추위가 한 번 뼈 속 깊이 사무치지 않으면(不是一番寒徹骨)/ 어찌 코를 찌르는 매화 향을 맡을 수 있으리오(爭得梅花撲鼻香)’

황벽 스님의 게송이다. 게송을 음미하며 책을 읽는다면 미혹한 중생을 일깨우기 위한 황벽 스님의 노파심이 더욱 사무치도록 다가올 것이다. 2만5000원

김형규 기자  |  kimh@beopbo.com
[법보신문 2014년 10월 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