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있다’ ‘없다’ 초월해 벌어진 이 일이 무엇인가?

2. 함께 부치는 글

마음·도 말하지만 실상은 아냐

본성자각? 공연히 평지풍파 일으킨 꼴

본문: 예로부터 성현은 격량(格量)을 초월하여 걸출하였습니다. 그들은 대근기(大根器)를 심어 이 큰 인연을 홀로 깨치고 자비원력으로 ‘바로 가리키는 도’를 폈습니다.

해설: 이 글은 앞서 장선무 거사에게 보낸 편지의 추신이다.

성인과 현자는 한계를 뛰어넘은 분들이며, 특히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출현하신 후의 세상은 그 전과는 획기적으로 달라졌다. 예를 들면 ‘지혜’라는 말을 사용하였지만, 실제로 그 근거와 결과를 나툴 수가 없었다.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하셔서 각자가 지닌 생명의 실상을 밝혀 중생들이 미혹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셨고, 또한 지혜와 덕성을 스스로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도록 이끌어주신 것이다.

요즘 발견한 빅뱅이론에 의하면 우주의 나이는 137억년이라 하고, 지구는 45억년이라 한다. 그런데 성현들이 나오신 최근 약 2~3000년 동안, 인류는 실로 짧은 시간 내에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하였다. 이것은 성현의 가르침으로 지혜로운 눈을 뜬 인연 때문이라고 할 것이다.

즉 ‘도’라는 진리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모든 새로운 변화가 시작되었다. 그 전에도 물론 ‘도’라는 말은 있었겠지만, 실제로 깨달은 분들이 출현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한편 스스로 깨닫고, 남도 깨닫게 해줄 수 있는 눈을 뜬 분들이 세상에 출현함으로써, 인류사회는 엄청난 변화를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도인들이 드러낸 최고의 방편이 바로 ‘직지인심’ 할 수 있게 한 선법(禪法)이다.


본문: 만유가 한 몸인 지극히 깊고 묘한 이 일(一段事)은 단계를 세우지 않고 단박에 뛰어넘어 홀로 증득하는 것입니다.

해설: 한 없이 벌어지는 세간사가 모두 이 일단의 일에서 나왔다.

이것은 모양이 없기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큰 것이라고도 할 수 있고, 가장 작은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찾으려고 해도 찾을 수가 없으니, 있다고 해도 허망한 것이다. 또한 만유가 이것에서 나왔기 때문에, 없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있다, 없다’를 초월해서 이와 같은 일들이 벌어졌는데, 뭐라고 해야 될까?

이것을 ‘마음’이니, ‘도’니 하는 이름을 빌려서 표현하고 있지만, 그 실상을 우리가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일단의 일을 깨달은 성자들이 세상에 출현함으로써, 인류의 문명이 획기적으로 변화하기 시작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본문: 공겁(空劫) 이전으로부터 담담히 요동하지 않고 뭇 생령의 뿌리가 되며, 고금을 통하여 사려가 끊겼으며 범부와 성인을 벗어났고 알음알이(知見)를 뛰어넘었으며, 애초부터 움직이지 않고 확연히 드러난 채 살아 움직여, 바로 지금 모든 유정(有情)과 무정(無情)이 다 그것을 완전하게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석가모니 부처님이 탄생하시자마자 하늘과 땅을 가리키며 크게 포효하여 대뜸 드러내 보이셨고, 다음으로는 밝은 별을 보셨으며, 마지막에는 꽃을 들어 보이신 것입니다.

해설: 이 일단의 일은 본래부터 갖추어져 있는 것으로서, 어떤 변화가 일어난다 하더라도 단 한 번도 변화한 적이 없는 그대로의 모습 없는 모습이며, 시공을 초월했으면서도 시공과 함께 하면서 시공을 만들어낼 수 있는 생명의 근원이자 만유의 실상임을 알지 않으면 안 된다.

부처님께서 근원을 알게 하려고 형상으로 나퉈서 별별 일을 다 벌이셨지만, 알고 보면 허망한 일에 지나지 않는다. 하늘과 땅을 가리키자 사나운 개에게 던져주라고 했고, 새벽에 별을 보고 본심을 자각한 일도 언제 찾고 구하고 할 일도 아닌 것을 공연히 평지에 풍파를 일으킨다고 하였으며, 영산회상에서 꽃을 들어 보이신 일도 수없는 그림자를 만든 가운데 분명한 일을 밝게 드러내 보였으나 귀신도 엿볼 수가 없다 하였으니, 알지 못하리라 이 일단의 일이여!

수불스님 | 금정총림 범어사 주지
[불교신문 2014년 7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