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공부 흔적 남아있다면 아직 道와 거리 멀어

1. 화장명 수좌(華藏明首座)에게 주는 글

흐름 맡겨 그대로 드러내 쓸 뿐

다른 어리석음을 만들지 않아야

본문: 어디에나 몸을 벗어날 길이 있어서, 8면으로 영롱하여 저들을 비추어보고서 비로소 칼날을 대야 한다. 여기에서 반드시 치밀해야 하며, 조금이라도 느슨했다간 일곱 번째 여덟 번째에 떨어지리라.

해설: 반야의 살인도·활인검을 쓸 때는 상대가 익은 것을 기다려 정확하게 사용해야 한다. 칠식·팔식 경계에 머물게 하지 말고, 완전히 초탈하게 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상대를 그르치게 하거나, 심지어 자기 칼에 스스로 다치는 경우도 있으므로 유념해서 사용해야 된다.


본문: 그저 자신이 무심하다는 그것도 털끝만큼이라도 남겨 두지 말아야 하며, 설사 조금 있다 해도 잘라서 세 동강을 만들어버려야 한다.

해설: 도란, 얻을 수도 잃을 수도 없는 것이다. 공부하는 흔적이 남아있다면 아직 도와는 거리가 멀리 있다. 예를 들어, “착한 일을 해야지!” 하는 사고를 하고, 그대로 실행한다 해도 어리석은 일이다. 무의식중에서도 착한 일이 저절로 우러나와야 한다. 늘 일상 중에 행하고 있는 모습 그대로가 도와 둘이 아닌 실상을 드러내고 있음을 깨달아야 된다.

무심도 이와 같아서 일어나면 일어나는 대로 쓰면 되지, “이렇게 해야지!” 하고 사고하면 벌써 어긋나는 것이다. 언제나 자연스럽게 흐름에 맡겨 있는 그대로 드러내 쓸 뿐이지, 또 다른 어리석음을 가져와서 그림자를 만들지 않는다. 범부들은 배워서 이해한 대로 행하려는 습이 있어서, 이와 같은 무위법을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본문: 그런데 더구나 예부터 이 종문에 내려오는 본분수단은, 이 문중의 납자를 만나서 드러내 보였을 때 기연에 투합하면 함께 쓰고 기연에 투합하지 못하면 이로써 요점을 삼을 것이니, 그리하면 깨닫지 못할 일이 없다.

해설: 금강보검을 쓰는 선지식은 상대를 살펴서 인연 있는 이에게만 검을 드러내 정곡을 찔러주었다. 법을 물으러온 공부인을 마주하는 즉시 그 근기를 파악해서, 한칼에 전도몽상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던 것이다. 이 일은 참고할지언정 결코 흉내 내서는 안 된다.


본문: 힘써 실천할 것을 간절히 바라노라.

해설: 원오극근 스님께서도 이렇듯 깨달음의 수단을 잘 살펴서 드러내야 된다고 말하고 있다. 참고로 오늘날은 공부하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누구나 쉽게 관련 정보에 접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기존의 고정관념을 벗어나 누구나 깨달음을 노래하고 눈 뜰 수 있게끔, 기회와 근거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2. 장선무(張宣撫) 상공에게 드리는 글

본문: 지난날부터 매우 깊이, 그리고 오래도록 이 도리를 공부해왔으니 어찌 말을 빌려 통할 것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종지를 뛰어넘는 격외(格外)도리는 크게 통달한 자라야 간직할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천변만화도 손바닥을 벗어나지 않고, 세간법과 불법이 결코 다르지 않습니다.

해설: 깨달음을 눈 뜬 사람에게는 세간법과 출세간법의 둘이 있을 수 없다. 마치 허공에는 과거·현재·미래가 없는 것과 같다. 우리가 생각으로는 허공 가운데 나타난 모습들이 ‘과거에는 이렇고, 지금은 이렇고, 미래에는 이럴 것이다’ 하고 분별한다. 그렇지만 허공은 과거 허공, 현재 허공, 미래 허공이 따로 있을 수 없다. 인연 따라 이렇게도 저렇게도 변하는 것 같지만, 허공 본연의 모습은 한 번도 달라진 적이 없다.

중생들은 세간법과 불법이 서로 다르다고 분별하지만, 깨달음의 입장에서는 어떤 모습도 있을 수 없다. 성품이 본래 공했음을 확철대오 하면, 실상과 달리하는 것들은 무상할 뿐이다.

수불스님 | 금정총림 범어사 주지
[불교신문 2014년 6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