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게으름 속에서는 한 법도 나오지 않는다
3. 원수좌(圓首座)에게 주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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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겸비하고 큰 경지서 마음 쓰면
남도 두루 편안케하고 걸림없게 돼
본문: 고인들은 보리를 지고 수레를 밀기도 했으며, 채소밭을 건사하며 밥을 짓기도 했었다. 또는 밭을 개간하기도 하고, 차를 달여 베풀기도 하며 흙을 나르고 연자방아를 돌리기도 했다. 이는 모두 높은 뜻으로 세속을 끊고서, 쉬지 않고 스스로 애쓰며 도를 성취하고자 한 자만이 할 수 있었던 일이었으니, 이를 두고 “게으름 속에서는 한 법도 나오지 않는다”고 한 것이다.
해설: 도인들이 수행할 때, 그 누구도 세상의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부처님께서 왕궁을 버리고 나와 6년 고행을 하셨고, 가섭도 부잣집 아들로 태어났지만 출가해서 부처님 법을 이었으며, 아난존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옛 도인들은 각자의 업에 따라 수행과정은 달랐지만, 농사를 지으면서도 한결같이 도를 성취할 때까지 쉬지 않고 역경을 이겨내며 부지런히 정진을 멈추지 않았던 것이다.
본문: 마침내 연원(淵源)을 통달하고 나서 보니 그것은 너무나 어렵고도 험하여 아무도 달성하지 못할 것이었는데도 그들은 해냈다. 그런데 세상에 나와 상대하며 허리 굽히거나 펴는 등의 일은 못하겠다고 하니, 이것은 하지 않는 것이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당초에는 구름 위에 머물렀으나, 스스로 경책하여 방편문을 넓히는 것도 좋지 않겠느냐.
해설: 옛 도인들이 간난을 이기고 도를 성취하고서 세상에 나와 변화를 일으킨 덕분에, 그 법이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이어져 내려왔으니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부처님께서 자기희생을 하면서 중생구제 하려는 뜻을 내셨기 때문에, 불제자인 우리들도 최선을 다해 봉공(奉公)하는 가운데 모든 변화를 수용해야 한다. 각고의 정진 끝에 마침내 법에 계합하여 모든 것을 내려놓았을 때, 한없이 편안해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게 본래청정한 마음자리를 체득했으면, 주변의 인연 있는 중생들과 동사섭하면서 마침내 본래청정한 자리에서 함께 안심입명 할 수 있는 방편을 드리울 수 있어야 될 것이다.
원오스님은 ‘상구보리(上求菩提)’의 도업을 성취하여 적멸의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원(圓)수좌를 경책하며, 이제는 더 이상 게으름 피우지 말고 불보살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하화중생(下化衆生)’의 길에 나가라고 간곡히 당부하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불법을 소중히 하고, 중생을 긍휼히 여기며, 제자를 사랑하는 원오극근스님의 자상함을 엿볼 수 있다.
쭦 4. 유서기(裕書記)에게 주는 글
본문: 실다운 경지를 밟고 편안한 곳에 도달하고 나면, 그 가운데에는 헛되이 버릴 공부가 없고 끊임없어서 실낱만큼도 샐 틈이 없다. 담담하고 고요히 엉켜서 불조도 알 수 없고 마군 외도도 부여잡을 수 없으니, 이는 스스로 머물 곳 없는 대해탈문에 머문 것이다.
해설: 이 편지는 원오스님이 항주 영은사(靈隱寺)에 주석했던 불지단유(佛智端裕) 스님에게 보낸 것이다. 성품에 계합하면, 늘 그 속의 일이어서 하나도 더하거나 버릴 것이 없다. 부처가 가진 성품이나, 보살이 가진 성품이나, 성문, 연각, 벽지불이 가진 성품이나, 중생이 가진 성품이나, 꿈틀거리는 벌레가 가지고 있는 성품이 본래 다른 바가 없기 때문이다. 성품은 둘이 있을 수 없는데, 중생은 허망한 기운에 끄달려 무명 속에 뛰어들어 인연 따라 업을 쌓아서, 천차만별로 모양을 달리 하면서 생사고해 속을 헤매고 있는 것이다. ‘대해탈문’이라는 것은 어디에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안목을 연 사람에게는 텅 빈 허공과 같이 일체처 일체시에 몽땅 드러나 있어서 어떤 흔적도 없으며, 과거 현재 미래에 관계없이 훤칠하다.
그렇지만 이런 설파조차도 삼구(三句)에 불과하기 때문에, 스스로 성품을 분명히 계합하여 내외명철 해야 할 것이다. 그런 연후에 이사(理事)를 겸비하고 일체를 모두 다스릴 수 있는 큰 경지에 나아가서 마음을 쓴다면, 나와 남을 두루 편안케 하고 어디에도 걸림이 없게 될 것이다.
수불스님 | 금정총림 범어사 주지
[불교신문 2014년 9월 15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