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은산철벽 쳐부수지 않고 다른 길이 없다

3. 원수좌(圓首座)에게 주는 글

善知識 장치 수단으로 들어가서

화두 잡드려 그 자리서 끝장내야

본문: 그 자리에서 알아차려 수행을 마치고 명예와 이익을 구하지 말고, 오직 생사를 투철하게 벗어나고자 힘써야 한다. 지금 이미 그 자손이 되었으니 그 가풍(種草)을 간직해야 한다. 옛부터 도가 있었던 사람들을 살펴보니, 그들은 움쩍하면 용과 호랑이를 항복시켰으며 불보살이 신통으로 계(戒)를 주었다.

해설: 이 공부는 선지식과의 인연이 가장 소중하다. 대장부로서 일대사인연을 해결하기로 발심하고 다행히 본분종사를 만났다면, 그 자리에서 목숨을 던질 수 있는 믿음으로 선지식이 장치하신 수단 속으로 밀고 들어가야 한다. 불조의 자손이 되고자 한다면, 근본에 사무쳐서 은산철벽을 쳐부수지 않고는 달리 다른 길이 없다.

마치 사나운 개가 한 번 물면 목이 끊어지더라도 절대로 놓지 않는 것처럼, 선지식이 제시하신 화두를 철두철미 잡드려서 그 자리에서 끝장을 내야한다. 백척간두에서 물러서지 않고 끝내 한 걸음을 더 내딛을 수 있다면, 마침내 용과 호랑이 사로잡아 불보살께서 주시는 수기를 받게 된다.


본문: 괴로움과 싸우고 담백한 음식을 먹으며 인간세상을 몽땅 잊고 티끌 세계를 영원히 떠났다. 20~30년을 자취와 명예를 숨기고 다리 부러진 냄비로 밥을 해 먹으면서, 더러는 앉아서도 죽고 서서 죽기도(坐脫立亡) 하였다.

해설: 참된 공부인이라면 비록 혼신의 노력 끝에 정신적인 벽을 넘어섰다 해도, 정진의 고삐를 놓지 않고 늘 자취를 남기지 않도록 경계하였다. 배움을 끊고 함이 없이 마음을 한가롭게 하면서, 중생구제에 최선을 다했다. 자기의 미망을 끊는 것은 물론, 인연 있는 사람들의 어리석음까지 모두 제도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름을 숨기고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불법의 오묘함을 깊이 연마하며, 모습을 나투지 않고 좌탈입망 하기도 했다.

본문: 그 가운데 한 개 또는 반개의 도인이 여러 성인이 밀어내줌으로써 출세하여 종풍을 세우고, 고매한 행을 지니며 부처님의 은혜에 힘써 보답하지 않음이 없었으니, 비로소 내놓은 한두 마디는 부득이해서 그렇게 한 것이었다.

해설: 도인이라고 모두 세상에 나와 법을 편 것이 아니라, 소수의 명안종사가 시절인연 따라서 세상에 출현하여 중생구제의 방편을 드리웠다. 세상에 나와서 남의 귀감이 될 정도로 앞장서려면, 복덕을 두루 갖추어야 한다. 선지식 주변에는 많은 인연들이 따르므로, 날이 갈수록 더 잘 살아야 한다. 널리 여유로움과 이익을 나눌수록, 더 많은 좋은 인연들이 찾아오고 선신들이 호법을 서준다. 서로 아끼는 만큼 고매해지고 저지레하는 만큼 같이 흠집이 나므로, 찾아오는 모든 인연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한편 복력이 부족한 공부인은 스스로 자취를 끊고 자기 공부에 힘쓰며, 여러 조건을 두루 갖춘 도인을 밀어주면서 음으로 양으로 불법이 쇠퇴하지 않도록 힘쓰며 살았다. 아무리 도에 눈떴다 할지라도 분수를 모르면, 자칫 부처님 법에 누를 끼칠 수 있어 스스로를 삼갔던 것이다.

임제스님이 위산스님을 하직하고 나올 때, 앙산스님이 전송하면서 북방으로 가면 도와줄 인연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과연 진주(鎭州)에 이르니, 보화(普化)스님이 이미 그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보화는 반산보적의 제자로서 투탈자재 했으나 성품이 괴팍하였는데, 임제원에 기거하면서 임제스님의 가르침이 후대에까지 이어지는데 이바지했다.

어느 날 보화스님이 저자거리에서 장삼을 구걸하자, 임제가 관을 준비해주었다. 보화는 그 안에 들어가 입적하였는데, 사람들이 관을 열어보니 이미 천화(遷化)하여 공중에서 요령소리만 은은히 들리며 떠나갈 뿐이었다. 이렇듯 고봉정상에서의 좌탈입망도 있는가 하면, 십자가두에서 전신탈거(全身脫去)도 하는 법이다.

근본을 밝히기로 뜻을 세운 공부인이라면, 명안종사께서 세상에 나와 부득이하게 내놓은 한 두 마디에 의심을 일으켜 전심전력으로 참구해 들어가야 한다.

이 공부가 본래면목을 밝히는 경절문(徑截門)임을 굳게 믿고, 불조의 혜명을 잇는 불제자로서 정진해야 한다.

수불스님 | 금정총림 범어사 주지
[불교신문 2014년 8월 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