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의심이 돈발해야 진리로 들어갈 수 있다

3. 원수좌(圓首座)에게 주는 글

공안은 조사관 여는 초인종

절대로 명리를 구해선 안돼

본문: 조사들의 한두 마디 말은 중생들을 인도하여 진리로 들어가게 하는 문이며 초인종이라는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들의 체제와 역량은 후학들의 모범이 될 만하니 마땅히 본받고 힘써서 옛 가풍을 되찾아야 한다. 절대로 명리를 구하려 해서는 안 된다. 그러기를 깊이깊이 축원하노라.

해설: 원오극근 스님께서 세상에 법을 펴러 나가는 원수좌에게 부디 스스로 겸허하게 처신하여 혹시라도 부처님께 누를 끼치는 행동을 삼가 하라고 노파심절하게 당부하고 있다. 원오스님은 당시 공안으로 확립되고 있던 역대 조사들의 한두 마디 말을 통해 제자들을 지도 하였는바, 언하에 바로 깨치든지 아니면 의심이 돈발해야 진리로 들어갈 수 있다고 강조하였다. 간화선은 오조법연, 원오극근, 대혜종고 3대에 걸쳐 확립되었다. 그리고 원오스님이 제자에게 공안이야말로 조사관을 열 수 있는 문이자 초인종이라고 간곡히 일러주고 있는 모습이 눈길을 끈다.


본문: 마조스님이 옛날에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키장이집이라는 조롱 때문에 도를 펴기가 어려울까 두려워하여 다시 협(峽) 땅을 나와 강서에 가서 인연이 맞게 되었다.

해설: 마조도일(709~788) 스님이 도를 성취하고 금의환향 한다는 소문이 나니, 고향 사람들은 누군가 대단한 사람이 오는 줄 알고 크게 기대하였다. 마을의 한 노파가 마조스님이 오는 것을 보고서, “저 사람이 마조야? 옛날에 우리 옆집에 살던 키장이집 코흘리개 아들 아닌가?” 하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마조스님은 ‘여기에서 도를 펼 수 있는 입장은 아니구나’ 하고 생각하고, 마침내 강서의 홍주로 가서 크게 선풍을 드날리게 되었다. 구름처럼 모여든 800여 명의 문하생 중에 입실하여 법을 이은 제자가 84인이나 되었고, 그 중에는 도의국사의 스승인 서당지장스님, 백장스님, 남전스님 등 기라성 같은 선사들이 나와 천하에 마조의 종풍을 드날렸다. 원수좌가 아마 고향으로 가려고 해서인지 몰라도, 원오스님은 이 편지글에서 옛일을 잘 살펴서 법을 펼치는데 참고하라고 당부하고 있다.


본문: 대수(大隋)스님은 고향으로 돌아와 우선 용회(龍懷)의 길 입구에서 3년 동안 차를 끓이면서 여러 인연을 맺다가 목암(木庵)에 은둔하여 촉 땅에서 도를 행하였다.

해설: 대수법진(834~919) 스님은 위산영우 문하에서 공부하고, 복주대안의 법을 이었다. 득도 후 고향 사천 땅에 돌아갔는데, 법을 펴기 전에 우선 옛 빚을 갚느라고 용회사 입구에서 지나가는 나그네들에게 차를 끓여 3년간 공양했다. 그 뒤 대수사라는 오래된 암자를 발견하고 절 앞의 큰 나무에 난 구멍 안에 기거하자, 사람들이 목선암(木禪庵)이라고 부르며 존경하였다. 고향에서 법을 펴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어서, 대수스님의 일화는 사전에 철저한 준비가 필요함을 보여준다. 이런 점을 원수좌가 참고하라고 친절하게 일러준 것이다.


본문: 향림(香林)스님은 옛날에 고향으로 돌아와 수정궁에 자취를 감추고 40년 동안 한 덩어리가 된 일을 성취하여 지문(智門) 노스님의 가풍을 드날리더니, 이윽고 설두(雪竇)스님을 배출하여 운문스님의 정통 종지를 크게 펼쳤다.

해설: 향림징원(908~987) 스님은 운문문언스님의 문하에서 시자로 있었다. 스승이 가르치기 위해 “원(遠) 시자야!” 하고 부르면, 제자는 “예!”라고 대답했다. 그때마다 스승은 다시 “이 무엇인고?” 하고 물었다. 이렇게 하기를 18년 만에 비로소 깨치니, 운문이 말하기를 “내가 지금 이후로는 너를 부르지 않으리라” 하였다.

향림스님은 득도 후 고향인 사천성의 천성산에 돌아가 자취를 감추고 40년을 익혀서 한 덩어리를 이루었다. 그 뒤 지문광조를 키워냈고, 그 밑에서 다시 설두중현이 나와서 선화(禪話) 100제를 뽑아서 시적으로 제창한 <송고백칙>을 만들었다. 약 100년 후 여기에 임제종 양기파의 원오극근이 수시와 착어 및 평창을 붙여 선문(禪門) 제1서라는 <벽암록>을 편찬했다.

수불스님 | 금정총림 범어사 주지
[불교신문 2014년 9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