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선지식 출연시키는 것이 진정한 불사

3. 원수좌(圓首座)에게 주는 글

‘불법’ 주인되는 것이 임제종 근본정신

양기방회를 거쳐 고려 태고보우로 이어져

본문: 자명(慈明)스님이 옛날에 분양(汾陽)스님을 하직하자 분양스님은 이렇게 축원하였다.

“절을 짓고 보수하는 일은 자연히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불법의 주인이 되도록 하여라.”

자명스님은 그로부터 다섯 번이나 큰 사찰에 머물게 되었으나 서까래 하나 건드리지 않고 임제스님의 정통종지만을 드날렸다.

해설: 분양선소(947~1024) 스님은 임제선사의 5대 손으로, 출가 후 마음을 밝히는데 뜻을 두고 70여 분의 선지식을 두루 참문하다가 마침내 수산성념(926~993) 스님을 만나 물었다.

“마조스님이 상당하자 백장스님이 자리를 말았는데, 그 뜻이 무엇입니까?” “곤룡포 소맷자락을 떨쳐 보이니 온몸이 드러나는구나.”

“스님께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코끼리 가는 곳에 여우 자취가 끊어진다.”

분양스님은 이 말에 크게 깨닫고 절을 올렸다. 후에 장사 태수 장공이 산서성 태자원으로 모셨는데, 30년간 산문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분양스님은 <전등록>에서 오도기연(悟道機緣) 100칙을 뽑아 <송고백칙(頌古百則)>을 편찬하였는데, 이것이 공안(公案) 해석에 대한 통일된 형식과 답안을 제시한 송대 문자선(文字禪)의 효시를 이룬다.

어느 해 결제 중에 분양스님은 꿈에 부모님이 나타나 마을 식으로 제사를 지내달라고 부탁했다고 대중들에게 말하고, 원주를 불러 술과 고기를 사오게 해서 법당에서 제사를 지냈다. 200명이 넘던 대중은 이에 실망하여 모두 떠나고, 믿음이 흔들리지 않은 7명만 남게 되었다. 그해 결제에서, 뒷바라지를 한 1명을 제외한 나머지 6명이 모두 깨달음에 들었다. 그 중에 제일 공부 잘한 분이 석상초원 자명(987~1040)스님이다. 절 짓고 보수하는 데 신경 쓰지 않고, 불법의 주인이 되는 것이야말로 임제종의 근본정신이라고 하겠다.


본문: 드디어 양기(楊岐)·황룡(黃龍)·취암(翠巖) 세 큰스님을 얻어 자손이 세상에 두루 퍼지니, 결과적으로 당부를 저버리지 않은 셈이다. 옛사람은 짐을 걸머질 만한 사람을 선택하는데 이처럼 신중했었다. 절집을 화려하게 장엄하는 일은 불법에 있어서는 대단할 것이 없다 하겠다.

해설: 자명스님은 스승의 뜻을 받들어 절 짓는 불사보다는 인물을 기르는 깨달음의 불사에 정성을 다하였는데, 과연 그 아래에서 양기방회(992~1049), 황룡혜남(1002~1069), 취암가진(?~1064) 등의 걸출한 선사가 나왔다.

양기스님은 중국 선가(禪家) 7종의 하나인 임제종 양기파의 개조로서, 그 법이 백운수단, 오조법연, 원오극근, 호구소융 등을 통해 마침내 고려의 태고보우까지 이어져 우리나라에도 전해졌다. 황룡스님은 또한 선가 7종의 하나인 임제종 황룡파의 개조다.

절 짓는 불사도 중요하지만, 천하에 깨달음을 펼 수 있는 선지식이 출현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불사라고 하겠다. 한국의 선불교 전통은 이렇게 불법의 본분에 철저한 임제종의 정통종지를 이어받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본문: 부처님 도는 아득하고 넓어 오랫동안 부지런히 힘써야만 성취할 수 있다. 조사의 문하에선 팔 자르고 눈 속에 서 있기도 했으며, 허리에 돌을 지고 방아를 찧기도 했다.

해설: 선종의 초조 보리달마(?~536) 스님의 법을 이어받은 혜가(487~593)스님은 40세에 숭산 소림사로 찾아가 가르침을 청했으나, 달마대사는 벽만 바라볼 뿐이었다. 밤사이 큰 눈이 왔지만, 혜가는 움직이지 않고 서있었다. 마침내 칼을 뽑아 왼팔을 끊어 바치자, 달마스님은 ‘안심법문’을 통해 혜가를 깨닫게 해주었다.

육조혜능(638~713) 스님이 오조홍인(602~675) 스님을 찾아갔을 때, 오조스님은 혜능이 법기임을 한눈에 알아보았지만 그를 대중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방앗간에 보내어 방아를 찧게 하였다. 육조스님은 몸이 왜소했던지, 허리에 돌을 둘러매고 방아를 찧었다고 전한다.

수불스님 | 금정총림 범어사 주지
[불교신문 2014년 9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