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도 이제 디자인시대 열렸다

사찰특징 따라 염주, 로고, 다포, 좌복까지 제작
“사찰 정체성 명확하게 홍보…불교문화 새 국면”

2012년 5월 금정총림 범어사 주지 수불스님의 진산식날 독특한 디자인의 염주가 내빈선물로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색 천연석에 금빛물고기가 팬던트로 달려 있는 형상인데 기분좋은 착용감과 세련된 디자인에 주목을 받았다.

사찰에서나 불자들에게 흔하디 흔한 게 염주지만 이토록 아름답고 실용적인 염주는 그동안 없었다. 진산식은 끝났지만 범어사에는 한동안 이 염주를 찾는 이들의 문의가 쇄도했다. 초창기 제작한 5000개에서 배를 더해 1만개를 추가로 만들어야 했다.

‘염주업계’를 발칵 뒤집어놓은 이는 2010년 청년사회적기업에서 활약한 한 젊은여성이었다. 김민지(30) (주)마인드디자인 대표다. 2011년 개인사업자로 창업해서 ‘나를 보는 쥬얼리’라는 테마로 새로운 개념의 불교기업문화를 일구고 있는 장본인이다. 김 대표의 마인드는 단 하나. “전통문화를 더 많은 이들이 쉽고 재밌게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기업.”

불교라면 ‘고루하다’ ‘무섭다’고 말하는 젊은층들을 겨냥해서 김 대표는 작지만 의미있는 움직임을 시작했다. 범어사의 창건설화가 얽힌 금빛물고기를 팬던트로 넣은 ‘범어사만의 염주’를 만들었듯 다른 사찰에서도 해당사찰만의 상징과 역사를 문화로 녹여냈다.

사찰 상징물 펜던트로 제작

염주와 악세서리 등에 적용

사찰 심볼ㆍ색상 개발 비롯해

로고와 특산물 패키지도 가능

‘디자인 포교’ 중요성 인식해야

마인드디자인, 붓다아티스트…

불교문화 대중화 원력 삼아

수행과 기획 개발 업체 늘고

친근감있는 디자인으로 바꿔

불자디자이너 영입 활성화돼야

서울 길상사에는 10여년 전 독실한 천주교신자인 최종태 화백이 조각한 마리아상과 흡사한 관음보살상이 유명한데 종교적 화합을 테마로 한 팬던트를 제작해서 염주로 만들었다.

역사적 비운이 어려있는 남한산성 장경사는 금강역사를, 수덕사는 선찰(禪刹)을 상징하는 글자를 새겨 개성있는 염주를 선보여 호응을 얻었다. 마인드디자인에서는 이같은 방식으로 전국 50여 사찰을 대상으로 염주디자인 작업을 성공리에 회향했다.

‘전통문화의 대중화’라는 원력을 세운 김 대표는 올해부터 사찰로고를 기반으로 한 ‘108 사찰 디자인 어플리케이션’을 본격 준비중이다. 사찰의 심볼과 색상을 개발하는 것은 물론 로고를 만들고 사찰특징을 담은 상품을 개발하는 작업이다. 리플렛이나 포스터 간판 등 다양한 디자인작업도 뒤따르고 사찰특산물 패키지도 구상중이다.

김민지 대표는 “사찰마다 스토리와 역사, 유물이 다른데,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디자인”이라며 “스님들은 사찰문화를 대중화하는 것에 관심이 많지만 ‘디자인 포교’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아직 감지하지 못하는 현실”이라고 했다.

김 대표는 그러나 “스님들의 인식이 조금씩 달라지면서 디자인에도 투자해야 한다는 개념이 생기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전국 방방곡곡 발로 뛰면서 불교디자인의 가치와 효과를 알리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서울 조계사와 봉은사, 불광사, 한마음선원, 평창 월정사 등은 사찰로고를 갖고 있으나 로고제작비가 턱없이 높거나 로고의 작품수준이 다소 떨어지는 등 로고마다 제각각이다.

‘전통문화 대중화’의 원력으로 설립된 회사 ‘붓다아티스트’도 불교디자인계 떠오르는 샛별이다. “동양문화의 아이콘을 대중적인 관점으로 바라보는 디자인을 선보일 것”이라는 정기란 붓다아티스트 대표는 올해 불교문화사업단에서 열린 불교문화상품공모전에서 최고상을 거머쥐었다.

작품명은 ‘사천왕 페이퍼 토이’. 사천왕상을 친근감있게 형상화한 이 작품은 사천왕에 대한 무섭고 불편한 시선을 재밌고 유쾌한 관점으로 바꾸어 놓는데 기여했다. 엄숙한 불교형상물을 ‘토이’로 재현한 점에서 높은 점수를 확보했다.

당시 시상식에 참석한 총무원장 자승스님은 “어느 해보다 다양하고 우수한 작품들이 출품된 것은 물론 디자인 상품의 수준을 뛰어넘어 문화콘텐츠의 미래를 엿볼 수 있는 자리였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옴자와 법륜을 활용한 자동차 차걸이도 너무 진지하거나 촌스럽게 여겨졌던 과거 불교용품과는 달리 세련된 디자인으로 부각되고 있다.

불자들의 수행정진에 도움이 되는 염주반지도 여성불자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으며 다채로운 핸드메이드 합장주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불교디자인업체도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며, 불교적 감성과 가치관으로 디자인을 공부하는 디자이너들도 많아지고 있는 추세다.

배보람 마인드디자인 디자이너팀장은 본격적인 불교디자인을 제작하기 앞서 프랑스와 독일 등 우리보다 앞서가는 디자인 문화를 체험하기 위한 여정으로 해외탐방을 계획하고 있다.

배 팀장은 “기존의 전통문화와 불교를 표방하는 디자인은 연꽃이나 코끼리 등 그 형상을 따라가는데 그쳤지만 이제는 선과 자비, 보살행 등 불교적 가치를 함축하여 디자인에 담아내는데 집중하고 있다”며 “불자로서 수행하고 끊임없이 공부함으로써 복잡한 군더더기를 떼어내고 단아하고 세련된 불교디자인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두껍고 긴 사찰안내서, 스님들의 다소 어렵고 지루한 법문에 시간과 마음을 투자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이제 디자인으로 말하고 느끼고 따라가는 시대가 불교계에도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하정은 기자 | tomato77@ibulgyo.com
[불교신문 2014년 9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