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사물 물리치는 것 상급 … 좇는 것은 하급

2. 함께 부치는 글

‘그림자’ 사물에 현혹되지 않도록

어떤 상황에도 자유자재 변통해야

본문: 암두스님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사물을 물리치는 것이 상급이고, 사물을 좇는 것은 하급이다. 전쟁으로 비유해 보면 개개의 능력은 변통하는 데에 달렸다.”

해설: 암두전활(巖頭全豁, 828~887) 스님은 청원행사 선사의 제5세로, 덕산선감의 법제자다. 암두스님은 원래 <열반경> 강사였는데 사교입선(捨敎入禪)하여 덕산스님에게 참문하고, 와룡산을 거쳐 암두에서 법을 널리 폈다. “한나라 개는 흙덩이를 좇고, 사자는 사람을 문다(韓盧逐塊 獅子咬人)”는 말처럼, 사물을 좇는 것은 흙덩이를 좇는 한나라 개와 같이 하급이다. 상급의 사자라면 응당 사물을 작용케 하는 본체에 계합하여, 그림자에 불과한 사물에 현혹되지 않는다. 대기대용(大機大用)의 본심에 통하면, 어떤 상황이 닥쳐도 자유자재로 변통할 힘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본문: 즉 어떤 상황에서라도 빠르게 변통할 수 있다면 모두가 자기 발아래 있게 되고 자기 손아귀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잡고 놓고, 말고 폄이 모두 중생교화라 할 것이며, 늘 편안하고 고요하게 제자리에 거처하면서 실끝 만큼도 마음에 걸리는 것이 없습니다. 그리하여, 움직여 기연에 감응할 때도 저절로 바탕(璿璣)을 잡아, 회전 변통함에 대자재를 얻을 수 있습니다.

해설: 본분사를 분명히 밝힌 공부인은 온갖 언어와 희론을 벗어나 사사무애(事事無碍)의 힘을 발휘한다. 일거수일투족이 살활(殺活)에 자재하여 중생교화가 아님이 없고, 진흙탕 속에 들어가 중생과 함께 뒹굴지라도 본래청정한 바탕을 여읜 적이 없다. 마음은 활연관통하여 텅 비어 시원하고, 일상의 마음씀은 늘 편안하고 고요하다. 근본바탕에 또렷이 비춰지는 대로 쓸 뿐이어서, 변통함에 대자재가 절로 이루어진다.

본문: 수많은 무리와 인연들을 모두 칼 휘두르는 대로 베어내니, 온통 파죽지세여서 바람 부는 대로 쏠립니다. 그러므로 서 있는 그 자리가 진실하면 작용할 때도 힘이 있습니다. 나아가 영웅을 몽땅 거느리고 호랑이 같은 군사를 휘몰아 큰 도적을 물리치고 백성을 어루만지며 사직을 편안히 하고 중흥의 대업을 보좌함도 모두가 이 하나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

해설: 임제스님은 “어디를 가든 주인이 되면, 선 자리가 진실 되다(隨處作主 立處皆眞)”이라고 말했다. 한 생각 돌이켜 본심에 통하면, 인연 따라 일어나는 온갖 일들이 모두 한마음의 나툼일 뿐, 달리 다른 일이 없다. 전쟁에서 승리하고 여섯 나라(六國)를 다스리는 대업이 다만 이 마음의 씀씀이에 달려있어서, 때에 당해 한마음 일으키는 대로 일마다 정확하게 이루어지는 법이다.


본문: 위의 관건을 열어젖힘은 만세토록 없어지지 않을 공(功)이므로 옛 부처님과 같이 보고 같이 들으며, 함께 알고 함께 쓰는 것입니다.

해설: 정신적인 벽을 무너뜨리고 성품과 계합하면, ‘무공용(無功用)의 공(功)’의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공덕의 힘이란 상(相)을 여읜 입장에서 나오는 것으로, 대기대용의 본래 마음의 작용을 말한다. 분별된 삼라만상이 귀일하는 그 하나에 요달(了達)한다면, 이미 옛 부처님과 같이 보고 들으며, 함께 알고 쓰는 것이다.


본문: 사조(四祖)스님은 “마음이 아니면 부처를 묻지 못한다” 하였고, 덕산(德山)스님은 “부처는 하릴 없는 사람일 뿐이다” 하였고, 영가(永嘉)스님은 “당처를 떠나지 않고 항상 담담하니, 찾으면 그대를 아나, 볼 수 없도다” 하였으며, “무위진인(無位眞人)이 항상 얼굴로 드나든다”고 한 것이 모두가 이런 부류입니다.

해설: 이 마음이 바로 부처임을 분명히 확인하는 즉시, 할 일이 없는 한가로운 사람이 된다. 모든 것이 공덕의 차원에서 여법하게 돌아가므로, 바쁘게 일을 하지만 일한 바가 없고, 따로 도모하지 않아도 이루어지지 않는 일이 없다. 항상 눈앞에서 무위진인이 분명하니, 인연 따라 바삐 움직여도 그저 담담하니 적연부동(寂然不動)한 것이다.

수불스님 | 금정총림 범어사 주지
[불교신문 2014년 7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