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큰 스님들 자유로움 함부로 흉내 ‘안돼’

1. 화장명 수좌(華藏明首座)에게 주는 글

모르면, 문답 통해 의심하고

선문〈禪門〉에서는 홀연히 깨쳐야

또 청평(淸平)스님에게 “무엇이 유루(有漏)입니까?” 하였더니, “조리(籬)”라 하였고, “무루(無漏)가 무엇입니까?” 물었더니, “나무 국자”라고 하였으며, 삼각(三角)스님에게 “삼보(三寶)란 무엇입니까?”하고 묻자 “쌀, 조, 콩”이라고 대답하였다.

청원행사의 제4세인 청평산 영준(令遵) 선사는 율장을 공부한 후에 참선하기로 발심하고, 취미무학(翠微無學) 선사를 찾아갔다.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이 무엇입니까?” 하고 묻자, “사람이 없기를 기다려 그대에게 말해주리라”고 하였다.

잠시 기다린 후 “이제 사람이 없으니 말씀해 주십시오”고 하자, 취미스님은 대나무밭으로 데리고 가서 “이 대나무는 이렇게 길고, 저 대나무는 저렇게 짧구나”고 하였다.

말끝에 청평스님은 현묘한 뜻을 깨달았다. 후에 절도사 두홍의 청에 의해 청평산 안락원(安樂院)에 주석하며 후학을 지도했다.

어느 날 상당하여 설법을 마치자, 어떤 스님이 나서며 물었다. “어떤 것이 유루입니까?” 하자, “조리다” 하였으며, “어떤 것이 무루입니까?” 하자, “나무 국자다” 하였다.

번뇌가 새는 유위법(有爲法)인 ‘유루’가 무엇이냐고 묻자 물이 새는 ‘조리’라고 답했고, 번뇌가 새지 않는 무위법인 ‘무루’가 무엇이냐고 묻자 물이 새지 않는 ‘나무 국자’라고 대답한 것이다. 또 남악회양의 2세인 삼각산 총인(總印) 선사에게 어떤 스님이 와서 물었다. “불법승(佛法僧)이 무엇입니까?” 하자, “쌀, 조, 콩”이라고 했다.

예전에 경허스님께서 오대산에서 <대방광불화엄경>을 설하실 때, “대(大)라! 대들보도 대요, 담뱃대도 대다. 방(方)이라! 큰방도 방이요, 작은 방도 방이다. 광(廣)이라! 쌀광도 광이요, 찬광도 광이다. 불(佛)이라! 등잔불도 불이요, 모닥불도 불이다”라고 하였다. 비록 큰스님들께서 당신의 분상에서 이렇듯 자유롭게 말씀하셨어도, 뒷사람이 함부로 흉내 내면 안 된다. 다만 모른다면, 이와 같은 문답을 통해 의심이 일어나야 한다. 지장계침 선사는 “모르겠다는 것이 가장 친절함이다(不知最親切)”라고 하였다.

이 모두는 지난 날 본분종사(本分宗師)가 실제의 경지를 몸소 밟아보고 본분자리에서 자비를 베푼 말씀이다. 그런데 그 스님들의 이런 말들만 뒤쫓는다면 은혜를 저버리는 짓이 될 터이고, 그렇다고 그 스님들의 말을 따르지 않는다면 어떻게 깨달을 수 있겠는가! 금강정안(金剛正眼)을 갖추지 못하고서는 귀결점을 알 수 없으리라.

불법에 대한 올바른 눈, 즉 불안(佛眼)과 법안(法眼)을 눈뜨지 않았다면, 이와 같은 기연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길은 다 끊어졌다.

원오극근 선사는 자신의 회상에서 10년간 정진했던 화장의 명수좌가 이제 중생제도를 하러 나간다고 하니, 고맙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한 마음에서 “그대는 내가 진정으로 무엇을 전하려고 했으며,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잘 살펴서 불조의 혜명을 널리 잇도록 하라”는 간곡한 당부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

이 선문(禪門)에서는 홀연히 벗어나 깨쳐야지, 애초부터 다른 사람이 어떻게 해주어서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캄캄한 봉사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이근종성(利根種性) 맹팔랑(孟八郞)이 하루아침에 단박 깨치는 것이다.

참선공부는 자기 스스로 해결해야 될 문제지, 누가 어떻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밥을 먹었을 때 배가 부른 것이지, 남이 먹는 밥은 그림의 떡과 같아서 오히려 배고픔만 더하게 하는 것이다.

깨달음이란, 날카로운 근기를 가진 맹씨네 여덟 째 아들이 아무것도 모르고 살아가다가 어느 순간 하루아침에 단박 깨치는 모습과 같다. 마치 육조스님께서 무지렁이 나무꾼으로 살다가, 어느 날 <금강경> 읽는 소리를 듣고서 홀연히 깨치신 것과 같은 것이다.

수불스님 | 금정총림 범어사 주지
[불교신문 2014년 5월 14일]