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심인〈心印〉 전할 뿐, 문자 논하지 않는다

3. 원수좌(圓首座)에게 주는 글

生死가 그림자임을 밝게 드러나게

禪은 성품 밝히는 것 귀하게 여겨

본문: 백추와 불자를 쳐서 인간과 천상을 일깨워주고 생사를 투철히 벗어나게 함이 어찌 작은 인연이랴. 화애로운 얼굴과 부드러운 말로 근기에 맞게 제접 인도하며, 그들의 동기를 살펴서 판단해주고, 그가 있는 곳을 시험하며, 치우침을 바로잡고 집착을 떨어주어야 한다.

해설: 선지식이 납자를 제접할 때, 방망이를 휘두르거나 고함을 지르거나 하는 것은 상대로 하여금 생사대사를 투철히 벗어나도록 일깨워주기 위해서다. 때로는 거칠고 직접적인 방법 대신, 부드러운 낯빛이나 능란한 말 한마디로 깨우쳐주는 것도 마찬가지다. 선지식이 근기와 인연 따라 백천 방편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것은 공부인이 천착하고 있는 것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한 고구정녕한 자비이며, 별다른 뜻은 없다.


본문: 단도직입적으로 드러내 주어서, 불성을 보게 하여 푹 쉬어버린(休歇) 안락한 곳에 도달하게 해야 한다.

해설: 선지식이 법을 쓰는 모습은 단지 곧바로 마음을 가리킬 뿐, 구질구질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법은 공개된 비밀이라 했듯이, 이미 모두의 눈앞에 밝게 드러나 있다. 스스로 무명에 가려 엉뚱한 곳에서 찾고 구하므로 한 생각을 돌이켜 눈앞에 드러난 마음에 계합하도록 이끄는 것이다. 시절인연이 닿아 여기에서 안심입명처가 드러나면, 통밑이 빠진듯한 시원함에 저절로 푹 쉬게 된다.


본문: 이른바 못과 쐐기를 뽑고 끈끈함을 없애고 결박을 풀어준다고 하는 것이다.

해설: 중생은 늘 알 수 없는 무명 속에서 거듭 나며, 노끈도 없는데 스스로를 칭칭 감으면서 고해 속을 헤매고 있다. 눈 밝은 선지식은 저마다 가슴에 박혀있는 아상과 법상의 대못을 뽑아버릴 수 있는 장치를 시설해준다. 공부인은 이 장치 속에 사무쳐 들어가 눈앞의 정신적인 벽을 무너뜨리면, 비로소 두 다리를 쭉 펴고 잠을 잘 수 있을 것이다.


본문: 부디 실다운 법이라고 하면서 학인을 묶어놓아서, 이처럼 머물고 이처럼 집착케 해서는 안 된다.

해설: 법은 본래 무주(無住) 무념(無念) 무상(無相)이거늘, 괜히 ‘이것이 실다운 법이다’고 법상을 세워놓으면, 그것은 나귀를 매어놓는 말뚝이 되고 만다. 이 말에 속아 자칫 사구(死句)를 들고 있으면, 10년 20년을 허송세월하게 되므로 극히 경계해야 한다.

본문: 그들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로부터 휘둘려 전도되지 않게 하라. 그것은 독약이다. 그들에게 그것을 먹게 하면 일생을 한 쪽만 보고 속아서 잘못될 것이니, 무슨 이익이 있으랴.

해설: 원오스님 당시에도 공부를 잘못하여 허송세월하는 공부인들이 많았던 것 같다. 그래서 원오 극근스님의 제자인 대혜 종고스님은 활구를 참구하는 간화선을 제창하였던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수많은 공부인들이 경계를 법으로 착각하여 머무는 잘못에 빠진다. 제 아무리 좋은 경계라도 한쪽에 머물면 이법(二法)이지, 불이중도(不二中道)의 평상심이 아니다.


본문: 불조께서 세상에 나오시어 다만 이 큰 인연을 주창하셨으니, ‘오직 마음(心印)만을 전할 뿐, 문자를 쓰지 않는다’고 한 것이다. 최상 근기만을 상대하여 하나를 들으면 천을 깨닫는 자를 귀하게 여길 뿐이다.

해설: 일대사 인연은 오직 마음을 깨달아 생사를 벗어나는 일이다. 세간의 이분법 안에서는 아무리 좋은 일이라 할지라도 무상(無常)을 벗어날 수가 없다. 오직 본래 청정한 보리자성에 계합하여 생사가 허망한 그림자임을 밝게 드러나게 해야, 생사일대사를 해마친 대장부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명안종사라면 다만 심인을 전할 뿐, 분별망상의 알음알이를 키우는 문자는 논하지 않는다. 선은 오직 성품을 밝히는 것을 귀하게 여길 뿐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성품을 밝히지 않으면 공덕은 쌓을 수가 없다.

수불스님 | 금정총림 범어사 주지
[불교신문 2014년 8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