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공부는 근본과 지말 가리는 바른 안목 갖춰야

2. 함께 부치는 글

근본실상 분명하면 세간사는 그림자

신통묘용이나 언설들은 곁가지일 뿐

본문: 여기서는 그것을 알아차릴 바른 안목을 갖는 일이 가장 중요하니, 그로부터 서천의 28대와 중국의 6대 조사도 그것을 가만히 전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런 줄을 모르는 자들은 뭔가 신통묘용이 있을 것이라 여겨서, 말을 가지고 지류만을 좇을 뿐 애초에 그 근본을 밝히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해설: 공부인은 근본과 지말을 가려내는 바른 안목을 갖추어야 한다. 근본실상이 분명해지면, 잡다한 세간사는 그림자일 뿐임이 확연히 드러난다.

삽삼조사는 부처님께서 전하신 본심(本心)의 오묘함을 밝게 사무쳐 알고 은밀하게 전했을 뿐이다.

그렇지만 중생들은 본래면목을 밝히지는 않고, 몰람결(不知不覺, 자신도 모르는 결)에 펼쳐진 일련의 어리석음만을 붙잡고 시비하고 있다. 온갖 신통묘용이나 그럴듯한 언설들은 근원에서 나와 인연 따라 펼쳐진 곁가지이지, 그 뿌리가 아니다. 모름지기 근원에 사무쳐야지, 줄기나 가지에 떨어지면 허망함을 면할 수가 없다.

부처님께서 영산회상에서 꽃을 들어 보이신 뜻도, 모양으로 드러난 꽃에 있는 것이 아니라 들어 보이는 본분사에 있음을 돌이켜 볼 줄 알아야 할 것이다.


본문: 만약 궁극적인 그 이치를 움켜쥔다면 한마디도 필요치 않습니다. 옛날에 이부마(李駙馬)가 석문(石門)스님을 뵙자 석문스님은 이 대장부의 일은 장수나 재상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이부마는 바로 깨닫고 게송을 지어 자기 뜻을 진술하였습니다.

해설: 이준욱(李遵, 988~1038) 거사는 송나라 사대부로 벼슬이 부마도위에 이르러, 흔히 이부마로 불린다.

그는 수산성념(首山省念)의 법제자인 석문온총(蘊聰) 스님을 찾아뵙고 ‘출가사(出家事)’에 대해 물었다. 석문스님은 응대하기를, “당대(唐代)의 재상 최환이 ‘제자가 출가하면 어떻겠습니까?’ 하고 물었을 때, 경산(徑山) 선사가 ‘출가는 대장부의 일인데 어찌 장상이 능히 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했다는 공안으로 답하였다.

이부마는 이 문답 끝에 대오하여 아래의 게송을 남겼으며, 그 후에도 자신의 저택에 법좌를 설치해 스님을 청하여 법회를 여는 등 수년간 참문하며 성태(聖胎)를 심화시켰다. 거사는 ‘경덕전등록’을 확충한 <천성광등록(天聖廣燈錄)> 30권을 찬술하여, 송대 사대부 거사들이 조사선에 귀의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도를 배우려면 반드시 무쇠로 된 놈이라야 하리니/ 착수하는 마음에서 결판내도록 하라.

곧바로 위없는 보리에 나아가려거든/ 일체의 시비에 상관하지 말라.”

쇳덩어리로 만들어진 놈이라야 이 공부를 할 수 있다. 일단 이 공부에 대해 믿음을 냈으면, 그대로 끝내버려야지 또 다른 일을 용납하면 안 된다. 이 공부를 할 때 시비야 끝없이 일어나게 마련이지만, 시비 분별에 아랑곳 하지 말고 오로지 관문을 뚫겠다는 일념이 만년 가도록 밀어붙여야 한다. 그러다가 마른하늘에 벼락 치듯, 매미가 허물을 벗듯이 한 순간에 장벽이 무너지면, 저절로 시비가 끊어져서 일 없이 한가로운 도인이 될 것이다.


본문: 지혜롭고 영리한 상근기는 천기(天機)를 이미 갖추었으므로 그저 확실하게 깨닫기만을 힘쓸 뿐입니다. 그것을 쓸 경우에는 대기(大機)를 거머쥐고 대용(大用)을 발휘하여 기미보다 앞서 작동하고 사물을 끊어버리고 변통합니다.

해설: 근원에 대한 믿음이 확고한 상근기 공부인은 안팎이 밝게 뚫릴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

본래면목에 대해 실질적인 눈을 뜨게 되면, 대기대용의 큰 힘을 발휘하게 된다. 눈앞에서 분명한 근거를 거머쥐고, 그때그때 인연 따라 끄집어내어 자유롭게 쓰는 것이다.

원오극근 선사는 법을 물어오는 장선무 거사에게 과거 이부마 거사를 본받아 철두철미하게 담금질해서 확실하게 깨닫도록 독려하고 있다.

수불스님 | 금정총림 범어사 주지
[불교신문 2014년 7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